저자 박종현정운찬ㆍ안철수 교수서 고병권 수유너머 대표까지 국내 학계 지형 그려

최근 한국사회 지식인 60인을 인터뷰한 책 <대중을 유혹한 학자 60인>이 출간됐다. 정운찬, 안철수 등 이미 일반에 잘 알려진 교수를 비롯해 고병권 수유너머 대표까지 다양한 학자를 소개하는 이 책은 7장에 걸쳐 최근의 국내 학계 지형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일보에서 오랜 기간 학술 취재를 담당했던 박종현 기자. 그는 "지식인들의 역할공간이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사회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은 어떻게 변했을까? 최근의 지식인은 무엇이 다를까? 해외 체류 중인 저자에게 이메일로 질문을 던졌다.

이 책은 국내 대표적인 학자 60인의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책에 소개된 학자를 고를 때 기준은 무엇이었나?

"우선 그 분야를 전공한 독자나 그 분야에 관심이 있는 식자층이 읽고 도움을 받은 책을 저술한 학자를 대상으로 했다. 가령 한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정민 교수와 안대회 교수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 학문 언저리에서 공부한 이들이 인정하는 학자들을 기준으로 삼았다."

인터뷰한 학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학자는 누구였나? 이유는 무엇인가?

최재천 교수 인터뷰 중인 박종현 기자
"모두 기억에 남는다. 실망한 경우는 거의 없었고, 자주 만날수록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굳이 꼽으라면 역시 고 장영희 교수를 들고 싶다. 평화로운 방식으로 논쟁하지 않으면서 대중에게 따뜻한 자극을 줘서다. 대중은 칼과 같은 날카로운 자극을 통해서 변하기도 하지만, 은은한 속삭임을 통해서도 바뀌기 때문이다. 그를 인터뷰하고 나서 실제 눈물이 났다. 범부가 보기에 장 교수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기쁘고 즐겁게 삶을 살아간다고 말했다. 방관자의 시각이 맞든 장 교수의 고백이 맞든, 그를 통해서 고통스런 생활에서도 삶과 학문과 철학이 대중에게 희망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책 서문에서 '(국내) 지식인들의 역할 공간이 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분기점이 언제쯤이라고 생각하나?

"담론 형성 및 소통 범위 확장과, 학자 개인이 사회에 영향을 직접 미칠 수 있는 환경 조성은 동시에 진행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학자와 학계의 지적 풍토 환경이 성숙된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외부의 긍정적인 자극도 큰 역할을 했다. 그간 엘리트 식자층과 대중의 관심 변화를 추적해 보면 분기점 추론이 가능하다.

가령 1987년 민주화 시위로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흔들리면서 식자층과 대중의 관심이 다각화하는 토대가 마련됐다. 하지만 87년 이후 97년 외환위기까지만 해도 여전히 정치적 현안을 중심으로 사회문화적인 토론이 주를 이뤘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주요 논제어로 등장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정보통신기술(IT)의 발달과 토론문화의 지평이 확대되면서 대중이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 표출하고, 학자들의 엄숙주의 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학문 전공과 별개로 사회적 발언이나 기고를 해온 지식인들이 있다. 얼마 전 타계한 고 리영희 교수, 백낙청 문학평론가 등을 대표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들과 최근 학자들의 차이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과거에도 물론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이 분들의 발언은 대개 거대담론이었다. 정치사회적 현상에 대한 발언이 많았으며, 비판의식을 담았다. 국가사회의 지향점을 논하는 문제의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소통하는 학자들은 비판의식 없이도 사회적인 발언을 내놓고 있다. 소소한 문제에 대해 설명하는 발언도 자주 내놓는다. 작위적인 비교가 될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대개 논설문과 사설식의 접근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설명문과 기사체의 접근도 다수 등장한 셈이다."

책에서 "학문선진국에서 대중과 호흡하는 학자의 출현은 관행처럼 굳어졌다"고 말했다. 기 소르망, 노엄 촘스키, 마이클 샌델, 스티븐 호킹, 에드워드 윌슨, 에이미 추아, 자크 아탈리, 제레미 리프킨, 제인 구달, 존 나이스비트, 폴 크루먼, 프랜시스 후쿠야마, 하워드 진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이들과 국내 학자들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사회가 학문 선진국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차이점은 있다. 영국 등 학문 선진국은 이공계 학자들도 대중적인 글을 쓰는 문화에 익숙하다. 이공계 분야의 학생과 연구자들도 자신의 연구결과를 쉬운 모국어로 풀어내는 수업을 받는다.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연구 결과는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드물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런 흐름이다. 이공계 출신들도 지극히 평범한 수준에서 토론하고 논쟁하는 글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 학자들은 아직 이런 흐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가령 많은 이공계 학자들은 대중이 그들의 언어로 현상을 이해하길 바란다. 더구나 최근에는 실적에 급급한 양적 팽창 논리가 가동돼 젊은 학자일수록 대중과 호흡하는 글을 쓸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소장학자 시절부터 치열한 사유와 적극적인 글쓰기를 통해 대중을 만나는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

책에 실리지 않았지만, 앞으로 활동이 기대되는 젊은 학자가 있다면.

"언론과 사회가 아직 관심을 쏟지 못하는 영역에서 치열하게 자기 개발에 나서고 있는 학자들은 많다. 각 대학의 비정년트랙 교수들을 살펴 보라. 그들이 얼마나 세상에 소통하려고 힘쓰는지를. 혹시 우리 사회와 우리 대학이 논문의 계량화에 함몰돼 그들이 대중과 접할 소중할 기회를 없애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에서 다루지 못했지만 조국 서울대 교수와 진중권 박사는 논외로 한다. 지금은 상황을 정확히 모르지만 시각장애인으로 강단에 선 조성재 교수에 주목하고 있다. 극단적인 경우로 볼 수도 있지만, 장애인 학자가 대중과 소통할 때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해지고 유연해질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 우리 사회가 주목하지 않은 분야에서 연구에 나서는 학자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젊은 학자는 아니지만 막스 베버 전공자인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와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제자인 홍익대 장용순 교수에게 기대해 본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