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BOX' 전] 서울 아트선재센터 5월 1일까지

불시착한 UFO나 SF영화 속 타임머신 혹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현대적 버전 같다. 서울 아트선재센터 2층에 설치된 'H BOX'는 외관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철갑을 두른 듯한 본체와 바닥을 짚은 빨판 모양 다리들은 견고하지만 육중하지는 않다. 언제든 착착 접을 수 있고, 어디서나 텐트처럼 지을 수 있는 간편한 상영관이다. 건축가인 디디에 피우자 포스티노는 여행 가방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경사로를 올라 암실에 들어서면 스크린과 간이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영상과 소리가 방을 가득 채운다. 최대 10명까지 들어갈 수 있다. 독특한 관람 형식이 곧 관람 내용이 된다.

H BOX는 패션 브랜드 에르메스 재단이 2006년부터 진행해온 프로젝트. 매년 4명의 비디오 아티스트를 후원하고 그 작품들을 전세계에서 순회 상영한다. 이 "여행 키트 상영관"은 파리 퐁피두센터, 런던 테이트 모던 갤러리, 요코하며 트리엔날레 등을 거쳐 서울까지 온 참이다. H BOX 큐레이터 벤자민 베일은 이런 여정이 "다양한 문화권의 작가들을 아우를 수 있는 프로젝트의 개방성"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상영작은 작년과 올해 만들어진 8편 작품이다. 한국 작가 남화연의 '당신의 유령을 해치지 마시오'를 비롯해 중국 장가 왕 지안웨이의 '제로', 이스라엘 작가 오머 패스트의 '일요일 아침-<터널> 연작 중 3화', 인도 작가 니킬 초프라와 무니르 카바니의 '사람은 바위를 먹는다' 등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반영한 최신 비디오 아트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남화연, '당신의 유령을 해치지 마시오', 2010
이밖에도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는 기존 H BOX 아카이브 작품이 전시된다. '루프Loops'라는 주제로 처음과 끝이 분명하지 않고 순환하는 형식의 5편을 추렸다.

온라인 가상 현실의 특징적 모티프들을 콜라주한 클리프 에반스의 '시민: 늑대와 보모', 비틀즈와 롤링스톤스의 공연 장면을 3D 애니메이션으로 변환한 코타 이자와의 '디오라마', 한 여성이 공 없이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는 영상과 공 튀는 소리를 합성해 실제 테니스 경기가 벌어지는 것 같은 환영을 만들어내는 수메 체의 '오픈 스코어' 등은 비디오 아트의 장르적 실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H BOX 전시는 5월1일까지, H BOX:Loops 전시는 3월27일까지 진행된다. 02-733-8945


오머 패스트, '일요일 아침-<터널> 연작 중 3화', 2010
왕 지안웨이, '제로', 2010
니킬 초프라, '사람은 바위를 먹는다', 2011
클리프 에반스, '시민:늑대와 부모', 2009
코타 이자와, '디오라마', 2009
수메 체, '오픈 스코어', 2007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