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패션협회 원대연 회장] 박물관 포함 전용 쇼장ㆍ도서관 등 패션 인프라 구축해야

최근 패션 박물관 건립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패션계에서는 언제부터 제기됐나?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이야기다. 2004년 패션협회회장으로 취임했을 때부터 지식경제부와 서울시에 패션 박물관 지원을 요청했었는데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현실화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고 다시 한 번 건의했을 때는 좀 더 구체적으로 진행됐다. 당시 서울시에서는 부지를, 지경부에서는 재정을 지원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고, 이명박 대통령도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역시 결실을 맺지 못했다.

지난 3월 14일 열린 세미나에서는 어떤 식으로 논의가 구체화되었나?

이번 세미나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패션을 문화사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 아래 다양한 사안이 논의됐는데 그 중 첫째가 패션 인프라 구축으로, 패션 박물관은 여기에 속한 개념 중 하나였다. 박물관을 포함해 패션쇼를 할 수 있는 전용 쇼장, 패션 서적을 구비한 전용 도서관 등 패션 콤플렉스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금 패션 박물관 하나도 힘든 상황에서 꼭 패션 전용 복합건물이 필요할까? 뉴욕패션위크도 몇 해 전까지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텐트를 치고 했고, 최근 옮긴 링컨센터도 복합예술센터다.

선진국의 사례가 해답은 아니다. 예산이 뒷받침돼서 패션만을 위한 장소가 생길 수 있다면 그게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대구시에서는 밀라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패션을 위한 기반 시설을 어느 정도 갖춰 놓았다. 그러나 수도가 아니다 보니 활용도가 떨어진다. 정작 모든 패션 회사와 관련업계가 몰려 있는 서울에 패션 전용 장소가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패션 박물관이 생긴다면 장소나 규모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나?

지금 규모나 장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그건 전문가가 나서야 할 부분이다. 다만 한 가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처음부터 작게 시작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 중 하나인 뉴욕 메트로폴리탄만 해도 매해 밀려 들어오는 디자이너의 옷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 힘들어한다. 국내 디자이너 작품과 거기에 따른 액세서리, 원단 등 패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이어야 한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의 내용이 충실하면 해외에서도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장해 달라고 요청해올 것이고, 이런 것들이 쌓여 역사가 되고 박물관의 힘이 된다. 당장 필요한 것부터 전시하자고 작게 시작한다면 금방 넘쳐날 것이고 대외적으로도 흥미를 끌기 힘들다.

장소는 세텍이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거론된 적이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려울 것 같고 접근성이 너무 떨어지지 않는 장소라면 어디든 상관 없을 것 같다.

동대문은 한국의 패션 특구에 위치도 서울의 중앙이다. 내년에 완공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가장 적당한 장소 아닌가?

동대문이 패션으로 특화된 장소인 것은 맞다. 그런데 그곳을 패션에 할애해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다른 디자인 부문의 반대에 부딪혔다. 디자인 영역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패션 외의 디자인이 80~90%를 차지한다. 수적으로 열세다. 아마 패션 도서관 정도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박물관까지는 힘들 것이다.

다양한 콘텐츠가 있으면 좋겠지만 장소의 협소함을 전제로, 가장 우선적으로 채워 넣어야 할 콘텐츠는 뭐라고 생각하나?

가장 우선시되는 건 국내 디자이너들의 옷이다. 1800년대 후반에 양장이 들어오고 난 이후의 옷들, 20세기 초반 이승만 대통령이 입었던 옷이라든지 1950년대 이후 디자이너 최경자 여사의 옷들,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의상들이 먼저 전시되어야 한다.

현재 패션 박물관과 관련하여 한국패션협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항이 있나?

따로 없다. 협회에서는 방향을 제안할 뿐이지 직접 나서서 추진할 만한 여력은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워낙 큰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인력을 구성하는 부분이다.

문광부는 정부부처이고 패션 전문기관이 아니므로, 패션 박물관 건립이 본격화된다면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자문단이나 추진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다. 이때 편파적으로 한 쪽 입장만을 대변하는 사람이 선정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이패션, 내셔널 브랜드, 학계, 정계 등 패션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골고루 뽑되, 파에 휩쓸리지 않는 건설적이고 폭넓은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들로 구성해야 한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