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 리얼 프로, 토크쇼, 가족버라이어티 범람진솔함도 있지만 시시콜콜 가십거리 넘쳐, 공개수위 조절해야

QTV '플레이어스 와이프'
1990년대 아침 토크쇼에선 연예인 가족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공개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금기라도 깨듯 방송사들은 유명인사들의 가족이 등장하는 것에 유난을 떨었다. '최초 공개'라는 수식어를 자랑스럽게 달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현재는 어떤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유명인 그 개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인 배우자, 자식, 부모, 형제자매들까지 관심의 대상이 됐다. 할리우드의 파파라치들이 그들의 주변인물들에게까지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처럼.

이제 연예인의 가족이 된다는 건,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반쯤은 사생활이 노출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다.

리얼 프로, 와이프들은 왜 TV에 나섰나

"주부들이 뭐 저렇게 할 말이 많아?"

SBS '스타부부 자기야'
2004년 미국 ABC에서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을 방영하기 시작했을 때 아마 이 같은 반응이 아니었을까? 이 드라마는 한 마을에 사는 네 명의 주부들이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의문스러운 사건들을 풀어가는 이야기다. 최근에는 시즌 7까지 전파를 탔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부들은 '보통내기'들이 아니다. 주부라고 해서 뱃살과 주름으로 뒤덮인 여자들을 상상했다면 금물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군더더기 없는 늘씬한 몸매를 드러내며 가정과 일에 완벽한 '와이프'를 꿈꾼다.

<위기의 주부들>은 첫 시즌 당시 중산층 여성들뿐 아니라 정치인들의 아내들까지 큰 관심을 가졌다. 극중 주부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각광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중산층 주부들의 삶이 국내 케이블 채널들에서 경쟁하듯 전파를 소비하고 있다. 일명 유명인들의 아내들을 내세워서 말이다.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인 등의 아내들이 TV 앞에 나서서 다양한 리얼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왜 TV 앞에 나선 것일까.

현재 유명스타의 아내 4~5명과 리얼 프로그램을 준비 중인 한 PD는 "요즘 들어 방송에서 주력하는 콘텐츠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스타들의 라이프스타일 즉 생활, 건강, 패션, 육아 등이 관심을 받으며 대중에게 그대로 흡수되는 경향이 있다"며 "여기에 대중이 궁금해 하는 유명인들의 삶과 함께 사적인 부분까지 고스란히 담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SBS ETV '결미다'
유명인이 아닌 유독 그들의 아내가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내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카메라에 담아내며 라이프스타일을 쫓기 때문이다.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 <수퍼맘 다이어리>의 경우 여자 스타들의 생활을 엿본 경우보다도 스타나 유명인의 아내들이 등장한 사례가 많았다.

운동선수인 추신수의 아내 하원미, 안정환의 아내 이혜원, 우지원의 아내 이교영 등과 함께 정신과 의사 표진인의 아내 김수진, 오세훈 시장의 아내 송현옥 씨 등도 출연했다. 이들은 남편에 대한 내조에서부터 가정 내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했다. 생활패턴은 물론이고 음식, 의류, 교육 등 생활 전반에 대한 지식들과 노하우를 스스럼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방영된 QTV <플레이어스 와이프(Player's Wife)>도 마찬가지. 국내 야구선수들의 아내들이 주인공인 리얼 프로그램으로, 롯데 자이언츠 홍성흔 선수의 아내 김정임(39), 삼성 라이온즈 진갑용 선수의 아내 손미영(37), 박한이 선수의 아내 조명진(33), 두산베어스 손시헌 선수의 아내 차수정(31) 등이 출연했다.

스타급 야구선수 아내들의 예사롭지 않은 일상이 관심을 받았다. 역시 라이프스타일의 공개가 눈에 띈다. 선수라는 특성 때문에 은퇴 이후의 삶을 고려해야 하는 입장에서 나름의 재테크 방법도 드러났다. 아내들이 음식점이나 쇼핑몰 등 자신의 사업을 갖고 내조를 하고 있던 것. 맞벌이 부부나 여성들에게도 유용한 정보가 된다.

제작진은 "아내들의 등장은 TV의 주시청자층인 여성들의 구미에도 맞춘 입맛이다. 섭외하기 힘든 운동선수나 정치인들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는 장점과 함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까지 동시에 제안한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MBC '꽃다발'
오지랖 넓어진 방송

최근 한 개그맨 커플이 이혼 절차를 밟았다는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했다. 이들 커플은 그 동안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행복한 순간과 함께 위기를 맞았고,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까지 고스란히 대중에게 보여주었다. 오죽했으면 이들 부부가 왜 헤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간 출연한 방송 내용을 분석해 놓은 인터넷 기사들도 수두룩하다.

스타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들의 시시콜콜한 가십들이 넘쳐난다. 부부가 왜 싸웠는지, 아이가 어디를 다쳤는지, 시부모에게 어떤 선물을 했는지 등 알아도 찝찝하고 몰라도 그만인 얘기들이 너무 많다.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이하 자기야)나 케이블 채널 MBC 에브리원 <부엉이(부부가 엉켜 사는 이야기)>, SBS ETV <결미다(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은 연예인 부부가 출연해 개인적인 일상생활을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는가 하면 직접 들려주기도 한다. 때로는 너무도 개인적인 이야기여서 민망할 정도다.

<자기야>는 연예인 부부들의 토크쇼다. 부부싸움의 경험을 통해 들려주는 등 다분히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7일 방송분에선 가수 김창렬이 차에서 잤다가 아내에게 무단외박으로 오인받아 이혼당할 뻔한 일, 개그맨 최홍림이 알몸으로 있다가 장모와 마주친 일, 가수 노유민이 아내에게 인터넷에 저장된 '야동'을 들킨 일 등이 전파를 탔다.

대중이 몰라도 되는 일들까지 줄줄이 나열되며 공개된 것. 부부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돕는다는 기획의도를 차지하고라도 너무도 시시콜콜하다.

<부엉이>와 <결미다>는 세 커플의 부부들이 출연한다. 이들 프로그램은 리얼로 포장해 각 부부들 의 생활을 보여주기 때문에 낯 뜨거운 장면들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최근 <결미다>는 부부애를 더욱 돈독하게 해준다는 의미로 '서로 씻겨주기' 미션을 실행하며 다소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각 부부가 욕조에 들어가 서로 몸을 씻겨주는 것. 물론 서로 수영복을 입고 있긴 했지만 방송의 수위 조절은 무의미해 보인다.

<부엉이>는 얼마 전 이 사생활 노출로 출연자 중 한 명인 가수 신해철과 마찰을 빚은 모습을 보였다. <부엉이> 제작진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욕실에 들어간 신해철을 무리하게 쫓아 들어간 것. "사생활을 무리하게 노출하는 것 아니냐"며 촬영을 중단한 신해철의 입장이 사실이든 설정이든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문제는 케이블 채널들이 리얼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을 양산해 내면서 보여주지 않아도 될 장면까지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한 지상파 방송 예능 PD는 "리얼 형식을 띤 방송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출연자의 사생활을 어느 정도까지 드러낼 것인지도 새로 고민해야 할 과제다"고 언급했다.

SBS '붕어빵'
'착한 예능'으로 불리는 가족버라이어티

'웃음에도 교양과 격조가 있다?'

최근 '착한 예능'이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시청자를 반기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이들은 마냥 웃게 만드는 자극적인 요소보다는 은근한 감동을 전한다. 일명 가족버라이어티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말이다.

MBC <꽃다발>과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이하 붕어빵)은 부모와 자녀들이 만들어 가는 프로그램들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화려한 미사여구가 필요 없다. 단지 생생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이 존재할 뿐이다.

지난 3월 초 <붕어빵>은 100회 방송을 맞으며 2년간 장수하는 프로그램이 됐다. 트렌드에 민감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2년을 유지한다는 건 그야말로 드문 일.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이 인기 프로그램으로 급부상하면서 가족버라이어티의 관심은 그만큼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스타와 그 자녀들의 꾸미지 않는 생생함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특히 진정성 있는 가족애와 웃음을 동시에 전하기 위해 작가들을 대거 포진, 각 스타들의 집에 상주하게 했다.

<붕어빵>의 심성민 PD는 "진솔한 이야기들을 스튜디오에서 풀어내기 위해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작가가 스타의 집을 직접 방문한다"며 노하우를 공개했다.

8~9명의 작가가 일일이 집을 방문해 아이들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일상에서 벌어진 소소한 일들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다. 인위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실제로 아이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말하는 방송인 왕종근의 말에서 진정성 있는 웃음코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꽃다발>도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만 출연했던 포맷을 바꾸고, 스타와 그 가족이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아이돌의 의미 없는 춤사위나 말장난 위주의 방송보다는 부모와 자녀 간에 주고받는 진솔한 이야기들이 훨씬 품위 있어 보인다. 가족버라이어티라는 수식어를 내걸고 스타와 며느리, 손자, 사위 등이 한 자리에 모이는 진풍경도 볼 수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무자극, 무색소의 '착한 예능'이라는 칭찬을 받으며 장수할 수 있다는 조건도 만들고 있다. <붕어빵>의 최원상 PD는 장수의 비결에 대해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감동까지 전할 수 있다는 건 가족버라이어티의 장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