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의 시대, 탈-재앙적 예술 꿈꾸기' 등 총 5차례 강연 예정日 원전 사태, 구제역,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상관관계 찾기

사치 갤러리
곪았던 고름이 터지듯, 전 세계적인 재앙의 연속이다. 일본의 북동부를 덮친 쓰나미로 지구 멸망이 가까웠다는 세기말적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도 한다. 처음엔 그동안 홀대했던 자연이 앙갚음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이 곧 인재로 변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본 전력의 30%가량을 차지하는 후쿠시마 원전을 지키기 위해 국민들의 안전은 나 몰라라 했던 일본 정부. 후쿠시마 제1원전 주변 대피지역에서는 앞으로 10~20년 정도 사람들이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최근의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발언은 또다시 일본을 들쑤셨다.

비단 일본만이 아니다. 일본에서 터진 원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나라는 최근 노후 원전의 가동시한을 연장한 독일과 전력의 80%를 원전에 의존하는 프랑스였다. 원전에서 파생된 방사능 위험은 앞으로 상당한 시간 한반도와 미대륙을 비롯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할 것이다.

세계적인 파급력을 가진 재앙은 비단 후쿠시마 원전 사태뿐일까. 세계동물보건기구가 '50년 이래 최악'이라고 평한 재앙은 바로 한국의 구제역 사태였으며, 2007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세계의 헤지펀드, 은행, 보험사 등의 연쇄적 붕괴를 몰고 왔다.

이런 시기에 예술이 다 무슨 소용일까, 회의를 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 국제무대예술교류센터 사무국장 마루오카 히로미는 최근 웹진 '예술경영'의 칼럼을 통해, '재난 속 예술의 역할'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돼지 살처분 현장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전제'를 다시 생각하는 것, 그것도 철저하게 되묻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술이 철저하게 전제를 되물을 수 있는 것은 예술이 사회의 절대적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재앙의 시대, 지금껏 사회를 움직여온 메커니즘은 재검토되고 각성하고 개선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이는 마루오카 히로미의 말대로, 예술을 통해서일 수도 있지만, 현대의 예술 역시 근본부터 되짚어봐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예술 역시 이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후자의 측면에서 '재앙과 현대미술'을 되짚어보는 강연이 지난 4월 14일부터 오는 6월 9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이루어진다.

강연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심상용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교수는 "일련의 사태들은 이 시대 문명이 걸어온 발자취랑 연결됩니다. 결국 예술도 동시대를 자양분으로 삼기 때문에 우리 시대의 맥락이 아니라면 보여지기 어렵죠. 구제역이나 원전 사태와 현대미술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굉장히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히로미의 칼럼에 대해 "예술이 지속가능한 사회의 전제라면, 그러한 기능을 담보하는 '예술의 전제'가 또한 마땅히 제기되어야 하죠.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전제들과 예술산업, 또는 직업으로서의 예술의 구분을 이해하는 것"이라며 이번 강연의 의의를 설명했다.

뉴욕 증권거래소
14일 첫 강의가 열리던 날, 심 교수를 미리 만나 앞으로 이어질 강연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작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마치 첨단 축산농법의 상징인 양 보여졌던 90kg의 규격돈과 공장식 사육은 결국 재앙의 단초가 됐다. 이들 규격돈은 몸집을 빠르게 불리기 위해 젖을 일찍 떼고 사료로 키워진다. 밀집된 공간에서 대량 사육되는 방식은 생산량은 늘릴지언정, 환경이 위생적일 리 없다.

게다가 돼지로선 유소년기에 해당되니, 질병에 저항하는 힘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다. 구제역이란 재앙은 인간의 이기심과 무지함에 제동을 검과 동시에 침출수로 인한 지하수 오염으로 그 죄악의 몫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이 끔찍한 광경은 현대미술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가.

지난 20여 년간, 세계 미술계는 유망주 발굴에 혈안이 되었다. 과거 청년 작가의 나이는 40대 중반까지도 아우르는 말이었으나, 이제 그 나이는 20대 중반 심하면 20대 초반까지도 내려온다. 작가로 따지면 유소년 시기에 해당되는 이때, 설익은 과일을 따먹으려는 자본가들이 달려든다. 누군가는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겠지만 과연 작가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강릉지방 방사능 측정소
"예술은 인생을 경험하면서 성숙해야 하는데, 경제적 메커니즘이 이것을 못 견디는 겁니다. 지금의 경제적 논리가 작가가 20~30년간 무르익기를 내버려 둘 수 있을까요. 이때문에 우리 시대의 정신적 감수성이 빈곤해지는 겁니다."

데미안 허스트라는 세계적인 미술계 스타를 후원하는 광고 재벌 찰스 사치는 개인 소유의 미술관을 소유하고 있으며, 동시에 작가 프로모션을 지속하고 있다. 그의 눈에 들면 전 세계의 미술계를 사로잡는 건 시간문제다.

세계 2대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의 프랑스와 피노 회장과 뉴욕에만 3개 지점을 소유한 가고시안 갤러리의 대표 래리 가고시안 역시 세계 미술계를 내키는 대로 조작하는 큰 손들이다. 무명의 작가를 스타로 만들고, 이들을 통해 세계 미술시장의 돈줄을 거머쥐기까지 세계 미술계를 쥐락펴락하는 그들의 행태를 미술계는 '원샷'이라고 표현한다.

그들이 건드리면 설익은 열매도 탐스럽게 보이기 마련이다. 심상용 교수는 이런 흐름에 동조하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도 그들의 '공범자'라고 지적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예술과 비즈니스를 혼동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미술시장이 1조 원 규모가 되면 예술 선진국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것은 예술이 아닌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기업도 예술을 활용하는 방식을 알게 되었지만, 정작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갈수록 오리무중이에요. 저는 그게 예술의 재앙이라고 봅니다." 심 교수가 재앙의 시대에 예술의 힘에 의지해보자는 것 이전의 문제를 지적한 것은 같은 이유다. 재앙의 시대에 예술 역시 재앙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박힌 해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
비싼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을 대상으로 고금리 대출 프로그램을 운영한 미국은 한껏 거품 호황을 누리고는 부실 금융의 쓴맛을 봐야 했다. 금융기관과 헤지펀드가 거품 낀 부동산을 기반으로 남발한 파생금융상품은 집값 하락으로 대거 몰락해야 했다.

미술시장도 비슷한 몰락을 경험했다. 하루 사이에 작품 가격이 두 세배 상승할 정도로 지난 몇 년간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던 미술계는 서브프라임으로 인한 경제적 위축과 함께 규모가 줄었다. 끄떡없을 것 같던 데미안 허스트도 60~70% 이상의 가격 폭락을 맛봐야 했다.

"미술시장도 경제 메커니즘과 똑같아요. 미술 작품이 가진 내적 퀄리티에 의해 시장이나 기능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금이 투자되느냐 빠지느냐에 따라서 움직이고 기능하기 때문이죠. 다들 깜짝 놀라고 있어요. 예술이 이런 식으로 가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죠. 하지만 이것이 엄청난 조직, 맨파워, 네트워크로 움직이기 때문에 감히 저지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들어서자 모든 미학적 잣대는 부정되었다. 유일한 기준은 시장의 평가다. 곧 최고의 경매가를 받는 작품이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가들조차 자신의 작품의 경매가에 촉각을 세우고,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현재로선, 제프 쿤스나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누가 뭐래도 비싸기 때문에 좋은 작품인 것이다.

누가 (지금으로선) 절대적인 이 기준에 반기를 들 수 있을까. 더한 문제는 시장을 견제할 만큼 보편성을 획득할 만한 대안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무척 어려운 문제입니다. 보편적 장이 복원되어야 하죠. 하지만 이런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데있어서, 우리가 담당해야 할 부분에 대해 인식했으면 합니다.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방법을 개도국에 전수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서구가 하지 못한 부분들을 우리가 개선하고 모색해야 한다고 봅니다."

심 교수는 무엇보다 예술의 내적인 힘을 강조했다. 예술의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 그 자체가 뿜어내는 힘이며, 그 힘만이 자본에 휘둘리는 시대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시대를 환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4일 '재앙의 시대, 탈-재앙적 예술 꿈꾸기'로 시작된 강연은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읽는 현대미술'(4월 28일), '구제역과 현대미술'(5월 12일), '서브프라임 형 미술'(5월 26일), '쓰나미의 교훈과 위대한 예술'(6월 9일) 등 점차 심도 있고 구체적인 주제로 이어진다. 매 격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부터 9시까지, 안국동에 위치한 스페이스M 2층에서 무료로 진행된다. T. 02-723-8855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