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오형근 개인전 '不安肖像 Portraying Anxiety' 트렁크 갤러리 5월 31일까지

가죽 점퍼를 입은 아저씨
사진작가 오형근은 얼굴을 잘 읽는 사람이다. 남다른 직관과 호기심 때문일까. '아줌마'와 '소녀' 연작은 강렬했다. 특별한 장치가 없었는데도 '사회적 초상'이라는 평을 얻었다.

클로즈업한 얼굴들은 과거가 고스란히 쌓인 한 편의 연대기 같았고, 고유하면서도 보편적이었다. 아줌마들의 두꺼운 화장과 소녀들의 정형화된 '소녀성'은 흔한 모습이지만 각자가 자아와 사회적 역할, 미적 기준과 방어 의식 사이에서 분투하고 타협한 흔적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 한 꺼풀, 너머의 실존까지 오형근 작가의 카메라는 기어코 잡아냈다.

그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비밀은 뭘까.

"나는 사람의 얼굴이 항상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여겨 왔다. 그래서 초상을 만들면 마치 항해 지도를 보듯이 얼굴이라는 풍경 속에 담긴 작은 섬들을 찾아내곤 했다."(<작가노트> 중에서)

1991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마주쳤던 한 소년의 눈을 작가는 잊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슬프다기보다 알 수 없는 애처로움이 서려 있던 눈. 작가는 엉뚱하게도 그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 눈이 아버지로부터 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프리다 칼로의 화집을 넘기다가 작가는 다시 한 번 그 눈과 조우했다. 너무나도 비슷한 초상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왜 내가 그 소년의 눈에서 유난히 그의 아버지를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읽기의 습성이 오형근 작가가 담은 얼굴의 진실일까.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현상의 무의식과 기원을 느꼈고, 형체가 뚜렷하지 않은 그것을 향해 카메라를 조준해 왔을지도 모른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인상에 서린 불안감들을 초상화한 작품 연작 'Portraying Anxiety'는 그래서 작가 자신에 대한 대면이기도 하다. "태생적으로 나는 타인의 불안을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아줌마와 소녀는 물론, 아저씨, 소년 등 거의 모든 인물군이 포함된 이 연작에서 불안감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로도 통한다. 직접적인 표정이 아니라 아저씨의 번뜩이는 가죽점퍼, 소녀의 쇄골 아래 새겨진 문신, 아줌마가 허벅지 사이로 감춘 손에서도 팽팽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이제 거의 모든 몸의 부위와 움직임을 얼굴처럼 읽는 경지에 이른 것일까. 등장인물들은 불안의 은유가 아니라 그 자체로 불안의 개념, 불안의 풍경이다.

오형근 개인전 '不安肖像 Portraying Anxiety'는 5월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트렁크갤러리에서 열린다. 02-3210-1233


불안초상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