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공연 '고수푸리'
최고의 록 보컬로 평가받는 임재범이 남진의 '빈잔'으로 무대에 올랐다. 록과 트로트의 이상한 조합이었지만, 잠시 후 장르를 뛰어넘은 공연은 '가요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평가를 얻으며 시청자를 열광시켰다.

그의 퍼포먼스는 전자기타의 현란한 기교나 트로트의 꺾기 창법에 의존한 것이 아니어서 더 눈길을 끌었다. 특히 임재범의 초저음을 전반적으로 받쳐준 차지연의 구음 창법과 시종일관 무대 뒤편에서 동양적인 색깔을 가미했던 대북은 '소리'가 '음악'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일조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음악은 '국악'이라는 이름에만 갇혀있지 않게 됐다. 월드뮤직이라는 영역에서 다른 음악세계와 충돌하며 변신을 시도하는가 하면, 다른 장르의 예술과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우리 악기는 이 새롭게 태어난 음악에서도 불협화음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한 시대를 풍미한 수많은 퓨전 음악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타악연주자 박재천은 전방위에서 이런 실험을 하는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프리뮤직', '월드뮤직' 등의 이름으로 한국의 전통악기와 서양의 여러 악기들을 한 데 모으는 독창적인 작업을 계속해온 그는 최근엔 '즉흥'이라는 공통점으로 무용가들과 잦은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

국악기 애플리케이션
올해 초 차세대 안무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로드 투 피플(Road to People)' 쇼케이스에서는 춤과 음악의 1:1 즉흥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포스트극장에서 짝수달마다 공연되는 '고수푸리(告·受·푸·리 GOSU-FREE)'에선 장구와 재즈로 춤과의 즉흥공연을 펼친 바 있다.

재즈음악이나 현란한 몸짓 사이에 삽입되는 전통 타악기의 장단은 낯설게 들리지만, 바로 그 낯섦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안겨준다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한편 국악계 내에서는 국악기 본연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공연들을 기획함으로써 대중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국립 부산국악원은 지난달 '토요신명무대'를 가장 대중적인 특색을 가진 전통 타악기 중심의 공연으로 꾸며 평소 관객보다 훨씬 많은 수를 모았다.

비결은 '신명'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대부분이 장구를 비롯한 사물놀이 악기들로 흥을 돋우는 곡들로 채워졌기 때문. 부산국악원의 한 관계자는 "화려한 장구가락을 선보이는 '삼도설장구', 장구 반주를 곁들인 '거문고 산조', 타악기의 멋과 흥이 어우러진 사물놀이 등 신나고 흥겨운 타악기 연주가 관객들을 만족시켰던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해 10주년을 맞은 전주세계소리축제는 그동안 이 같은 우리 악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여러 가지 실험들을 집중적으로 지속해왔다. 특히 '소리프론티어' 섹션은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충돌을 통해 창조된 새로운 소리를 대중에 선보임으로써 우리 음악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발견했다.

부산국악원 사물놀이 공연
지난해에는 이 섹션에 공명, The林(그림), 소나기 프로젝트. 아나야, 오감도, 이스터녹스, 정민아, 프로젝트 락(樂), 프로젝트 시나위 등의 그룹들이 참가해 우리 음악의 새로운 전통을 선보이기도 했다.

국악기를 통해 만들어지는 우리 음악의 새로운 전통은 이제 디지털 시대와도 호흡하며 본격적으로 신세대와의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 스마트폰 혁명이 가져온 '스마트폰 악기' 중에는 국악기도 포함돼 있다. 이제 누구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은 우리 음악을 그 옛날의 고루한 이미지 대신 보편적인 음악의 하나로 새롭게 인식시키고 있다.

국립국악원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지난해 말 '시대공감 열린무대' 공연에서 을 활용한 '스마트 시나위'를 선보인 바 있다. 국악원은 이날 전자 가야금, 전자 해금을 활용한 'i가야금산조', '전동장단 술대를 바라보는 눈' 등을 연주하며 시대에 따른 악기의 진화를 알렸다.

주로 장르 간 크로스오버에 의해서 이뤄졌던 우리 음악에의 새로운 관심과 발전은 이제 제2의 도약을 꿈꾼다. 첫 번째의 실험이 주로 국악기로 양악을 연주하는 낯선 매력에서 출발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시대와 발맞추는 새로운 음악, 새로운 감동을 자아내는 악기의 효과적인 활용이 그 변수가 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