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 예술거리
"작업실 급구합니다. 주민들에게 부탁 좀 합니다."

MBC <놀러와>에 출연한 배우 최민수의 이 말은 한동안 트위터 화제로 떠올랐다. 지난달 23일 작가 이외수와 함께 나온 그는 "창작의 고통이 있다. 예술가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며 "500에 30짜리 작업실"을 구한다는 영상편지를 남겼다. 편지의 주인공은 마포구 당인리 주민들. 방송 후 그에게 '홍대 앞 작업실을 구해주자'는 구명운동(?)이 트위터에서 확산됐지만, 이 말을 접한 홍대 주변 문화예술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반지하 원룸이면 가능하겠네요."

지난 해 한 일간지 설문조사에 따르면 홍대 앞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지 않고 있는 유일한 강북지역이다. 거리 미술과 클럽 문화로 대표되던 '홍대 앞'은 이제 한국 대중문화의 랜드마크가 됐다.

몇 년 전부터 합정동과 상수동으로, 연남동과 연희동으로 벨트를 만들며 홍대 앞은 거대한 상권으로 부상했다. 한쪽에서는 인디문화가 꽃피고, 한쪽에서는 대기업자본이 문화담론을 만든다.

한쪽에서는 막개발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고, 한쪽에서는 먹고 마시고 떠드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홍대 앞을 걷다보면 하위문화부터 상업주의 대중문화까지 지금 한국사회에 유행하고 있는 거의 모든 문화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무엇이 홍대 앞을 문화의 거리로 만들었을까? 홍대 앞은 언제부터 문화골목이 됐을까?

30년 지기 홍대통, 홍대를 말하다

2호선 홍대전철역 근처 관광안내소에 가면 한 달에 한 번 업데이트 된 홍대 앞 지도를 구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홍대 일대 문화공간을 알려주는 이 지도는 사실 무가지로 배포되는 월간지'스트리트 H'의 부록이다. 홍대 앞에서 디자인사무소를 운영하는 장성환씨가 발행하는 이 잡지는 2009년 창간해 이달 창간 2주년을 맞았다.

발행인 장씨는 홍익대 83학번으로 30년간 홍대 앞을 지킨(?) '인간 홍대 네비게이터'다. 인터뷰 당일, 장소를 찾지 못한 사진가 "지금 패밀리마트 앞"이라고 볼멘소리로 전화를 했고 필자는 "홍대 앞에 패밀리마트가 도대체 몇 개인데 그렇게 물어보냐"며 장 씨에게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스트리트H' 장성환 대표와 정지연 편집장
"아 그 옆에 00곱창집 있고요, 거기서 20미터 가셔서 골목으로 꺾어 들어오시면 바로 보입니다."

역시, 네비게이터답다. 그에게 홍대 변천사를 물었다.

"홍대 앞 문화의 시발점은 어떻게 보면 미대생들의 작업실 문화죠. 미대생들이 홍대 근처 살림집에 있는 차고나 반지하 방을 작업실로 빌려서 거기서 그림 그리고 술 먹고 사람들이랑 토론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를 만들었어요. 그런 문화가 카페, 주점으로 이어졌죠.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다른 학교 학생들이 신기해했어요. '아, 이 동네 재밌는 동네다'하고. 근데 어느 시점이 되니까 홍대 문화가 한순간에 급변했죠."

그 시점이 언제일까? '스트리트 H'의 편집장 정지연씨가 거든다. 정 씨가 홍대 문화를 즐긴 건 95년부터. 지금은 자취를 감춘 락카페에 꽂히면서다. 홍대 앞에 살기 시작한 건 99년부터라고.

"홍대 앞에 외부 상업자본이 많이 들어온 건 2002년 한일 월드컵 전후 클럽데이를 만들면서부터에요. 홍대 클럽골목이 유명해지면서 이곳이 상업적으로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입증된 게 그즈음이었죠. 그리고 2000년대 중반 커피프랜차이즈가 홍대 앞에 들어왔고, 2차적으로 패션 스토어들이 들어왔죠."

이들에게 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 홍대문화의 차이점을 물었다. 90년대는 홍대 앞 문화가 미술에서 음악으로 주도권을 넘겨준 시기다. 정지연 편집장은 이 계기를 96년 국내 최초로 열린 '스트리트 펑크 페스티벌'로 꼽았다. 지금 명맥을 잇고 있는 대부분의 클럽들도 이 시절에 문을 열었다.

물론 당시는 클럽보다 정 씨가 꽂힌 락카페가 유행이었지만 말이다. 당시 홍대 클럽과 락카페 주인들은 미술작가, 인디밴드 멤버 등등의 하위문화 트랜스세터들이었다고. 2002년 월드컵을 전후로 클럽데이와 프리마켓이 생겼고, 2000년 중반 브런치로 대표되는 다이닝문화가 홍대 앞을 휩쓸면서 거대한 카페 거리가 만들어졌다.

"지금의 홍대 문화는 여러 가지가 혼재된 것 같아요. '두리반'으로 대표되는 막개발이 유지되면서 대안문화가 없어지거나 당인리 발전소까지 대안문화가 깊숙이 들어가버렸죠. 그럼에도 프리마켓은 10주년을 맞았고요." (정지연 편집장)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이제 홍대 앞 보다는 문래동이나 광흥창 쪽으로 간다고 해요. 자본이 열악한 사람들은 주변부로 밀릴 수밖에 없죠. 어떤 분들은 홍대 앞 문화가 너무 상업화됐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자본력이 적은 사람들이 주변에 밀려 갈 곳이 아직 홍대 주변에 남아 있다는 점에서 대학로나 신촌, 이대와 다르다고 생각해요. 홍대 주변에는 당인리나 망원역, 연남동, 연희동처럼 밀려 갈 곳이 있어요. 그리고 인프라의 다양성이 있죠. 출판사, 디자인사무소도 꽤 많고요." (장성환 발행인)

홍대 앞 사라진 공간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신 업데이트'된 홍대 앞 지도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대 앞 문화는 말 그대로 '홍익대 앞 놀이터 골목 일대'를 일컬었지만 이제는 합정동, 상수동, 신촌과 동교동, 연남동일대를 포괄한다. 홍대 앞 문화가 광범위(?)해지면서 홍대 앞을 기록한 지도도 커졌다.

'스트리트 H'를 처음 낼 때만해도 지도 범위가 이렇게 넓지 않았다고. 24호에 실린 홍대 앞 문화지도는 당인리 공장지대까지 넘어간다. 지도에는 홍대 거리와 지하철역, 갤러리와 카페, 공연장, 영화관 같은 문화공간만 표시해두었다.

한 달에 10개 정도의 공간이 지도에서 바뀐다. 술집이나 기타 다른 공간까지 합하면 부수고 새로 짓는 공간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

이렇게 사라진 공간 중에 가장 아쉬운 곳을 물었다.

정지연 편집장은 출판사 시공사에서 운영했던 '아티누스'를, 장성환 발행인은 안상수 교수가 열었던 '일렉트로닉'을 꼽았다.

1993년부터 2004년 운영된 아티누스는 예술서적 전문 서점이자 갤러리, 카페, 음반과 DVD숍 등을 이뤄진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폐점 이유는 홍대 앞의 상권 변화.

일렉트로닉은 안상수 교수가 88년 금누리 교수와 함께 연 '국내 최초 전자 카페'. 전자카페라고 해봐야 1200bps의 모뎀이 설치된 컴퓨터가 전부였지만 이것만으로도 당시 일렉트로닉은 기존 카페와 다른 문화를 열었다.

카페 손님들이 PC통신을 하면서 채팅을 했고, 여기서 국내 최초 통신 동호회의 오프라인 미팅인 아이볼 미팅이 이뤄졌다. 두 곳 모두 90년대 초중반 대학을 다니던 '포스트모던 세대'에게 향수를 일으키는 공간들이다.

"2009년에 <카페 탐험가 뉴욕에서 홍대까지>란 책을 냈는데, '일렉트로닉'을 홍대 편에 꼭 넣고 싶었거든요. 예전에 카페 사진을 찍었는데, 필름이 어디 있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고, 인터넷을 뒤져도 간판 사진 한 장 안 나오는 거예요. 거기서 허탈함을 느꼈죠. 그렇게 회자된 카페를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구나. 이런 곳이 홍대 앞에 참 많은데, 그런 공간에 대한 제대로 된 기록 하나 안 남아 있더라고요. 그래서 잡지에 지도를 넣기로 한 거예요. 지도가 모이면 인문학적인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거고요." (장성환 발행인)

안녕들 하십니까?

홍대 앞 지도를 접으면 잡지 표지가 나온다. 매달 정기적으로 무가지로 발행하는 국내 독립잡지는 <스트리트 H>가 거의 유일한데, '동네잡지'를 표방하는 만큼 홍대 일대에서만 볼 수 있다. 관광안내소를 비롯해 상상마당, 서교예술실험센터, 카페 DD-DA와 후마니타스 책다방 등 홍대 일대 문화공간 30곳에서 볼 수 있다.

'클럽데이 중단을 통해 홍대앞과 클럽을 얘기하다'(20호), '홍대앞 지구촌, 외국인 가게들'(24호) 등 매달 주제를 정해 홍대 앞 사건사고, 맛집과 문화행사, 홍대일대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 소개 기사가 실린다.

광고나 후원 없이 발행하는 무가지라 매달 드는 제작비는 발행인과 편집장의 자비로 충당한다. 객원에디터의 기사와 칼럼은 '재능기부'형식으로 필자들이 무료로 기고하고 있다고. 대신 마감 후 술과 밥은 후하게 쏜단다.

"고집하는 편집 원칙은 홍대의 지역성이죠. 예를 들어서 가수 임재범이 와도 홍대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공연하면 다룰 수가 없잖아요? 홍대문화를 얘기해 줄 수 있는 필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잘 쓸 수 있는 분야에 판을 벌여드리는 거죠." (장성환 발행인)

오는 14일에는 2주년 잔치를 벌일 계획이다. 초대장 제목이 '안녕들 하세요?'란다. 사라진 공간, 공간과 함께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안부인사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발행한 잡지와 함께 발행인과 편집장이 수십 년 간 홍대앞 사람들과 주고받은 명함을 전시할 생각이란다.

"잡지 포인트는 기록이에요. 사람에 대한 이야기죠. 예를 들어서 카페를 소개할 때 주인이 누구이고, 전직이 무엇이고, 어떻게 카페를 운영하는지를 전하죠.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거리를 만든다는 게 저희 생각이거든요. 홍대 앞에 막 편입한 새내기도 소개하지만 20~30년씩 한 곳에서 세탁소나 쌀집하는 아저씨들도 소개해요. 이들이 과거에 홍대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는지 지금 홍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담으려고 노력하죠. 홍대 문화를 소개할 때, 홍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전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지연 편집장)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