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의 종류, 양, 가격, 국적까지 변화시켜

"어제 인터넷 쇼핑몰에서 프랑스산 오겹살을 샀어."

서른 살 A씨는 2주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삼겹살을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그리고 경악에 차서 집에 돌아와 인터넷 쇼핑몰을 뒤졌다. 100g 당 최소 1400~1600원 가량 하던 삼겹살 가격이 2000원대 중반 아래로는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이다. 결국 그가 찾아낸 대안은 수입 삼겹살을 사는 것. 인터넷에서는 프랑스산 오겹살을 500g 당 4900원에 팔고 있었다. 1kg를 주문하고 며칠 뒤 오겹살이 도착했다. 비닐을 뜯어 프라이팬에 구운 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냈다.

"살짝 누린내가 나긴 하지만 뭐, 난 냄새에 민감한 편은 아니니까."

프랑스에서 온 돼지가 해남에서 온 배추와 만나 입 속으로 들어갔다. 구제역 파동이 우리의 식탁 풍경을 바꿔 놓고 있다. 먹거리의 종류, 양, 국적까지. 앞으로는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삼겹살 공화국의 위기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돼지고기다. 현재 대한민국 돼지 3분의 1이 땅에 묻혔다. 한국은 전 세계 삼겹살의 블랙홀이다. 고기 가공업자들의 핵심적인 역량 중 하나는 돼지 한 마리에서 어떻게든 1g이라도 더 많은 삼겹살을 발라내는 것이냐 이다. 그러나 돼지의 마리 수 자체가 대폭 줄어 버렸으니 '삼겹살 홀릭' 한국으로서는 치명적인 일이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500g 당 9400원이던 삼겹살은 올해 1월 1만 1400원, 그리고 2월 현재 1만 2900원으로 올랐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기울이는 식당에서는 1인분에 8000~9000원이던 가격을 1만 1000~1만 2000원으로 인상했다.

고깃집 주인들은 부쩍 오른 가격에 행여나 손님들의 발길이 돌아갈까 봐 가격은 버려두고 고기 양을 살짝 조정하는 등 온갖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삼겹살 소비심리가 잔뜩 위축되자 이 틈을 타 해외 삼겹살을 내세운 프로모션을 기획했다. 3월 3일을 삼겹살 데이로 정하고 '세계 삼겹살 대축제'를 연 것이다. 국내 삼겹살을 비롯해, 프랑스, 칠레, 벨기에 등 다양한 국가에서 날아온 삼겹살 50톤이 시중에 풀릴 예정이다.

대왕 돈가스여, 안녕~

돈가스집 역시 비상이 걸렸다. 돈가스 외에도 다양한 음식을 취급하는 분식점에서는 아예 돈가스를 메뉴에서 빼버렸지만 돈가스 전문점들은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올렸다. 때문에 돈가스를 파는 식당의 메뉴판은 매직으로 죽죽 그은 줄과 원래 가격을 가리는 종이 등으로 누덕누덕하다.

구제역 파동 이전 평균 6000원이던 돈가스 가격은 현재 8000~9000원으로 뛰었다. 3명이 먹어도 다 못 먹을 만큼 크기가 커다란 '대왕 돈가스'로 이름을 날렸던 서울 신대방동의 한 돈가스집은 해당 메뉴의 판매를 당분간 중단했다. 돼지고기 수급이 불안정하다는 것이 이유다.

이전 같으면 20분 안에 다 먹으면 공짜, 10분 안에 먹으면 2번 공짜, 5분 안에 먹으면 6개월간 공짜인 룰에 도전하는 손님들로 가게가 떠들썩했겠지만, 지금은 3500원이라는 돈가스 가격에 감사하며 조용히 식사하는 사람들뿐이다. 분식집 돈가스의 대명사인 김밥천국의 돈가스도 크기를 줄였다.

돈가스에 주로 쓰이는 부위는 등심과 안심이다. 등심은 담백한 맛이, 안심은 좀 더 연하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전체 부위의 10%만 차지하는 삼겹살에 비해 돈가스에 활용할 수 있는 부위는 훨씬 더 넓기 때문에 박리다매로 파격적인 가격에 맛있는 돈가스를 제공하는 명물집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것도 모두 옛날 얘기가 되었다.

이에 돈가스를 포기할 수 없었던 대중이 택한 것은 집에서 직접 튀겨 먹는 냉동 돈가스다. 최근 개그맨 김병만이 자신의 별명을 걸고 홈쇼핑에 진출한 '달인 돈까스'는 방송 이틀 만에 2억 5000만 원 매출이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2월 21일 첫 방송에서는 37분 만에, 두 번째 방송에서는 34분 만에 전량 매진됐다. 홈쇼핑 전용 가격인 3만 9900원에 22인분, 즉 1인분에 1800원이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시청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귀하신 몸, 순대

막창, 염통, 족, 머릿고기 등 돼지 부산물이 줄어들면서 이들을 활용하는 음식들이 귀한 몸으로 떠올랐다. 특히 내장, 염통, 머릿고기 등 일부 부산물들은 수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내산 돼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구제역으로 가축 이동이 금지된 지역에서 대응 미숙으로 돼지 부산물을 폐기처분 했기 때문이다.

최근 구제역 백신 1차 예방접종이 끝나면서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13일부터 소, 돼지 도축 부산물 유통을 재개해 내장 수급은 다시 늘어날 예정이지만 돼지피는 여전히 유통이 제한돼 순대 가격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 선지 해장국도 마찬가지.

노점상에서 떡볶이와 함께 가장 흔하게 먹을 수 있었던 순대의 가격은 현재 2500원에서 3000원으로, 순대국 가격은 5000원에서 6000원으로 올랐다. '무한 리필' 순대국으로 인기를 끌었던 서울 공덕동의 한 족발집은 서비스를 중단했다. 순대뿐 아니라 팔 족발도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족발집에서는 보통 앞발과 뒷발을 섞어서 낸다. 껍데기가 많고 살이 부드러운 부위가 앞발, 살코기가 많은 대신 퍽퍽한 부위가 뒷발로, 앞발의 가격이 더 비싸고 맛도 좋다.

일부 족발집 주인들 중에서는 맛을 위해 앞발만을 고집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앞발, 뒷발 가릴 처지가 못됐다. 아니, 국산 생족발은 물론이고 캐나다, 칠레 등지에서 수입하는 냉동 족발도 부족한 처지다. 평균 2만 4000원 가량이던 족발 대(大) 사이즈의 가격은 2만 8000원으로, 1만 7000원 가량이던 소(小) 사이즈는 2만 원으로 올랐다.

부산물 특유의 험한 모양 때문에 가장 서민적이고 가장 얼큰한 분위기를 조성했던 음식들, 막창, 곱창, 순대, 족발이 식탁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 돼지머리가 없어 고사를 못 치렀다는 이야기도 들리니 복을 기원하는 한국인들의 소망은 이제 누가 들어준단 말인가.

우유 대신 두유 넣은 카페라테?

지금까지 구제역과 관련해 살처분된 가축 중 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행히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돼지에 비해 적을 뿐이지 2월 초 기준으로 약 15만 마리의 소가 살처분됐다.

이중 특히 심각한 것은 젖소의 감소다. 전체 젖소 사육 두수 43만 마리 중 구제역이 쓸어간 젖소는 3만 6000 마리, 여기에 이상기후로 인해 전체적으로 생산성이 저하되면서 우유 수급량은 크게 떨어졌다. 이에 아메리카노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우유가 주재료로 들어가는 커피가 위기에 처하게 됐다.

정부는 유업체에 소비자용 시판 우유와 학교 급식용 우유를 우선적으로 공급할 것을 당부했고, 서울우유, 매일우유 등 유업체들은 이를 받아들여 위 우유들의 가격을 고정하는 대신 3월부터 기업체에 공급하는 우유의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결국 난감하게 된 것은 커피 전문점과 제빵업체다.

스타벅스, 커피빈, 탐앤탐스 등은 카페라테에 우유 대신 두유를 넣거나 멸균 우유, 혼합 우유 등을 사용하는 등의 여러 대응책을 고려 중이다.

우유 대신 두유를 넣은 두유라테는 구제역 이전에 이미 살짝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다. MBC <무한도전>에서 뉴욕에 간 멤버들이 공정무역 카페인 '씽크 커피(think coffee)'에 가서 두유로 만든 라테를 주문하는 모습이 공개된 것이다.

에스프레소에 우유 대신 두유를 넣어 만든 두유라테는 카페라테보다 칼로리가 30% 정도 낮아 다이어트나 건강식, 또는 채식주의자들의 커피로 애용되어 왔다.

"세계 흐름은 동물복지에 신경을 안 쓰는 축산이 얼마나 사람에게 위해한가를 따지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의 홍하일 위원장은 최근 녹색연합에서 펴내는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 2월호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고기 소비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동물의 복지를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기업형 축산이 늘었고 이것이 불러온 가장 최악의 사태가 구제역 파동이다. 대한민국의 고기 소비는 근 10년 사이 3배 가까이나 늘어났다. 이전에 기업형 축산은 닭이 유일했지만 이제 소, 돼지 모두 기업형으로 대량 사육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항생제를 먹인 사료는 축산업자들에게는 필수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항생제를 먹은 가축들이 사람과 접촉하는 상황에서 온갖 질병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는 "동물 복지는 동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가축의 사육 과정이 사람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식용 고기가 얼마나 건전하게 길러졌는지에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관심이 적극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이는 전세계적인 추세다.

물론 가장 안전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적게 기르고 적게 먹는 것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과도한 육식을 금지한다면 우리가 보여야 할 반응은 무엇인가.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