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리빙트렌드] 2011서울 리빙 디자인페어 '리빙 트렌드 세미나' 개최디지털 기술과 자연재해가 바꾸는 삶의 모습 분석 예측

일본 대지진이 올 겨울 모피코트 소비를 부추길 것이다?

커피보다 비싼 물과 인디언 추장의 것처럼 무거운 원석 목걸이가 거리를 휩쓸 것이다?

스칸디나비아풍 인테리어 디자인의 유행은 디지털화된 생활 방식 때문이다?

유행에는 이유가 있다. 취향은 결핍을 반영한다. 우리가 사는 방식이 우리가 사는 시대를 말해준다. 소비 패턴의 변화에서 삶의 목적을 추출해낼 수 있다. 지난 3월 24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1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부대행사 '리빙 트렌드 세미나'의 분석과 예측은 현대적 삶의 좌표 그리기였다.

아이러니한 시대, 근본을 질문하다

아이러니의 시대에는 원초적인 소재가 각광받는다. 2011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전시된 김자형 디자이너의 작품.
"기술과 정보는 넘쳐나는데 본질적인 것들은 채워지지 않는, 풍요와 결핍이 공존하는 시대죠."

트렌드연구소 인터패션플래닝의 이경옥 CDO는 '2012 S/S 트렌드 워치' 세미나에서 현재를 "아이러니한 시대"로 정의했다. 2010년부터 급격히 전 세계를 강타한 이상기후와 자연재해는 아이러니를 강화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큰 흐름 속에서 무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전망을 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가 없기 때문에 낙관주의가 득세한다. 멸종 위기에 처한 인류의 생존 방식이다.

그 와중에 근본적인 질문이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 된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뭔가?"라는 것이다. 디자인에서도 전문가의 견해나 디자이너의 창의성은 우위를 내주었다. 사용자 자신의 요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연히 디자인의 장식적 요소는 줄고 사용자 중심 기능만 남는다.

이경옥 CDO는 아이러니한 시대적 특징을 6가지로 정리했다.

'불편한 만족Uncomfortable Satisfaction'은 겉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충분하지 않아서 완벽한 만족에 도달할 수 없는 상황을 이른다. 예를 들면 지구 표면의 물의 총량은 그대로지만, 각종 오염으로 먹을 수 있는 물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커피나 와인보다 비싼 물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워터 바'나 '워터 카페'가 각광받는다.

'역설적 럭셔리Paradox Luxury'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오히려 모피나 원석 등 반환경적으로 보이는 사치품의 소비를 낳는 것이다. "올 겨울에는 표범가죽 어그 부츠, 북극곰가죽 가방까지 나올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겨울이 비정상적으로 추울수록 어떤 소재보다도 따뜻한 모피코트를 선호한다.

원초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도 한몫 한다. 같은 이유로 원석 액세서리가 뜬다. 패션 시장에서는 거의 원시적으로 보이는 팔찌와 목걸이가 선보이고 있다. 단, 귀걸이는 "귓불이 찢어질 수 있기 때문에" 사라진다.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Guilty Pleasure'은 '폭탄버거', '내장파괴버거', '혈관파괴버거', '심장마비버거', '괴물버거' 등 인체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초고칼로리 음식의 유행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도 편리함만을 선사하지는 않았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소통의 가능성을 약속했지만 변하지 않는 믿음, 속 깊은 정, 친밀한 배려와 물리적 접촉 같은 인간관계의 고전적 가치까지 디지털화하지는 못했다.

호주에 등장한 워터 바
"40~50대 중년 남성들 중 아이폰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그 '그립감' 때문이에요. 아이폰은 다른 스마트폰보다 손에 닿는 느낌이 좋아서, 타인과 접촉하고자 하는 욕구를 채워주죠. 그만큼 디지털 기술 기반 의사소통이 사람들 간 만남을 제한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절연된 연결Disconnected Connection')

스마트 기기에 의존할수록 사람들의 뇌 기능은 오히려 떨어진다. 이전에 만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내비게이션을 끄면 길을 찾지 못하는 '디지털 치매'에 걸리기 쉽다.

이어폰은 청각을 망가뜨리고, 다양한 기기에 동시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은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디지털 기술에 둘러싸인 우리들은 점점 '똑똑한 바보Smart Dumber'로 진화 중이다.

집안에 물건은 많은데 정작 잘 쓰지는 못하는 뒤죽박죽의 상태는 '필요없는 풍부함Needless Fullness'다. 일반 진공청소기에 로봇청소기, 물청소기까지 종류별로 다 갖췄지만 청소는 별로 하지 않는 가정을 떠올리면 된다. 이럴 때 각양각색 청소기는 짐만 된다. 차라리 내다 버리고 발 쭉 뻗고 자는 게 현명할 텐데, 오늘날 소비자들은 그럴 용기가 없다.

아이러니에 대처하는 삶의 방식

작년 불어닥친 모피 열풍은 올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런 시대에 아이러니를 체화하면서도 아이러니에 대처하는 삶의 방식이 나타난다. '나쁜 동조자Baddish Sympathizer'들은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되 점잖지 못한 성격을 가진 인물에게 끌리는 사람들이다.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샌지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대표적인 예다. 폭로와 독설은 음모론에 시달려 온 대중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작년 미국 직장인들은 맥주 2병을 마시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며 28년 직장생활을 마감한 한 승무원에게 열광하기도 했다.

아마추어적으로 어떤 일을 즐기고, 즐기다 보니 훈련된 프로를 넘어서는 '위대한 아마추어Great Amateur'들도 각광받는다. 이경옥 CDO는 "사람들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바로 위대한 아마추어들이다. 이들은 전 시대의 프로페셔널리즘이 부딪힌 한계를 극복해낸다"고 말했다.

미국의 테일러 스위프트, 한국의 아이유 등 요즘 '대세'인 소녀 뮤지션들의 공통점, 바로 언플러그드 감성을 지닌 테크노 세대의 부상도 눈에 띈다. "전자음악과 함께 성장한 세대가 다시 고전적인 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음악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패션계는 잉그리드 버그만과 오드리 헵번을 불러내고 있고, 대중문화는 비틀즈와 셜록 홈즈를 재해석한다. 80년대 이탈리아의 실용적 디자인이 현대 디자인에 영감을 주고, 안테나가 달리고 손으로 채널을 돌려야 하는 TV도 다시 등장했다. "풍요의 종말을 맞은 시대에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는 흐름은 계속될 겁니다."

영국에서는 13000칼로리가 넘는 괴물버거가 등장했다.
디지털 시대의 제왕,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창의성이 "한 잔의 차와 조명, 그리고 음악"으로부터 나온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처럼 첨단 기술의 흐름 속에서 기계가 아닌 사람, 영적인 생활에 눈을 뜨는 '안티 스마트' 방식도 유행 중이다. 최근 인터넷 상에서는 접속하면 바다가 보이고 파도소리만 들리는 '2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Do Nothing time for 2 minutes' 사이트가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 때문에 사라진 것들, 예를 들면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근무 시간, 방해받지 않는 완벽한 휴가, 몰입과 집중력 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외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Do Nothing' 서비스가 가동되어 소비자의 안티스마트 생활을 돕는다.

서비스를 신청하면 스마트폰을 담아 일정 기간 동안 멀리 보내버릴 수 있는 상자가 배달된다. 저녁 약속이 있을 때 스마트폰을 싸놓으면 문자와 메일을 차단해주는 '내 휴대폰은 당신을 위해 꺼져 있다My phone is off for you' 행커치프도 절찬리 판매 중이다. 함께 식사하는 상대를 배려하는 에티켓이다.

디지털 기술과 평화롭게 동거하기

디지털화는 주거 환경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언뜻 생각하면 스마트 가전 제품으로 꽉 찬 신상품 박람회장 같은 거실이 일반화되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반대다. "집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제일기획 고은영 프로는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주거 문화의 변화' 세미나에서 사람들이 디지털 시대에 대처해 자신의 둥지를 꾸미는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저녁 식사 상대를 배려하는 의미로 휴대폰을 싸놓는 내 휴대폰은 당신을 위해 꺼져 있습니다 손수건
최근 인테리어 디자인의 경향은 크게 '에코 미니멀Eco Minimal', '모던 클래식Modern Classic'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자연스러움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에코 미니멀'도, 시간이 축적된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모던 클래식'도 디지털 시대의 속도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는 외부의 급변에 대한 사람들의 방어막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주목해야 하는 것은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꾸준한 강세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대적 현상이다. 왜일까?

"유행을 이끌어내는 가장 큰 동인은 결핍입니다." 고은영 프로는 현대 도시 생활에서 빛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도심의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녀를 낳은 후 교외로 갔던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자녀가 독립한 후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밀도가 높은 주거 환경에서 충분한 빛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죠. 에너지 효율이 화두로 떠오르며 인공적 빛을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고요.

겨울이 긴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집들은 전통적으로 빛을 최대한 끌어들이고 조명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특성이 비슷한 처지의 다른 도시들에 적용되고 있는 것 아닐까요?"

2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 사이트
집안으로 들어온 디지털 기술은 어깨의 힘을 뺀 친근한 모습이다. 집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위압적 디자인은 초대받지 못한다. 스위치를 누르면 숨어 있던 콘센트가 솟아오르는 테이블 등 감성을 건드리는 기술만이 가족이 된다.

부동산 개발업체인 피데스개발은 올해 새로운 주거 문화의 트렌드로 '나를 케어하는 집Care Center', '남자들의 둥지 가꾸기Man in Housing', '집안에 식물을 심고 소비하기Green 2.0' 등을 꼽았는데, 이 분석만 봐도 주거 문화에서는 도전보다는 안락이, 혁신보다는 자연스러움이 강조됨을 알 수 있다.

클라우딩 컴퓨팅(소프트웨어를 외부 데이터 센터에 저장한 후 개인 컴퓨터로 인터넷 접속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홈 환경에서도 모든 가전 제품이 컴퓨터화되는 것이 아닌, 각각에 최적화된 기능만이 더해지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다.

예를 들면 하루 중 전기 요금이 가장 싼 시간대에 전기를 축적해 놓는 TV가 등장할 수 있다. 전기가 민영화되어 공급 회사마다 전기 요금이 다른 영국에서는 전기 요금을 비교해주고 가장 알맞은 회사를 선택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이 나왔다고 한다.

"디지털과 스마트의 차이가 뭘까요? 디지털은 기술 중심이지만 스마트는 인간 중심입니다. 확장된 디지털 기술을 빼고 다듬어 사용자가 인간다움과 창조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스마트 기술이죠."

클라우딩 컴퓨팅에 기반한 스마트 홈 시스템
디지털 기술이 망망대해였다면 스마트 기술은 내 몸에 꼭 맞는 의자란 뜻이다. 그러니 시장의 속도에 지배당하거나, 타인의 신상품을 추종하는 기술 소비는 더 이상 트렌디한 것이 아니다. 기술의 가능성을 즐기되, 자신의 삶의 방식과 맞추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식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오래된 금언은 다시 스마트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주거 공간의 새로운 해석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가구부터 소품까지 국내 리빙 디자인 브랜드의 현황이 총집합하는 자리다. 디자인 트렌드뿐 아니라 주거 공간에 대한 새로운 해석까지 접할 수 있다.

올해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4명의 공간디자이너가 선보인 컨셉트 공간 '2011 디자이너초이스'. '반전이 있는 리빙 스페이스'라는 주제로 권은순, 김영옥, 박홍기, 정석연이 자신의 스타일을 펼쳐 보였다.

권은순 디자이너는 여행지에서 찍은 추억의 가족사진들을 다양하게 전시한 'memory_my daddy's photo_메모리, 집에 사진을 담다'를 선보였다. 흰 벽에 흑백 사진을 걸어 갤러리처럼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사진으로 의자를 만드는 등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더했다.

김영옥 디자이너의 'day dream house_우리는 어떤 집에 살고 있는가?'는 "침실이자 극장이고 집으로 가는 길"인 독특한 공간이다. 들어서면 좁은 길을 통해 빙글빙글 돌게 된다. 담을 따라 걷고 문에 드리워진 커튼을 걷어 신비로운 분위기의 방을 발견하게 되는 미로 같은 공간. 김영옥 디자이너는 이곳에 "여러 모습으로 내 몸에 남아 있는 집의 기억"을 담았다.

스칸디나비아풍 인테리어 디자인의 유행은 현대 도시 생활의 결핍을 반영한다
박홍기 디자이너의 'Urban tommorow_도심형 스튜디오 주택'은 1~2인 가구를 위한 컴팩트하고도 감각적인 주거 공간이다. 욕실과 침실이 붙박이장처럼 붙어 있고 중심 공간은 거실과 부엌, 식당이 결합되어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정석연 디자이너의 '작가의 서재: 낯설게 하기'는 소품과 조명을 통해 의외의 장면을 끌어들인 재치가 돋보인다. 옷 뭉치에 하이라이트 조명을 비추었더니 벽에 고양이의 실루엣이 나타난다. 책 더미에 비춘 조명은 책꽂이 너머 빌딩숲을, 모빌에 비춘 조명은 겸연쩍게 웃는 모습의 이모티콘 ' ;'을 바닥에 그려 놓았다.

가구들도 매력적이다. 금속파이프로 틀을 만들고 그 사이에 상자를 끼워 넣는 형식의 책장은 사용자의 상상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바뀐다. "익숙하고 평범한 것들이 다르게 보일 때 아름다움과 깨달음을 얻는다"는 철학이 담긴 공간이?

이밖에도 거대한 거울숲 사이에 자연을 의미하는 40개의 상자가 놓여 관람객의 명상과 산책을 이끈 이탈리아 디자이너 마라 세르베토의 현대백화점 창사 40주년 기념전 'Healing Forest', 5만 미터 이상의 흰색실로 짠 패브릭과 반투명의 벽, 12미터의 거울벽 등이 모던하게 어우러진 크리스털 브랜드 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 특별전 '크리스털에 의한 공간의 가치 창조'도 주목을 끌었다.

이중 '작가의 서재: 낯설게 하기'와 '크리스털에 의한 공간의 가치 창조'는 24일 디자인어워드 '눈에 띄는 공간상'을 수상했다.

디자이너초이스에 전시된 박홍기 디자이너의 Urban tommorow

디자이너초이스에 전시된 정석연 디자이너의 작가의 서재 낯설게 하기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