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작가 강연, 수상금, 기고, 정부 창작지원금 등 통해 생활비 충당

문화예술위원회가 작가 지원은 크게 개인과 단체로 나뉘어 운영된다. 2009년 예산 삭감 후 점차 늘고 있지만 지원금 선정과 지급은 더 까다로워졌다. 창작지원 프로그램의 하나로 2009년 문을 연 연희문학창촌
'예술가는 별난 종족이 아니다. 다른 모든 인간들처럼 먹고 살 돈이 필요하다. 이런 필요에 대한 요구가 예술을 천박하게 만들지 않는다.'

소설가 김사과 씨가 쓴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의 일부분이다. 최고은 씨 사망 보도 전부터 문학계에서는 작가의 정체성과 예술가의 생존을 둘러싼 논쟁이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고 있던 참이었다.

이른바 김영하-조영일 논쟁. 이 설전이 벌어지던 중 최고은 작가가 사망했고, 알려지다시피 소설가 김영하 씨는 그의 사인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가 트위터 절필을 선언한 상태다.

앞의 글은 이 과정에서 발표된 것으로 김사과 씨는 고 최고은 씨와 마찬가지로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소설가 김영하 씨에게 수업을 받은 바 있다. 이 글에서 김 씨는 최근 현실을 "국민소득 2만불에 달한다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는 굶어 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엉망진창인 이 사회"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국내 문인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정부의 지원책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작가로 산다는 것

평론가 조영일(좌), 소설가 김영하(우)
국내 문인들의 원고료가 박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주업'이라 할 수 있는 작품 창작으로 먹고 살기란 베스트셀러 10위권 이내 작가 이외에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 단편소설의 경우 문예지에 발표할 때 200자 원고지 매당 7000원에서 1만 2000원 선의 원고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액수는 주요 문예지의 경우에만 해당되고 영세 출판사의 경우 원고료를 정기구독으로 돌리거나 원고료가 아예 없을 때도 있다. 시의 경우 편당 5만 원 내외, 비평은 200자 원고지 매당 3000원을 주는 문예지도 있다. 고로 작가들이 작품 창작만으로 먹고 살기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순수문학 작가로 한정해 말한다면 '전업 작가'들은 주로 문학 강연, 문학상 수상금, 에세이 기고, 정부의 창작 지원금 등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한다.

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 보조사업 중 문학창작기금 지원금은 2005년 15억 원이 집행된 후 꾸준히 늘어 2008년 18억 4400만 원이 쓰였지만, 2009년과 2010년 8억 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창작지원 선정 건수도 2005년 164건에서 2009년 72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혜택을 받는 문학인이 이만큼 줄었다는 뜻이다. 2011년 문학창작지원금(개인 부문)으로 9억 원이 책정된 상태다.

작가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됐던 정부의 지원제도를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창작기금 지원'과 '우수문학선정', '문예지게재우수작품선정' 을 꼽았다.

작가들에게 가장 호응을 받았던 문예지게재우수작품선정지원 제도는 노무현 정부인 2005년 신설, 4년간 운영되다 예산이 대폭 삭감된 2009년에 폐지됐다.

문예지를 통해 발표된 작품 중 분기별로 우수작품을 선정해 원고료 이외 별도의 지원금을 작가에게 직접 지급했던 제도다. 시는 편당 100만 원, 단편소설은 200만~250만 원, 장편소설은 500만~600만 원, 동시 50만~70만 원, 동화 100만~150 만 원이 지원됐다. 2005년 848편에 12억 7360만 원, 2006년 835편에 13억 원, 2007년 하반기에서 2008년 상반기 610편에 8억 600만 원이 지원됐다.

이 제도가 폐지된 현재, 신진작가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창작기금 지원제도다. 2009년 이전까지 2~3년 이내 단행본 출간을 전제로 한 해 1200만 원의 지원금이 제공됐다. 일괄지급 방식으로 독신이라면 생계에 대한 고민 없이 1년에서 1년 반 동안 창작에 매달릴 수 있는 금액을 지원했던 셈이다.

이 제도는 지난해부터 '문학창작기금 마련'(등단 10년 이상)과 '차세대 예술인력 집중육성지원'(등단 10년 미만)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2년에 걸쳐 1000만 원씩 지원되며 선발 요건이 대폭 까다로워졌다. 예를 들어 5년 내 작품 활동 실적(단행본 출간)이 있어야 하고, '활동계획서'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무명의 작가들이 지원금 타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게다가 지난 해 지원금 사용에 대한 영수증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올해는 아예 카드를 주는 방식으로 지원금이 지급된다. 한마디로 지원받은 작가들의 소비 내역을 정부기관이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예술인 지원금이 국민세금과 복권기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투명하게 사용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정작 수혜를 받는 젊은 작가들은 아쉬움을 표했다.

등단 10년 차인 A씨는 "기존 지원 제도에서는 원룸 보증금이나 월세 등 실제 창작을 하며 생계에 드는 목돈을 쓸 수 있었지만, 바뀐 지원 제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역시 등단 12년 차인 B씨는 "신진 작가들이 창작에 전념하려면 사실상 생계비가 필요한데, 세부항목을 모두 신고해야 하면 집필 시 필요한 자료구입비 정도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우수문학선정'은 국내 출간된 문학도서 중 매 분기 우수작을 선정, 2000부씩 구입해 도서산간 지역에 보급하는 사업이다. 우수작에 선정된 저자들은 이 책의 인세인 200만~300만 원 가량을 출판사로부터 받는다. 2005년 70종이었던 분기별 우수작은 역시 2009년과 2010년 25종으로 대폭 삭감됐다가 올해 50종으로 늘었다.

예술에도 돈이 필요하다

취재과정에서 작가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말했다. 정부의 예술인창작지원 규모와 문학작품의 양과 담론이 비례했다는 것. 실제로 문예지게재우수작품선정지원 제도가 실행된 2005년에서 2008년 사이는 시단에서는 미래파 등 젊은 시인들의 작품이 쏟아졌던 시기다.

소설 역시 2000년 전후 등단한 젊은 소설가들의 작품들로 문학계 새로운 담론을 형성한 시기다. 일례로 김애란(2005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편혜영(2007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김태용(2008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등 이전 세대와 동떨어진 새로운 경향이 문단에 적극적으로 회자될 때가 이 무렵이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눈에 띄는 문학계 경향의 변화나 신인 등장은 없다.

시인 이영주 씨는 "당시 젊은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실제로 지원금이 활동에 도움이 되기도 했고, 액수를 떠나 평론가와 출판 관계자들이 매 분기 출간된 모든 문예지 작품을 보고, 평가해주기 때문에 의욕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 김근 씨는 "한쪽에서 심사위원 성향에 맞는 작품을 발표한다는 등의 제도가 주는 폐해도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당시 젊은 작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고은 사건에 대한 작가들의 한마디

최고은 씨 사망 이후 문인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의 생활, 사회의 지원제도 등에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이 보도에 대해 문인들은 "선정적 보도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인 이영주 씨는 "첫 보도가 자극적으로 보도됐다. 뉴스를 보고 아버지가 전화해서 걱정하더라. 작가들이 마치 거지인 것처럼 왜곡, 과장됐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최고은 작가의 죽음에 많은 이유와 주변인들의 고통이 있을 텐데 마치 자본주의 사회가 작가들을 착취했다는 듯 보도됐다"고 말했다.

시인 김근 씨는 "최고은 씨 사망의 경우 문화예술인들의 입지를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상징이 된 것 같다. 하지만 선정적 기사로 오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시인 겸 연출가인 김경주 씨는 "무명작가로서 활동할 때 주변의 격려와 도움이 중요하다.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고, 그 과정을 겪는 후배들이 있다. 고 최고은 작가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내성적인 성격에 어려움을 주변에 말하지 않았던 게 가장 안타깝다. 언론에서 '사회가 문제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손잡아 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을 구조로 돌려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