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질투는 나의 힘'
수 세기 넘도록 독자와 관객들에게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는 셰익스피어의 여러 비극 중 '오셀로'는 남자의 눈 먼 질투의 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베니스공국의 무어인 장군 오셀로는 교활한 부하, 이아고의 이간질로 순수한 아내 데스데모나가 부관과 바람을 피운다는 의심을 시작한다. 그 의심은 몇 가지 오해가 더해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살인과 자살로 온몸이 피로 물든 다음에야 종결된다.

이처럼 치명적인 남성의 질투심이 진화심리학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대다수 포유류의 잉태가 암컷의 체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보면 어렵지 않게 풀린다.

여성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이든, 열 달 동안 자신의 품 속에 품어둔 아이의 엄마가 자신인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은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인지는 DNA검사가 아니라면 확인할 길이 없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 유전자를 받지 않은 자손을 키울 가능성은 오로지 남성에게만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연구 발표를 통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2007년 중국 베이징의 한 친자감정센터가 2006년 베이징 시민을 대상으로 감정을 진행한 결과, 조사 대상 중 28%에 달하는 비율이 친자 관계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영화 '연애의 목적'
독일과 영국도 각 나라의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DNA검사를 진행한 결과 친자 관계가 아닌 가정이 1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질투는 여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남자의 질투가 더 위험하고 치명적인 이유는 이런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남자의 질투'를 소재로 하고 있는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2003)은 찌질하고 궁상맞은 남녀의 심리묘사를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순진하고 착실한 대학원생 원상과 그가 사랑하는 연상녀 성연, 그리고 그녀를 유혹하는 중년의 유부남 윤식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다룬다.

물론 이 영화는 한 남자에게 두 번이나 연인을 뺏기는 순진한 청년의 로맨스로만 보아도 충분히 재미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라는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언뜻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원상의 질투심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성적 질투심의 한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데이비드 버스의 저서 '사랑을 움직이는 질투의 심리학-The Dangerous Passion, 2003'에서도 저자는 질투심이 정신적 질환이 아니라 짝 지키기 전술로 진화된 구조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편 유부남 윤식은 외도의 현장을 장인에게 들키고도 "부인한테도 잘하고 애인한테도 잘하면 되지. 바람 안 피우고 부인한테 못하는 남편보다 그게 백배 더 낫다"는 식으로 바람 피우는 걸 합리화한다. 이처럼 이미 짝이 있는 유부남들은 내연녀를 통해 다시 불 같은 성적 열정을 경험한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에는 인류학자 토머스 그레고어가 연구한 아마존의 메히나쿠족 남성들의 성적 감정이 이렇게 적혀 있다. "여자들의 성적 매력은 '맛없음(mana)'에서 '맛좋음(awirintya)'까지 다양하다.

유감스럽게도 아내와의 섹스는 '마나'지만 내연녀와의 섹스는 거의 항상 '아위린타이'다." 시대도, 국적의 경계도 없이 적용되는 이 결과는 왜 유부남들이 아내 이외 여성들의 유혹에 약한지 보여준다.

남녀의 연애를 너무 적나라하게 노출해 오히려 여성들을 다소 불쾌하게 만들었던 (2005)은 가장 '동물적인' 수컷과 암컷의 전략을 구사한다. 고등학교 영어교사, 유림과 한 살 연상의 미술 교생, 홍 사이에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이야기는 19세 이상 관람가인 덕분에(?) 오히려 남녀의 '짝짓기 전략'의 생생하고 적나라한 표현이 곳곳에 노출되어 있다.

틈만 나면, 아니 틈을 내서 호시탐탐 수작을 거는 유림은 일단 찔러보는 수컷의 표본이다. 그에 반해 일면 귀엽고 능청스러운 홍은 이것저것 수컷의 조건을 까다롭게 재보는 암컷의 속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기엔 불편하지만 겉치레를 걷어낸 남녀 짝짓기의 밀고 당기는 과정이 날것으로 보여지는 점이 흥미롭다.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박현욱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2008)도 남성들을 왜 불편하게 했는지, 왜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오셀로'
'비독점적 다자연애'라는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가진 여주인공 인아가 남편 덕훈과의 행복한 결혼생활 중 갑자기 두 집 살림을 선언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는 인아의 입장에서 '소박한(?)' 바람 축에 속한다. "내가 무슨 달을 따 달래, 별을 따 달래?! 난 그냥, 남편만 하나 더 갖겠다는 것뿐인데…"

자손 번식을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퍼뜨리기 위한 것이 남자의 짝짓기 전략이라면, 여성의 외도는 질병이나 전쟁으로 인한 남편의 부재-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자신과 자식을 보호하는 울타리 자원의 손실-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으로 진화해온 행동으로 설명된다.

그에 반해 자신의 자식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덕훈이 몰래 유전자 검사를 하는 것은 인아의 행동에 대응하는 전략 기제라고 할 수 있다. 뻐꾸기가 자신의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 낳아놓고 영원히 날아가 버리는 것처럼, 자신의 유전자를 갖지 않은 자식을 키우는 남자를 소위 '오쟁이 진다'고 표현한다.

덕훈 역시 이것을 극도로 꺼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덕훈이 아닌, 인아와 결혼한 또 다른 남자 재경이 이 역할을 맡았던 셈이다.

인아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과 딸을 위해 헌신하는 대상이 두 배로 늘어났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전략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종종 일부다처, 복혼, 일처다부를 뜻하는 폴리가미(Ploygamy)를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모색했다는 평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진화심리학에서의 설명이 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