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코스테, 크로커다일 상대 상표 등록취소 소송 한국서 이겨폴로랄프로렌, 애플 등 자사 로고 지키기 위해 법정공방 불사

라코스테(위)와 크로커다일(아래)
"저희 브랜드는 그래도 60년이 넘은 브랜드고…"

"저희는 77년 됐는데요."

얼마 전 악어 로고로 유명한 두 패션 브랜드의 법정 싸움이 막을 내렸다. 라코스테가 크로커다일을 상대로 낸 상표등록취소 청구소송에서 라코스테가 이겼다. 라코스테 프랑스 본사는 2008년 한국 변호인단을 선임해 국내에서 크로커다일의 상표등록을 취소하는 내용의 소송을 진행했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크로커다일이 악어 로고를 영영 뺏긴 것은 아니다. 이번 소송 결과는 한국 시장에 한정된 것이고 크로커다일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수십 개의 상표권 중 가장 혼동 가능성이 큰 3개의 상표권만 취소된 것이다.

혼동의 원인으로 라코스테 측이 주장한 내용은 이렇다. 크로커다일의 로고에는 악어 그림 옆에 'Crocodile'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데 회사 측에서 글자 색을 셔츠 색과 동일한 색으로 수놓음으로써 얼핏 보면 악어만 보이게 되고, 따라서 원래 악어만 그려져 있는 라코스테 셔츠와 비슷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크로커다일은 향후 악어만 있는 로고는 쓸 수 없게 됐다.

국내에서 크로커다일을 전개하는 패션그룹형지 측은 이번 결정에 대해 특별한 입장 표명을 꺼리면서도 자사 브랜드의 유구한 역사성에 대해 언급했고, 이에 대해 라코스테 전개사인 동일드방레 측의 답변은 한 마디로 '원조 주장을 할 셈이라면 우리의 승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라코스테는 1933년, 크로커다일은 1947년, 각각 프랑스와 싱가포르에서 론칭됐다. 테니스 선수 르네 라코스테가 긴 팔 유니폼이 불편해 만든 반팔 셔츠가 이 브랜드의 시작으로, 미세한 구멍이 숭숭 뚫리고 니트 칼라가 달린 피케 셔츠는 라코스테의 시그니처 아이템이 됐다. 당시 스포츠지 들이 붙여준 르네의 별명 '악어'는 브랜드의 로고가 되어 피케 셔츠의 왼쪽 가슴팍에 붙여졌다.

크로커다일은 중국에서 이민 온 형제가 만든 브랜드로, 싱가포르와 홍콩, 중국 등 동북 아시아 쪽에서 꽤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다. 국내에서는 크로커다일 레이디와 함께 저가 중장년 패션 시장에서 절대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악어의 얼굴도, 입을 벌리고 있는 각도도, 몸을 틀고 있는 방향도 모두 다르지만, 이 두 브랜드는 세계 곳곳에서 악어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지난하게 싸워왔다. 본격적으로 갈등을 빚기 시작한 것은 크로커다일이 일찌감치 발을 들여놓은 아시아 시장에 라코스테가 진출한 1970년대부터다.

몇 년 전 상하이에서도 맞붙었던 두 브랜드의 로고 분쟁에서 승자는 크로커다일이었다. 이유는 이번 국내 소송과 동일하다. "소비자들에게 상품 출처를 혼동하게 할 우려가 존재한다"는 것.

미국폴로협회로고
말 다리가 왜 3개?

글로벌 패션 기업들의 사랑을 받는 동물은 악어뿐이 아니다. 특히 말에 대한 패션계의 사랑은 각별하다. 버버리는 갑옷으로 완전 무장한 기수가 역시 완전 무장한 말을 타고 달리는 로고로 유명하며, 눈을 어지럽히는 페이즐리 무늬로 잘 알려진 에트로는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이중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는 역시 폴로랄프로렌이다. 이 브랜드는 말을 탄 폴로 선수가 스틱을 높게 치켜들고 있는 모습을 로고로 삼아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 말 그림을 새겨 넣었다.

국내 '짝퉁' 시장에서는 스틱의 각도가 살짝 처진 교묘한 카피 제품에서부터 말 다리가 3개인 키치한 '짝퉁', 아예 기수가 말에서 내려 주저 앉아 있는 패러디 상품까지 다양한 가짜들이 판을 친고 있다.

폴로가 말 그림을 사수하기 위해 싸운 대상은 미국폴로경기협회와 패션 브랜드 조다쉬다. 폴로협회와 조다쉬는 둘 다 기수가 말을 타고 있는 로고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에 폴로랄프로렌 측은 2000년 상표 사용권 침해를 주장하며 해당 로고가 사용된 제품의 판매를 금지시켜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폴로랄프로렌의 로고
그러나 2005년 뉴욕연방재판소가 내린 평결은 랄프로렌 측의 패배였다. 당시 폴로경기협회 측의 변호사는 "말 탄 기수가 폴로 경기를 하는 모습은 폴로라는 스포츠를 묘사하는 일반적인 그림인데 이런 평범한 이미지를 랄프로렌 측이 독점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배심원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신이 난 협회와 조다쉬는 말 로고가 그려진 상품에 대해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판결이 내려졌다. 폴로랄프로렌은 1981년 국내에 상표 등록을 했는데 한참 후인 1993년 미국폴로협회가 'U.S. POLO ASSOCIATION'이란 상표로 등록하자 이에 등록무효소송을 제기했다.

1997년 대법원은 랄프로렌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이유는 폴로랄프로렌이라는 상표가 이미 국내에서 저명하기 때문에 'U.S POLO ASSOCIATION'이란 이름에서 폴로 브랜드를 용이하게 연상할 수 있다는 점, 따라서 상품의 출처에 관해 수요자를 기만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캥거루 주머니엔 새끼가 있다고"

같은 동물은 아니지만 닮은 동물이라는 이유로 싸우는 경우도 있다. 호주 와인 브랜드로 미국 수입 와인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옐로 테일은 얼마 전 한 미국 와인 브랜드에 전쟁을 선포했다. 옐로 테일이 사용하는 로고는 호주의 토종 동물인 왈라비인데 그 모양이 미국 와인 브랜드 리틀 루가 쓰고 있는 캥거루와 상당히 흡사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호주 와인 예로 테일(좌)과 리틀 루(우)
왈라비와 캥거루는 둘 다 유대목 동물과로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크기인데, 작게 축소돼 로고로 형상화된 캥거루와 왈라비는 동물원 사육사라 해도 구별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옐로 테일의 모기업인 카셀라와인즈는 "일반적인 미국 소비자들은 캥거루와 왈라비의 차이를 잘 모르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캥거루의 옆 모습을 보는 순간 옐로 테일을 연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옐로 테일보다 훨씬 저렴한 리틀 루의 가격도 문제 삼았다. 값싸게 판매되는 리틀 루 때문에 옐로 테일의 가치도 평가절하된다는 것이다. 물론 리틀 루를 전개하는 더와인그룹은 왈라비와 캥거루가 헷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이유는 새끼의 유무다. "리틀 루의 캥거루는 주머니에 머리를 쑥 내밀고 있는 새끼를 넣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 들여질지는 미지수다.

하나의 로고를 가지고 수많은 회사와 싸운 사례로는 역시 애플을 따라갈 수 없다. 애플사와 사과 하나를 놓고 싸운 곳들은, 무려 30년간 분쟁을 끌어온 영국의 애플 코프, 호주의 슈퍼마켓 체인 울월스, 심지어 뉴욕시와도 갈등을 일으켰다. 이 중 유일하게 먼저 애플을 공격한 것은 비틀즈 상속인들이 소유한 레코드 회사 애플 코프다.

상큼한 초록색 사과를 로고로 가지고 있는 이 회사는 1981년 애플 컴퓨터가 사과 로고를 사용하면서부터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1991년 애플 컴퓨터가 음악 사업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합의하면서 평화가 시작됐지만, 그 평화는 2003년 애플 측이 아이튠즈를 출시하자마자 깨졌다. 아이튠즈에서 비틀즈 음악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30년에 이르는 치열한 분쟁을 종결시킨 것은 돈이었다. 2007년 2월 스티브 잡스는 애플 코프로부터 애플과 관련된 모든 상표권을 사들이고 이 상표권 중 일부를 애플 코프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기로 했다. 상표권을 사는 데 쓴 금액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5000만 달러에서 1억 달러를 지급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뉴욕시 환경 캠페인 로고(좌)와 빅토리아 스쿨의 로고(우)
한바탕 거액이 휩쓸고 지나가자 사람들은 이제 당분간 사과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소송이 끝난 그 다음해부터 애플은 도리어 여기저기 딴죽을 걸기 시작했다. 애플은 2008년 뉴욕시의 환경 캠페인 '녹색의 뉴욕시(GreeNYC)'의 로고가 자사의 것과 비슷하다고 상표심판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했다.

뉴욕시는 친환경 쇼핑백, 하이브리드 택시, 버스 정류장 등에 뉴욕을 상징하는 사과 로고를 넣기 시작했는데, 애플은 그 로고가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며 사과 로고의 고유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소송했다. 결과는 대패. 승소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뉴요커들은 사과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 두 로고를 가지고 시비를 건 애플에 대해 "지금 뭐하는 거냐"며 냉소를 날렸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애플은 또 다시 오스트레일리아의 슈퍼마켓 체인 울월스(Woolworths)를 걸고 넘어졌다. 울월스의 로고가 사과 모양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며,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지적재산권 당국에 사용 중지를 요청한 것이다.

울월스 측은 'W'를 형상화한 것이라며 억울해했지만, 애플은 "사과는 애플만이 쓰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확고하게 입장을 밝혔다. 2009년에는 빅토리아 스쿨이 애플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이번에도 로고가 사과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 단지 그것 때문이었다.

싸우지 맙시다, 다 같이 유명해지면 되잖소?

슈퍼마켓 체인 울월스의 로고(좌)와 애플사의 로고(우)
애플이 이토록 무섭게 사과에 집착하자 일각에서는 그 이유를 추측하는 말들이 한때 무성하게 쏟아져 나왔다. 잡스가 과거 사과 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설, 어렸을 때 사과를 하도 좋아해서 사과만 먹었다는 설, 비틀즈의 광팬이라 일부러 애플 코프의 애플을 가져다 썼다는 설, 아담이 사과를 먹고 지식의 눈을 뜬 것처럼 인류의 눈을 뜨게 할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썼다는 설, 천재 과학자 앨런 튜링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설, 그리고 가장 유명한 아이작 뉴턴의 사과 설까지.

진실은 저 너머에 있으나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이처럼 막대한 돈을 들여 사과 로고를 지키고 시간만 나면 여기저기 시비를 걸어 사과 비슷한 모양을 쓸 엄두도 못 내게 하는 이유는, 그가 로고가 지닌 강력한 힘을 잘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로고 관련 소송은 대부분 억지, 고성, 뒷돈으로 얼룩지게 마련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있다.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창업자인 허브 캘러는 경쟁사와 회사 로고를 둘러 싸고 분쟁이 일어나자 "팔씨름으로 승부를 내자"고 제안했다. 곧 두 회사 CEO의 팔씨름 이벤트가 개최됐고 결과는 노장인 캘러 회장의 패배였지만 유쾌하게 웃은 상대편 CEO는 그에게 공동 사용권을 허락했다.

최근 국내에서 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로고를 빼다 박다시피 한 데다가 그 회사의 건물 바로 맞은 편에 로고가 들어간 거대한 옥외 간판을 세워 눈총을 받은 적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날이 힘을 더해가는 로고는 오래된 중소기업에게는 심장과도 같다. 사우스웨스트 창업자 같은 유머 감각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다만 최소한의 양심이 필요한 때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