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업] (사)전국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 안철환 소장 출간, 흙과 환경, 공동체 문화 살리는 이타적 일 자각해야

"저희의 목표는 전 국민의 농부화입니다. 동네마다 밭이 있고, 옥상과 베란다마다 상자 텃밭이 있다면 하늘에서 내려 봤을 때 도시가 얼마나 푸르겠어요."

(사)전국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 안철환 소장은 요즘 전국에 씨를 뿌리러 다니느라 바쁘다. 4월13일에도 안산 시내에 새로 생긴 밭을 개간하는 중이었다. 2시간여 동안 시금치씨를 다 뿌리고 부산에 가야 한다고 했다.

"올해에는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네요. 감당이 안 될 정도예요.(웃음) 흙이라는 고향, 생명의 근본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겠죠."

텃밭보급소의 도시농부학교도 벌써 10기째 진행 중이다. 건강한 먹을거리나 농법에 대한 관심으로 찾아왔던 이들도 삶의 방식으로서의 농사의 가치를 배웠다. 한 참가자는 자신의 밭에 지렁이가 나타난 것을 보고 생태주의자가 되었다. 거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똥과 오줌을 받아 본 경험은 참가자들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친환경적인 생활 방법을 스스로 찾게 됐다. 씨 뿌린 데마다 어김없이 틔운 싹은 생명의 힘을 일깨웠다. 당신도 이렇게 놀라운 생명이라고,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라고 가르쳤다.

"도시농부가 되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밭이 먹을거리가 나오는 데만이 아니라는 생태적 각성이 중요하죠. 농사는 흙이 주는 기쁨과 포근함, 생명의 놀라움을 경험하는 과정입니다. 이 흙냄새 좀 맡아 보세요.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면역력을 높여줍니다. 수확물이 오히려 부산물인 셈이죠."

최근 텃밭보급소에서 엮어낸 <도시농업-도시농사꾼이 알아야 할 모든 것>에서 안철환 소장은 "나와 내 가족의 먹을거리 수확에만 목적을 두면 농사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조언한다. 도시에서 농사짓는 일이 단지 오늘 저녁 밥상에 올릴 상추와 고추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흙과 환경, 그리고 공동체 문화를 살리는 이타적인 일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안철환 소장은 모든 주민의 두 번째 직업이 농부가 되는 도시를 꿈꾼다. 그가 뿌리는 씨에는 문명에 의해 메마른 인간성이 흙을 통해 회복되는 도시, 모르던 이들이 나란히 밭을 일구며 이웃이 되는 도시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제가 농사에 미치게 된 계기요? IMF 때 실업하고 백수로 지내던 시절 우연히 친구 밭에 갔는데, 배추 싹이 난 걸 봤어요. 그때 '신내림'이 왔죠.(웃음) 놀랄 것도 없는데 얼마나 놀랐던지. 그 싹의 힘, 생명의 힘이 느껴졌어요. 농부들이 그걸 보는 재미에 농사짓는구나 싶었죠."

그래서 오늘도 안철환 소장은 "전국민을 꾈" 각오로 도시 농사를 전도 중이다. 안산에서 안철환 소장을 만났다.

요즘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도시농업을 건강하게 정착시키는 방안에 대해 누구보다 고민이 깊으실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가 문제죠. 지자체들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상자 텃밭 보급에만 집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직접 흙을 밟고 이웃과 어울려 농사짓는 과정이 없는 도시농업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상자 텃밭도 텃밭보급소에서 개발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2007년에 처음 만들 때 내부에서도 반대가 있었어요. 상자 텃밭 농사는 진짜 농사가 아니라는 의견이었죠. 하지만 일단 '미끼'로 쓰자는 취지로 보급한 겁니다. 도시민들이 그걸 통해 결국 흙으로 돌아가길 바란 거죠.

도시농부학교에서 강조하는 특별한 농사 방법이 있다던데요.

4원칙이 있어요. 농약, 제초제, 화학비료, 비닐 멀칭(mulching 작물이 자라는 땅의 표면을 덮어주는 것)을 쓰지 않는다는 거죠. 작물과 땅을 건강하게 지속시키기 위한 방안이에요.

비닐 멀칭은 왜 나쁜가요?

제대로 수거가 안 되어서 땅에 섞이는 경우가 많아요. 내부만 뜨거워져서 외부 온도와 차이가 나는 것도 문제고요. 내부만 열대 기후가 되는 셈이라, 작물이 크게 자라지만 건강하지는 않죠.

책에는 도시농업을 통해 공동체 문화를 살려야 한다고도 언급하셨는데요.

도시농업을 지속시키는 건 결국 사람이에요. 밭은 익명의 도시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삶을 일구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건 도시농부학교의 취지이기도 해요. 도시농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농사 공동체를 이루어 인연을 이어가죠. 그럼 농사가 더 즐거워질뿐더러 농사를 함부로 짓지 못해요.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거든요.

도시마다 상당한 너비의 밭을 확보하려면 지자체를 잘 설득해야 할 것 같은데요. 도시농업의 경제적 효과는 어떤가요?

사실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농업이 기반이 된 '애그로폴리스'를 짓는 거예요. 농사를 기초로, 생명논리의 산업들로 유지되는 자립도시죠. 예를 들면 생명공학(BT:Biotechnology) 산업도 아우르는 최첨단 농경도시라고 할 수 있어요. 일단 제가 사는 안산에서부터 시작해 보려고요.

어떤 식으로요?

일단 도시농업을 안착시키고, 이를 토대로 한 지역 먹을거리 사업과 사회적 기업을 활성화할 겁니다. 필요한 인력을 교육하기 위한 농업대안학교도 짓고 싶고요. 이런 인프라에서 학교 텃밭 교육, 천연 염색, 흙집 건축 등 다양한 사업이 파생되지 않을까요?

한국에 애그로폴리스를 뒷받침할 만한 문화적 토양이 있을까요?

토종종자를 복원하면 그 자체가 원자재이자 신소재가 될 것 같아요. 지금 "지구가 멸망한다면 종자 때문일 것"이라는 말이 나돌 만큼 종자를 둘러싼 전쟁이 치열한데요. 몬산토 같은 다국적 농업기업이 개발하는 불임 종자들이 다른 종자들을 멸종시키고,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있어요.

종자의 다양성을 지키는 것이 당면과제가 되었죠. 동시에, 친환경적인 전통농법을 되살리는 것도 중요해요. 저희도 네팔, 인도, 중국 등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전통농업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프로젝트의 주무대는 도시의 밭이 될 거예요. 농촌은 기계 농법과 대량 생산 논리가 점령해 버렸으니까요.

많은 도시민들은 몸이 힘들고 시간이 부족해서 농사짓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저희가 누구나 밥 먹듯 쉽게 농사짓는 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웃음) 전국민을 꾀어야 하니까요. 농촌에서 농사짓기가 어려운 건, 적은 수의 고령 농촌 인구가 전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에요.

대량생산을 할 수밖에 없으니 기계와 화학비료를 쓰게 되는 거죠.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보다 호미 한 자루로 자급자족하겠다는 마음으로 도시에서 농사짓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회사 출퇴근하며 논농사까지 짓는 분도 있었는데요, 뭘.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