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머니 제윤경 이사야무지고 줏대있는 소비 강조… 필요하고 질 높은 소비해야

없는 돈 뻥튀기하는 법이 아니라 있는 돈 야무지게 다루는 법을 전파하는 사회적기업 에듀머니의 제윤경 이사는 위기에 처한 가정 살림의 구원 투수다.

재무 상담과 설계에서부터 경제 교육과 칼럼 쓰기까지 전방위적 활약을 펼치고 있다. 작년 말에는 동료들과 함께 자기 주도적 소비 생활의 지침서 <착한 소비의 시작, 굿바이 신용카드>를 냈다. 이렇게 오지랖 넓은 그가 예전에는 내로라하는 '돈맹'이자 '귀차니스트'였다는 사실은 뜻밖이다.

"공과금은 늘 연체됐고, 소비생활에 계획이라곤 없었죠.(웃음)"

하지만 이런 과거는 오히려 제윤경 이사의 자산이다. 그가 제안하고 가르치는 돈 관리 시스템은 스스로 개발한 것이다. "은행 가기가 세상에서 제일 귀찮았던" 자신도 실천할 수 있었을 만큼 쉽고 효과 빠른 방법이란 뜻이다.

"예를 들면 한 달 치 현금영수증이 다 들어가는 지갑을 갖고 다니고, 지출 내역을 바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체크카드를 사용합니다. 수중의 자산을 간편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통장은 자동이체용, 체크카드용, 비상금용을 따로 마련해 놓았죠."

생각해보면 이 정도쯤은 수고도 아니다. 우리가 평소 쇼핑과 그 뒤처리에 쏟아 붓는 에너지에 비하면 말이다.

현대인의 주말 의례인 대형마트 방문도 피곤한 일투성이다. 북적이는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우고, 사람들에 치여 가며 대장정을 떠나야 한다. 내내 두리번거리며 방금 카트에 넣은 물건보다 10원이라도 더 싼 것은 없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렁주렁 이끌고 돌아온 물건을 정리하는 데만도 반나절은 걸린다.

결과도 신통찮다. 1+1 과자는 동네 가게에서 파는 과자보다 양이 적다. 덤으로 받은 우유는 유통기한이 촉박해서 먹지 못한다.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가 들어간 PB 상표 햄이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지만 자동차 휘발유 값이 아까워서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은 애써 외면한다.

제윤경 이사는 대형 마트에 가지 않는다. 대신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유기농 식품을 산다. 엥겔계수가 높겠다고? 그렇지 않다. 비싸니까 필요한 만큼만 사고, 남김없이 쓴다. 대형 마트에 다니는 것보다 생활비가 적게 든다. 시간도 남고, 건강에도 좋고, 쓰레기도 줄어들며 지역 경제도 살아난다. 그가 권하는 "소비의 질을 높이는 신중한 소비 생활"의 한 예다.

이처럼 완벽한 소비자에게도 허점이 있을까? 제윤경 이사만의 사치 항목을 물었더니 "기부금"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매달 몇 군데의 사회단체에 기부하는데 특히 박노해 시인이 운영하는 나눔문화에는 최고 금액인 5만 원을 낸다.

"제일 좋은 점이 뭔지 아세요? 매달 박노해 시인의 시가 메일로 와요. 번잡한 와중에도 그 시들만 읽으면 마음이 촉촉해져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데 5만 원이 대수인가요? 무형의 가치에 대한 만족감이 더 오래 간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도 있어요. 다들 이런 소비에는 인색하지 않았으면 해요."

스케줄로 꽉 찬 제윤경 이사의 수첩 첫 장에는 1월에 받은 시 '그리운 사람아'가 적혀 있다. 그 시를 읽는 몇 초가 일과의 시작일 것이다.

2월 16일 제윤경 이사를 만나 줏대 있는 소비 생활의 비결을 물었다.

재무 상담을 하다 보면 소비에 중독된 사람들을 많이 만날 텐데요, 특별히 기억나는 사례가 있나요?

중산층 이상 소비자들은 대부분 소비 중독인 것 같아요. 냉장고에 식재료를 꽉 채워 놓고 또 대형 마트에 가는 것만 봐도 그렇죠. 최신품과 고가 유모차에도 중독되어 있어요.(웃음) 마이너스 통장을 갖고 고가 유모차를 사들이는 건 비합리적 소비가 아닌가요?

세대별로 소비 성향이 다르게 나타나나요?

소비 대상만 다르지 성향은 비슷해요. 20대는 전자기기나 과시용 문화생활에, 30~40대는 자녀 양육과 교육에 집착하죠. 60대는 냉장고 크기로 경쟁하더라고요.(웃음) 음식을 너무 많이 채워놔서 쓰레기와 전기 요금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시어머니가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아끼면서 사느냐고 며느리를 구박하기도 한대요. 윗세대라고 절약 정신을 보존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다들 왜 그럴까요?

소비에 대한 감각이 마비된 것 같아요. 소비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잘 모르고요. 광고와 마케팅, 신용카드와 마이너스 통장 등 소비에 대한 통제력을 흐리게 하는 함정들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착한 소비의 시작, 굿바이 신용카드>에서도 신용카드의 위험성을 지적하셨는데요, 신용카드의 마케팅 기법 중 가장 악랄한 것은 뭘까요?

할인과 포인트 적립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참 사람 치사하게 만들거든요.(웃음) 할인율은 20%지만 최대한도 3000원, 하는 식으로 한도가 있어서 실질적으론 매달 최대 2만 원 정도밖에는 혜택을 못 받는데 이런 세부 사항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죠. 그런데 인간의 뇌는 혜택에 반응해 충동과 조바심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소비가 늘어납니다.

소비의 질을 높인다는 건 어떤 뜻인가요?

충동적인 소비는 내 안의 필요가 아닌 외부 자극에 의해 조작된 욕구 때문에 일어나죠. 마케팅의 최종 목표는 없던 욕구를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기 때문에 만족스러울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 홈쇼핑 채널에서 요리 기구를 보고 저것만 있으면 가족의 건강을 챙길 수 있겠다 싶어 샀다고 칩시다. 하지만 전문 요리사가 아닌 이상 대부분이 한두 번 쓰고는 싱크대 속에 넣어두게 되죠. 삼시세끼 밥 해먹는 가족의 식생활 패턴엔 애시당초 어울리지 않는 요리 기구였던 거예요. 싱크대 속을 들여다 볼 때마다 마음만 불편하겠죠. 그래서 제 경우엔 오븐이 필요한 요리는 차라리 사먹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웃음)

신중하게 생각해서 소비했다면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겠죠. 사람들에게는 싸고 쉽게 사는 것들을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만약 어떤 물건을 심사숙고해서 사기로 결정하고, 저축하고 기다려서 샀다면 만족감이 커졌을 거예요.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물건의 가치가 올라갔을 테니까요. 이런 게 질 높은 소비라고 할 수 있죠. 편하게 소비하면 욕구 불만 때문에 우울증만 늘어요.

긴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한 소비 지연의 효과가 크군요.

예를 하나 더 들어드릴게요. 저희 가족은 얼마 전 일본에 다녀왔는데, 그 여행은 3년 프로젝트였어요. 그동안 돈을 모았을 뿐 아니라 일본어도 공부하고 계획도 열심히 세웠죠. 저는 특히 온천에 가고 싶어서 중학교 2학년 딸을 설득했어요.

일본 온천은 화산이라는 자연 환경, 일본 전통 문화와 관련된 곳이라고 설명해 주었죠. 처음엔 의아해하던 딸도 막상 가더니 그냥 목욕탕으로만은 안 보더라고요.(웃음) 기다리고 노력하고 기대한 과정 때문에 그 여행은 무척 행복했어요. 그게 소비 생활에서 결핍과 지연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죠.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