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무라 만게츠의 13년 만의 재출간에도 여전히 '19금'딱지시인 김경주, 김민정 "문학가의 도덕적 기준은 사회의 기준과 달라"

소설 <게르마늄 라디오>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게르마늄의 밤>
1월 25일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일본 작가 하나무라 만게츠의 소설 <게르마늄 라디오>를 청소년 유해간행물로 결정, 출판사에 통고했다. 청소년보호법 등 관련 조항에 근거, 선정성과 폭력성을 이유로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문제의 장면은 수녀와의 성행위 장면과 남성 간의 오럴섹스 장면 등이다. 이 소설은 1998년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청소년 유해간행물로 결정되면 '19세 미만 구독불가'로 조치돼 청소년에게 대여 및 판매가 금지되며 본문을 읽지 못하게 포장해 일반 서적과 구분해 판매해야 한다. 출판사 이상북스는 이 결정에 반발하며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예술과 외설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쪽에서 예술성을 격찬하는 작품이, 다른 한쪽에서 유해간행물로 찍힌 사례가 빈번하다. 하지만 외설의 기준이 전적으로 수용자의 판단에 달려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걸까? 고로 고매한 예술작품을 부박한 대중이 비꼬아 보는 걸까? 예술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무엇이 예술입니까? 무엇이 외설입니까?

이건 뭐가 다르죠?

이 소설은 살인을 저지르고 수도원에 숨어든 주인공을 통해 종교와 인간의 본능과 이중성을 파헤친 작품으로 아쿠타가와 문학상 수상 당시 "현대 종교의 위선성을 야유, 문학이야말로 기존 가치의 본질적인 파괴자라는 원리를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동명의 영화가 제7회 서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초청을 받기도 했다.

평소 "작품에 꼭 필요하다면 벗겠다"는 배우의 말에 "작품에 필요한 노출은 있지만, 작품성에 꼭 필요한 노출은 없다"고 생각한 필자는 시인 김경주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2003년 등단한 그는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 등 세 권의 시집으로 2000년대 가장 주목받는 시인이 됐다.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고,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 바람'을 운영하며 다양한 실험극을 기획, 연출하고 있다.

이렇게 화려한 이력을 쌓기 전, 그는 한때 야설작가로 활동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시와 야설은 뭐가 다른 거죠?" 그에게 물었다. "완전히 달라요." 그가 대답했다.

"그때 쓴 야설은 부끄러워서 말할 수도 없어요. 제 작품을 쓰고 싶어서 생계형 글쓰기를 했던 것이고, 음성 콘텐츠였죠. 그걸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다만 진정성이 있다면 자기 검열을 심하게 했다는 거예요. '나 자신을 흥분하지 못하는 글을 보고 타인이 흥분할 수 있나'하는 생각에서. 글의 객관성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문학상을 받은, 혹은 문학상 후보에 오른 그의 시 중에서 야한 작품도 꽤 있다. 이를테면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에 실린 '아버지의 귀두' 같은 작품. 두 번째 시집 <기담>의 몇몇 작품도 만만치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건 야설과 어떻게 다른가요?" 그에게 물었다.

"본질적으로 저의 미적 기준에 적합하다고 생각할 때는 야한가 야하지 않은가를 신경 쓰지 않죠. 오히려 그런 모티프를 서정화해서 말초적인 감각으로 환원시키는 건 아닌지 경계하죠."

김경주 시인은 "문학가에게 도덕적 기준은 사회의 기준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예술가는 자기 안에 도덕과 윤리를 만드는 사람이고 이 질서를 만들며 사회와 반할 때,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렇다면 그가 타인의 작품을 볼 때 외설과 예술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그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먹고 살기 위해 쓴 작품이라면 외설이라는 것. 장르를 떠나 대중의 이목 끌기용 '먹이'로 만든 작품이라면 외설이라고 생각한다고.

시인 김경주 씨 (사진=임재범 기자 )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지만, 대중문학은 기본적으로 시장을 염두하죠.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쓰느냐, 글 쓰기 위해 먹느냐가 중요한데, 후자는 자기 작품이 '먹이'가 될 때가 많을 겁니다. 순수예술을 한다고 해도 이런 마인드로 만든 작품이라면 전 외설이라고 봐요."

<게르마늄 라디오>의 유해간행물 결정에 대해 그는 "상상력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사회에 있다는 생각이 문제"라고 말했다. 자신은 오히려 '잉여문화'라 불리는 B급문화가 일본 문화의 긍정적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고 본다.

"제가 좋아하는 B급 문화콘텐츠 중에 이런 이유로 수입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해요. 그래도 볼 놈은 보죠. 직거래와 해적판이 있으니까요."

야한가요? 야합니다

간행물윤리위원회가 근거로 든 선정성을 잣대로 본다면, 최근 퀴어(queer) 담론을 다룬 거의 모든 문화예술 작품에 유해간행물 딱지를 붙여야 할 판이다. 문학계로 좁혀 봐도 황병승, 김민정, 김이설 등 이른바 미래파 시인들의 작품 중에는 <게르마늄 라디오> 못지않은 묘사가 나오니까.

시인 김민정 씨 (사진=김주영 기자 )
황병승의 <여장 남자 시코쿠>가 발간되며 국내 시단에서 퀴어 담론이 화두로 떠오른 게 불과 5~6년 전이다. 성적 언어나 욕설, 비어, 속어가 둥둥 떠다니는 김민정의 시는 솔직하고 도발적인 표현으로 시단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시인 김민정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등 두 권의 시집은 가볍고 엉뚱한 상상을 통해 천연덕스럽게 일상을 재현한다.

그녀는 언젠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내 안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내뱉은 게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원초적인 언어들이 일상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비어와 속어, 육두문자가 난무한 시로 그녀는 2007년 박인환 문학상을 받았다.

그녀에게 물었다. "언니 시집에 19금 딱지 붙으면 어떻게 할거야?"

"한 번도 생각 안 해봤는데."

당황한 그녀가 말했다.

"글쎄. 시집이 19금이 될 수 있을까? 우리(시인들)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소설은 이야기가 있고, 타깃도 불분명하니까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시는 전적으로 시인 개인 이야기이고, 사회적으로 시인의 이해를 따를 가능성이 적으니까. 무엇보다 시는 무슨 말하는지 읽어내질 못할 걸?"

'무슨 말인지 못 읽어낼 것'이란 그녀의 생각과는 별개로, 문학청년들 사이에 젊은 시인들의 시풍을 따라 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 전공 학생들이 즐겨 읽는 작품도 이들 미래파 시인들의 작품이 상당수다. 그러나 이들 역시, 대학입시를 좌우하는 대회에서는 전통 서정시를 제출한다.

성적 표현과 비속어, 육두문자가 난무한 그녀의 시를 보고 한때 시단에서도 "일부러 이렇게 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많았다. 이런 말에 상처를 입었던 모양이다. 2005년 첫 시집을 낸 후 한동안 작품을 쓰지 못했다고. 그녀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쓸 수밖에 없으니 이렇게 쓴 것"이라고 말해왔다.

"나는 외설과 예술 구분 자체가 없어. 내가 써야 하는 게 코끼리인데, 코끼리 피부가 떠오른다면 코끼리 피부만 생각하고, 코끼리 코를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코만 생각해. 극단적으로 성기를 건드릴 수도 있는 거고. 그때부턴 뭘 봐도 그렇게 보이는 거고. 결론적으로 외설과 예술의 차이는 없는 거지."

마지막으로 김경주 시인에게 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그렇다면 타인의 작품을 볼 때도 마찬가지일까?

"근데 내가 몸에서 할 줄 아는 걸 하는 사람과 흉내를 내는 사람의 작품은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MBC <위대한 탄생>에서 오디션 볼 때, 심사위원들이 '왜 누구처럼 부르느냐'고 바로 짚었잖아. 그런 면에서 외설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어디서 본 듯한 거야. '진짜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는 것과 흉내를 내는 건, 보는 사람이 알아."

기억나요? 19금 소설

소설 <게르마늄 라디오>는 지난 1999년 <게르마늄의 밤>이란 제목으로 국내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첫 출간 당시에도 역시 문학성보다 '19금' 판결로 알려졌던 작품으로 1997년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된 후 처음으로 '표시 포장 명령권'을 발동한 작품이었다.

출판사 이상북스의 송성호 대표는 "나름 문학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국내 상황이 13년 전과 많이 바뀌었다고 판단해서 냈다. 출간 전에 간행물 심의위원회 담당자랑 통화도 했다. 이 책을 내겠으니 99년 심의 근거나 자료가 있다면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담당자는 당시 근거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번 재출간 책은 소설가 장정일 씨가 해설을 써 눈길을 모았다.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90년대 외설과 예술논쟁의 한 가운데 섰던 그는 이번 간행물윤리위원회의 결정 후, 출판사로 보낸 이메일을 통해 "심사위원 수준이 의심스럽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온갖 종류의 '19금' 콘텐츠가 인터넷으로 유포되는 요즘도 19금 소설이 있을까? 하지만 분명 존재한다. 앞의 사례처럼 간행물윤리위원회의 결정으로 19금 표시를 달아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출판사가 자체 검열을 통해 19금 도서로 지정, 포장 판매하는 소설도 있다.

지난해 출간된 <어둠의 아이들>이 대표적인 사례. 이 작품은 <피와 뼈>로 알려진 재일작가 양석일 씨의 장편 소설로 제3세계 아동들의 인권유린 실태를 고발한 작품이다. 아동인신매매, 불법장기매매, 아동성매매의 실상을 드러낸 파격적인 묘사 때문에 출판사 문학동네 측이 자체적으로 '19금 구매불가'를 표시하고 포장 판매했다. 당시 방한한 양석일 작가는 본지 인터뷰에서 "이런 장면을 쓰는 사람과 보면서 '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문제가 있는가?"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