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사회' 맞춰 시간파괴, 관람시간 연장, 야간 프로그램 개발 박차

경기도 미술관 야간 전시 전경
대형 마트, 편의점, 맥도날드, 풀 가동 공장, 라디오 방송까지.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선 많은 곳에서 이미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늦은 밤에도 필요한 돈을 찾을 수 있고, 급하게 주말 여행을 떠나더라도 새벽 시간 쇼핑이 가능하다.

지구 '촌'이 된 덕에 시차가 다른 대륙으로 업무가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응급실이 아니더라도 늦은 밤까지 진료하는 병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심야 영화는 이미 익숙한 문화가 됐다. 그런가 하면 송파구에는 밤 8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이어지는 밤샘 걷기 프로그램도 여름, 가을에 정기적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밤 10시에 시작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방송 시간이 너무 이르다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현대인들이 기존의 시간 구조에서 자유로워졌다.

영국의 컨설턴트이자 저널리스트인 레온 크라이츠먼은 <24시간 사회>(민음사)에서 이 같은 시간의 붕괴에 주목한 바 있다. 24시간 사회는 단지 온종일 가동된다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의 시간의 틀을 허무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기술의 발달과 노동방식의 변화가 우리를 24시간 사회로 이끌었으며, 이를 통해 "주체적으로 삶의 형식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말하며 변화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그와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이들도 많다. 자본주의 속에서 '길어진 낮'은 노동의 착취와 부의 불평등을 초래한다는 비판이다. 올해 초, '두산 아트랩'을 통해 미완성작으로 <24시-밤의 제전>을 선보인 이경성 연출가 역시 바로 이런 점을 우려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야간개장 사진교실' 프로그램을 통해 열린 전시 전경
이 같은 문제점을 밝히기 위해 그가 속한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예술가들은 약 두 달간 도시의 밤을 돌아다니며 공공적이거나 혹은 개인적인 밤을 리서치했다. 그러나 그 결과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두기엔 그 범위가 상당히 다양했다.

밤 9시,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

우리가 살아가는 24시간 사회를 긍정하거나 혹은 부정하기엔 너무나 사적인 동시에 다분화 됐다. 이 같은 판단을 보류하게 하는 분야 중 하나가 야간 관람 시간 연장을 통해 이용자의 편의를 돕는 문화계 서비스다. 밤 시간의 이용시간 연장이 아니더라도 문화계에서 시간 파괴 현상은 몇 년 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2004년 예술의전당에 처음 도입된 오전 11시의 마티네 콘서트는 전국 공연장과 박물관 등으로 확산되며 주부들과 노년 부부들을 새로운 관객층으로 끌어들였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호젓한 분위기에서 그림을 감상하고자 하는 이들이나 퇴근 후 독서를 원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늦은 밤까지 운영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갤러리, 도서관 등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경기문화재단에서 '시공초월 문화프로젝트'를 다시 시행한다. 경기도박물관과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및 경기도자박물관, 실학박물관을 총괄하는 경기문화재단은 산하 기관의 개관시간을 밤 9~10시까지 늘린다고 발표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야간개장 사진교실
야간 연장 운영은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한 것으로, 1~2월만 한시적으로 멈췄다. 지난 6개월간 야간에 방문한 관람객수는 총 41883명으로 같은 기간 전체 관람객의 7%를 차지할 정도로 호응이 적지 않다.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앞으로도 도민들이 퇴근 시간 이후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라며 "야간 연장 운영과 더불어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로 문화사랑방으로서 기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갤러리로서는 유일하게 밤 9시까지 연장 운영하는 금산갤러리는 "직장인들이 많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말한다. 갤러리와 멀지 않은 곳에서 남산 케이블카가 운영되고 있어 관광객이나 직장인, 가족 단위의 지역 주민의 방문이 늘었다고 한다.

해외의 미술관이나 갤러리도 일찍부터 관람객 분산 유도와 문화수혜자 확대를 위해 연장 운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은 매주 수요일과 매달 마지막 금요일 밤 10시까지 연장 운영하며,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수요일과 금요일 밤 10시까지 열려 있다. 프랑스 팔레 드 도쿄 미술관의 경우는 자정까지 운영되기도 한다.

야간 연장 운영이 시작되면서 관람객들을 위한 야간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기관도 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는 금요일 9시까지 연장 운영하면서 '프라이데이 레이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를 통해 관람객은 가이드 투어나 강연, 토크 등에 참여할 수 있다. 퐁피두 센터는 보통 9시까지 운영하지만 특별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목요일과 금요일은 11시까지 운영된다.

백남준아트센터 야간 공연 현장
종로구에 위치한 정독 도서관의 당초 연장 운영의 이유는 여타 문화 공간과는 다르지만 연장 이후 이용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3년 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시범사업으로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연장 운영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그 덕에 방문객 수가 많이 늘었다.

주로 야간에는 직장인이나 중장년층의 이용이 많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연장 운영을 하면서 고전 철학, 서양미술읽기, 어학, 글쓰기 등의 인문학 강좌도 개설됐는데, 매번 수십 명이 무료로 수강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77회 열렸던 강의에 3700여 명이 다녀갔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2008년부터 야간 개장 프로그램을 개설했는데, 지난해 16차례 진행된 야간개장 사진교실에는 회당 20~25명이 참여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수강생들이 촬영한 사진 중 퀄리티가 높은 작품은 액자에 담아 올해 1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 전시를 열기도 했다.

이들뿐 아니라 야간 연장 운영을 하는 문화관련 기관에서는 그와 발맞춘 야간 프로그램 개발에 고민 중이다. 24시간 사회에서 문화계 서비스는 어떻게 변화할까, 지켜볼 일이다.

밤을 밝히는 미술 관& 도서관 (연장 운영시간만 표기)

서울시립미술관 - 특별 전시 기간 중엔 화~토까지 밤 9시, 일과 공휴일은 밤 8시까지.

덕수궁 미술관 -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밤 8시 30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 계절에 따라 밤 8~9시까지.

63 스카이 아트 - 밤 10시까지.

호림아트센터 - 수요일만 예약할 경우 밤 8시까지.

남산테디베어뮤지엄 - 밤 10시까지.

국립중앙도서관의 야간도서관 서비스 – 저녁 6시에서 밤 11시까지.

경기도박물관,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 밤 10시까지.

경기도자박물관과 실학박물관은 밤 9시까지.

국립중앙박물관 - 수요일과 토요일 밤 9시까지.

정독도서관 - 평일 밤 10시까지.

국회도서관 - 평일 밤 10시까지.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