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대표ㆍ영화감독-임순례옴니버스 동물영화 '미안해, 고마워' 중 '고양이 키스' 연출

사랑은 책으로 배울 수 없고, 약자에 대한 연민과 생명 존중의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반려동물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지를 갖고 관계 맺기에 뛰어들어야 한다.

동물과 더불어 살아본 이들의 경험담은 값지다. 왜, 어떻게 반려동물과 동행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준다. 세 명의 반려인들을 만났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대표·영화감독 임순례

옴니버스 동물영화 <미안해, 고마워> 중 임순례 감독이 연출한 ‘고양이 키스’ 에피소드에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이 등장한다. “도둑고양이 불러들인다”며 질색하는 동네 주민들을 피해 밤마다 골목 구석구석 사료를 놓아두고, 길고양이에게 장난감 총을 쏘는 아이들에게 꿀밤을 먹이며 “불쌍하지도 않냐”고 묻는 씩씩하고 따뜻한 인물.

그에게 2년 전부터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대표로 활동해 온 임 감독이 겹쳐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임 감독 역시 유기견에게 밥을 주다 주민들과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밥 주니 안 가고 텃밭 망친다”, “쥐약 먹일 거다” 같은 억울하고 험한 소리를 개들 대신 들으며 사람들이 왜 이렇게 각박한지 궁금해 했다.

“지금 제가 사는 양평은 시골이라, 가끔 줄을 매지 않고 개를 데리고 나가는데 동네 분들이 뭐라고 하실 때가 있어요. 큰 개라 무섭다고요. 무척 순해서 누군가를 해칠 개가 아닌데 말이죠. 외국에서는 셰퍼드나 리트리버가 다녀도 무서워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한국 사람들은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정말 친숙하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 반려동물 문화를 이해하기보다 경시하는 분위기죠.”

<미안해, 고마워>가 농림수산식품부의 ‘의뢰’로 만들어졌는데도 동물 보호의 구호를 외치지 않는 것은 사려 깊다. 그보다 동물이 인간의 삶과 얼마나 가까운지, 동물을 존중할 때 인간이 얼마나 좋아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총지휘를 맡은 임 감독이 다른 감독들에게 제안한 것은 단 두 가지였다. 전체 관람가, 그리고 따뜻하고 유쾌한 이야기.

“다들 개성 있게 만들었지만 인간과 동물 간 교감을 담았다는 점에서 통하죠. 평소 동물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개와 고양이들은 희귀종이 아니다. 옆집에 살 법한, 길에서 볼 법한, 어렸을 때 길렀을 법한 이들이다. 꼭 내 집 울타리 안에 있지 않아도,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우리와 연을 맺어온 반려동물들. 그들을 되돌아보는 건 인간 자신을, 주변을 되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고양이 공부를 많이 했다는 임순례 감독을 만났다.

왜 길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삼았나.

-다른 감독들이 모두 개를 선택해서 다양성을 갖추기 위해서였다.(웃음) 동물보호 활동을 하다 보니 길고양이 문제가 심각한 것을 알게 됐다. 캣맘들이 밥 주는 일이 거의 전투더라.

고양이와 작업하는 것은 어땠나.

-고양이는 정말 예민하고 섬세하더라. 인간과 매우 깊이 있게 교감할 수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연기를 끌어내기는 어려웠다. 결국 최소한의 것만 담을 수 있었다.

사실 그럴 줄 몰랐다. 전작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서 소와도 작업했는데 고양이라고 못하겠어, 하는 자만이 문제였다.

다음에 고양이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면…아니다, 고양이와는 못할 것 같다.(웃음) 스태프들도 앞으론 시나리오에 ‘고’자만 들어가도 안 한다고 했다.(웃음)

출연한 고양이 나비가 실제 길고양이였다던데.

-지방의 한 대학 캠퍼스에 작년 여름부터 나타난 길고양이다. 마침 동물 관련 학과가 있어서 교수님,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학내에 두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방학을 하면 아무도 돌봐주지 않을 것 같았고, 캣맘들이 이전에 집고양이었을 것이라고 해서 입양을 보내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지금 임시보호 중이다. 캣맘들이 워낙 까다롭게 심사를 해서 아직 입양처가 정해지지 않았다.

어떤 기준으로 입양 신청자를 심사 하나.

-반려동물을 돌볼 수 있는 생활 패턴과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를 본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는지, 가족이 있는지, 경제력이 있는지 등등. 반려동물의 수명이 15년 정도라, 그 기간 동안 유학을 떠나거나 결혼을 하는 등의 큰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있는지도 고려한다.

책임감을 강조하나 보다.

-인간에게 반려동물은 삶의 일부지만, 반려동물에게 인간은 삶의 전부다. 인간이 사라지면 생존하기가 어렵다. 입양을 쉽게 결정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사회의 반려동물문화가 성숙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사회적으로 작고 약한 것에 대한 배려심이 약한 것 같다. 정서적으로도 그렇고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지 않다. 결정적인 건 개 식용문화다. 개를 먹을 수 있는 종으로 분류하는 인식이 너무 강하다.

최근 반려동물 진료비 부가세와 반려동물 등록제 등이 이슈가 됐다. 이외에 반려동물문화와 관련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동물과 관련한 정책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정책에 밀려 한 번도 배려된 적이 없다. 하지만 인간이 먹는 것, 입는 것, 정서적 측면 등등과 너무나 밀접하다는 점에서도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입장에서는 동물이 활동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료, 동물 용품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유기 동물에 대한 보호, 입양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동물을 너무 쉽게 사고 파는 것도 법적으로 규제했으면 한다. 대형마트, 인터넷을 통한 판매를 금지하고 어린이에게는 팔 수 없게 해야 한다. 쉽게 사면 유기하기도 쉽다.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인식 전환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

반려인 역시 노력할 부분이 있을 텐데.

-개와 고양이 입장에서 생각해 봤으면 한다. 그들은 가능한 한 긴 시간을 함께 지내며 교감해주는 것 이외에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아는 만큼 사랑해줄 수 있다. 개와 고양이들은 각자 다 다르다. 자신의 삶의 패턴과 조건을 신중히 고려해 잘 맞는 반려동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좁은 집에 살면서 큰 개나, 비글처럼 활동량이 많은 개를 선택하면 안 될 것이다. 입양을 할 때는 아이를 낳을 때처럼 고민을 많이 했으면 한다.

카라의 활동은 다양한 문화적 방식을 시도하고 있어서 인상 깊다.

-동물보호운동은 여러 측면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유기동물 구조도 중요하지만 동물에 대한 인식과 제도 등등도 변화시켜야 한다.

반려동물이 가르쳐 주는 가장 소중한 것은 뭘까.

-순수함이 아닐까. 인간의 감정은 굉장히 복잡하지 않나. 앞에서는 호의를 보이는 척 하면서 뒤에서는 욕할 수도 있고. 하지만 동물의 감정은 일관적이다. 오해 같은 잡스러운 것이 섞여 있지 않다.

그리고 긍정적인 감정은 오래 지니는 반면 부정적인 감정은 금방 잊는 것 같다. 인간은 자그마치 몇 년 동안도 원망하고 분노할 수 있지만, 동물은 그렇지 않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