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 커피, 시장 점유율 95% 구조 속에커피전문점 호황, 편의점 원두 커피 성공, 캡슐커피 등 증가

4월 3일 SBS 스페셜 '커피 앤 더 시티'에서는 전 세계 스타벅스 유랑자인 윈터라는 남자가 등장했다. 스스로에게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국가의 스타벅스에 들르는 것을 미션으로 부여한 그는 올해 2월 한국에 도착했다.

"이럴 수가, 스타벅스뿐이 아니에요. 저기 엔제리너스가 있는데 맞은 편에 또 있어요. 와, 커피빈도 있어요. 어? 저 스타벅스는 제 리스트에는 없는 건데요?"

그는 강남역에만 30 곳이 넘는 커피숍에 경악했다. 신촌에 도착해 스타벅스 4층 석탑을 발견한 그는 끝내 "Oh, my god"을 외쳤다.

"저걸 봐요. 4층짜리 스타벅스에요. 27개 국을 돌았지만 4층짜리는 처음 봐요."

윈터는 결국 국내 스타벅스를 다 정복하지 못하고 출국했다. 이어 사회 트렌드를 분석하는 전문가가 등장해 커피 전문점 열풍에 대해 '파노플리' 효과를 운운했다.

"국내에 커피 전문점 문화가 생소하던 때에 외국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커피를 마시는 모습은 커피를 마시는 것이 세련된 뉴요커가 된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런 것을 파노플리 효과라고 합니다."

윈터의 말대로 서울은 스타벅스에 미쳤을까(Seoul is crazy about Starbucks)? 우리는 아직도 뉴요커가 되는 기분 때문에 커피를 마실까? 미친 듯이 창궐하는 커피 전문점의 개수가 커피에 대한 애증을 증명하는 절대적 지수가 될까?

대체 언제 적 '된장녀'야?

최근 부동산 업계에서는 카페베네가 화제로 떠올랐다. 2008년 4월 1호 점을 오픈한 이래 지난해 가을 300호 점을 열었고, 올해 2월 업계 최초로 500호 점을 열면서 3년 만에 매장 수 1위로 등극했다. 미어 터지는 커피 시장에서 '무식할' 정도로 공격적인 매장 확장을 시도하는 카페베네를 두고 부동산 업계에서는 다각도로 원인을 파헤치는 중이다.

중론은 '노후대비용 투자처'라는 분석이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흔들리면서 이제까지 수익형 부동산이었던 상가, 오피스텔에 대한 선호가 줄어들고 대신 커피숍으로 쏠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열기만 하면 손님이 들끓는 것처럼 보이는 커피 프랜차이즈들 중에서는 모르는 사이에 대표가 바뀌거나 시중에 매물로 나왔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떠돈다.

커피 전문점은 커피에 대한 애정 외에도 너무나 많은 사회ㆍ경제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6000억 원이라는 시장 규모만으로 한국인들의 커피 사랑을 설명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또는 게으른) 태도다. 현재 한국 커피 시장의 95%는 여전히 믹스 커피가 장악하고 있다.

"원두 커피 소비가 실제로 얼마나 늘었을까를 알아보기 위해 원두의 가정 침투율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국내 최대 믹스커피 제조업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가정에서 원두를 구매하는 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과거 5%였던 원두 커피 구매율은 현재 6~7% 정도입니다. 아직도 대부분은 믹스 커피를 이용하고 있어요."

그는 좀처럼 원두 커피로 이동하지 않는 소비자 입맛에 대해 3가지 이유로 분석했다. 첫째, 원두 맛을 아직 잘 모른다는 것. 카페를 찾는 것은 공간 이용 때문이지 원두 커피에 대한 애착 때문이 아니며 꼭 집에서도 제대로 된 원두 커피를 먹겠다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유명 커피 전문점 사장들을 만나 봐도 커피 맛에 민감한 사람은 많지 않아요. 커피 사업이 아닌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다가 뛰어든 사람들도 많고요."

두 번째 이유는 불황이다. 소득 수준이 증가하고 프리미엄 상품에 대한 선호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언제라도 경기가 악화되면, 아무리 싸도 믹스 커피의 10배 정도 되는 비싼 원두 커피를 고집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 마지막은 편의성이다. 편하게 바로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믹스 커피를 따라 잡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원두 커피로의 이동은 대세임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맵고 짜게 먹는 한국 사람들이 달고 부드러운 믹스 커피를 쉽게 버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입니다."

그럼 미미하나마 원두 커피에 대한 한국인들의 실제 선호도를 보기 위해서는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까? 편의점과 가정에서는 보다 '순수한' 형태의 애정을 포착할 수 있다. 그곳에는 공간을 내주거나 뉴요커가 된 기분을 주지 않아도 꿋꿋이 원두를 소비하는 이들이 있다.

네스프레소 '픽시 일렉트릭 인디고'
"쉼터가 아닌 커피가 주목적인 20~30대 여성들이 타깃입니다."

세븐일레븐에서 원두 커피를 담당하는 김우영 바이어에 따르면 편의점 원두 커피 시장은 3년 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아메리카노가 1500원, 카페라테가 2000원 선으로, 이중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것은 아메리카노다.

"가장 큰 이유는 몸에 좋은 커피에 대한 고객들의 요구입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여전히 믹스를 선호하지만 대학생부터 30대까지는 원두 커피에 대한 선호도가 뚜렷하죠. 심지어 캔 커피도 아메리카노 판매가 비약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는 새로 출점하는 점포 10개 중 2개 점 비율로 원두 커피를 들여 놓고 있습니다."

자세 낮춘 원두 커피

편의점 원두 커피의 성공은 카페 못지 않은 편의점의 접근성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에 싼 가격까지 더해졌다. 접근하기 어려웠던 고고한 원두 커피는 스스로 몸을 낮추고 대중으로 파고들고 있다. 가정의 경우 지금까지 원두 커피를 기피하게 했던 가장 큰 이유인 복잡함의 장벽이 무너졌다.

스타벅스 '비아' 커피
"캡슐을 넣고 뚜껑을 닫고 버튼만 누르면 돼요. 기존에 1분 정도이던 예열 시간이 25초로 단축돼 기다릴 필요조차 없어요."

네스프레소 박성용 마케팅 팀장은 4월 6일 출시된 캡슐 커피 머신 '픽시'의 작동법을 설명했다. 픽시는 이제까지 선보였던 커피 머신 중 가장 작은 크기와 가장 짧은 예열 시간을 자랑한다.

예열이 완료되거나 물이 떨어지면 기계 외부에 탑재된 조명의 색이 바뀌며 알려주고, 물 탱크 청소 횟수도 다른 제품들에 비해 3분의 1로 줄었다. 네스프레소 로스 가타 사장은 믹스 커피가 지배적인 한국 시장에서 캡슐 커피의 소구점에 대해 묻자 "바로 믹스 커피가 인기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한국 사람과 커피의 관계에 있어서 편리함은 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간편함과 속도감, 그리고 까다로운 개인 취향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캡슐 커피는 한국의 에스프레소 문화를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네스프레소 외에도 일리, 크레메소,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치보 카피시모, 라바짜 등 다양한 캡슐 커피 머신들이 한국에 들어와 있다. 현재 캡슐 커피 시장은 1000억 원 대. 원두 커피 마니아 외에도 예쁘고 팬시한 가전을 선호하는 이들에 의해 혼수 목록에 포함되면서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

네스프레소 CEO 로스 가타
캡슐 커피 회사들은 점차 가격을 낮추고 기능을 간편화하며 우유를 첨가할 수 있는 기계를 출시하는 등 한국인들의 입맛과 라이프 스타일을 맞추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는 원두 맛 믹스?

"앞으로는 원두의 향을 높이고 인스턴트의 편리함을 갖추는 것이 관건입니다."

믹스 커피 제조업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는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인 트렌드다. 유럽에서는 라바짜 자판기의 판매율이 상승하고 있으며, 네슬레가 일본에서 선보인 커피 고미다이센 역시 원두보다는 인스턴트의 인기가 높다.

"믹스 커피를 만드는 업체의 입장에서도 원두 맛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비아나 오리가미 커피가 대표적이죠."

스타벅스의 비아는 원두 커피의 엑기스를 분말 형태로 만든 것으로, 믹스 커피와 동일하게 스틱 포장이 돼 있다. 마이크로 그라인딩을 통해 원두 향을 보존하면서 인스턴트 커피 형태로 유통시키는 데 성공했다.

스타벅스가 일본에서 출시한 오리가미 커피는 일회용 드립 커피로, 필터와 드리퍼가 모두 1회용 재료로 만들어져 있다. 원두 가루가 담긴 백을 열어서 잔 위에 걸쳐 놓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커피가 내려온다. 국내에서는 던킨 도너츠와 아름다운 가게에서 비슷한 형태의 제품을 내고 있다.

여기에 할리스와 탐앤탐스 등 커피 전문점에서 출시하는 커피 티백까지 합치면, 우리 주변은 온통 원두 커피의 유혹으로 가득하다.

"믹스 커피 매출이 당장 줄지는 않겠지만 마켓 쉐어는 빠른 속도로 변할 것입니다."

가배두림 대표 이동진 바리스타에 따르면 한국이 '진짜' 커피 천국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최근 3~4년 사이 한국의 커피 교육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 대학의 바리스타과가 10개 가까이 늘었고 평생교육원의 커피 교육 과정은 80개 가량, 여기에 사설 아카데미까지 합치면 200~300개에 달합니다. 이 곳에서는 신선한 원두와 그렇지 않은 원두를 구분할 줄 아는 커피 마니아들이 양산될 것이고, 이들은 다시 주변인들의 입맛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한국의 커피껌 가장 놀라워요"

에스프레소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로스 가타 사장은 한국에 온 지 2년이 되었다. 그는 한국을 "어디를 가나 커피 향기가 가득한 나라"라고 칭하며, 전 세계 커피 시장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의 국가들 중에서도 한국 시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시아의 나라들 중 커피 시장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곳은 많지 않다. 중국은 차 시장이 지배적이고 일본은 드립 커피가 대세다. 한국은 커피가 쌀보다 많이 팔릴 정도로 커피 문화가 아주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게다가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받아들이는 능력도 뛰어나다.

2007년 12월 한국 시장 진출 이후 3년 만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으로 성장하면서 네스프레소는 한국 시장의 움직임에 상당히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한국 커피 시장의 기하급수적 확대는 국내에서도 큰 이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캡슐 커피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한국 사람들은 커피뿐만 아니라 다른 소비재에 있어서도 프리미엄 상품에 대한 관심이 크다. 가정에서 질 좋은 커피를 마시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 여기에 점점 다양화하는 개인 취향까지 만족시켜줄 수 있어 캡슐 커피 머신이 좋은 반응을 얻는 것 같다.

맛 때문에 에스프레소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보다 친근하게 즐기려면?

모든 커피의 기본은 숏 블랙(에스프레소 원액)이다. 맛있는 카페라테와 맛있는 카푸치노의 기본은 맛있는 에스프레소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한국에 머물렀던 지난 2년간, 최고의 커피는 어디의 무엇이었나?

이탈리아인이라 드립 커피보다는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 한국에 있을 때도 늘 네스프레소 커피를 찾았다. 다행히도 서울 내 5성급 호텔 중 80% 정도가 네스프레소 머신을 보유하고 있고 그밖에 고급 레스토랑 카페에서도 네스프레소 머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 커피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풍경이 있다면?

커피숍이 많은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지하철이나 쇼핑몰, 어디를 가든 커피 냄새가 난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커피맛 껌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커피맛 껌은 없다. 한국인들의 커피 사랑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커피 마시는 습관에 대해서는 어떤가? 특징적이거나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나?

물이나 우유를 많이 섞는다는 것? 얼음을 넣어서 마시는 것도 특이했다. 유럽에서는 아이스크림에 커피를 부어 먹는 아포가토는 있어도 아이스 커피는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본 특이한 커피다.

하루에 몇 잔의 커피를 마시나?

아침에 일어나 네스프레소 캡슐 중 강도 10인 리스트레토 2개로 더블샷 카푸치노를 만들어 마신다. 일과 중에는 강도 9의 아르페지오로 만든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약간 첨가해서 마시고, 저녁에는 강도 7의 디카페인 인텐소로 마무리한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