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애플리케이션 출시 다양한 미술 감상의 길 열어줘'소셜태킹 시스템', '앱 아트' 새로운 미디어 가능성 실험

전시 작품 설명을 제공하는 경기도미술관 애플리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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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와 테이트브리튼미술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 제 아무리 미술 애호가라도 평생 다 찾아가기 어려웠던 전 세계 17개 미술관이 한 곳에 모였다.

이들 미술관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비행기 표도 발품도 필요 없다. 인터넷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입장 가능하다. 입구로 들어서 전시장을 지나고 마음을 끄는 작품 앞에 머무르고, 궁금한 작품에는 가까이 다가가는 체험까지 제공한다. 지난 2월 문을 연 '' 이야기다.

# 2
벽에 붙은 사진 속에는 불안해 보이는 남자가 있다. 화가 난 것일까, 안타까운 것일까. 그의 어깨에 닿은 손은 누구의 것일까.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긴장감이 맴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들이대자, 남자가 본색을 드러낸다. 머리를 흔들고 얼굴을 찡그리며 격렬한 감정을 분출한다. 뭔가 잘못되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저런 표정을 보였던 적이 있었나. 그때 우리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화면은 요동치는데 사진은 여전히 잠잠하다.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아티스트 전지윤의 작품 'A Couple of Men'이다.

"는 세계 여행을 다닐 수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이 프로젝트는 미술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텔레비전 중계 방송을 통해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슬로우 모션, 클로즈업, 리플레이 등의 기술이 개입하면서 실제로 경기장에 가는 것과 다른 경험이 가능해졌다."

구글 아트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한 스케매틱사 부사장 제이슨 브러시의 말은 스마트 기술이 이끌어낸 미술의 변화 전반에 적용할 수 있다. 스마트 기술의 상호작용성과 이동성은 미술을 감상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미술관의 문턱은 낮아졌으며, 스마트폰은 미술을 접하는 다양한 길을 제시해준다. 작가 역시 미술과 관객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 작품을 시도하고 있다.

미술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

인터넷이 대중화된 이후 미술에 대한 정보도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지만 그래도, 웹상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보는 것은 전시회 관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방문에는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원작의 질감과 아우라가 빠진 웹 이미지는 감질날 뿐이었다.

의 혁신성은 단지 세계 주요 미술관의 소장품 천여 점을 공개한다는 데 있지 않다. 거리를 통째로 스캔해 웹에 옮겨 놓은 '스트리트 뷰'의 미술관 버전인 이 서비스는 작품을 둘러싼 미술관 고유의 공간감이 미술 감상의 요소임을 이해하고 있다.

자잘하고 어수선한 텍스트와 이미지, 팝업창의 숲을 헤치는 대신 현실과 동떨어진 듯 고풍스럽거나 완벽하게 정돈된 길을 거니는 경험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전지윤 작가의 'A Couple of Men'
게다가 관객은 작품을 매우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다. 몸을 기울이는 수준을 넘어 돋보기를 들이대는 것처럼 확대해볼 수 있기에 붓 터치와 화폭의 균열까지 느껴진다. 작품마다 제공되는 설명은 감상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미술관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미술을 만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애플리케이션, 스마트한 미술 생활을 돕다

스마트폰 사용자의 미술 생활을 돕는 일등공신은 애플리케이션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전시 정보는 물론 전시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리뷰와 지식, 전시장 주변의 갈 만한 곳, 먹을 만한 것, 누릴 만한 혜택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들이 맹활약 중이다.

포털 사이트처럼 전체 전시를 망라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있는가 하면, 특정 미술관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도 있으니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애플리케이션은 미술관과 관객 간 거리를 좁히는 묘책으로도 각광받는다. 지난 4~5월 열린 <인물사진의 거장-카쉬> 전은 오디오 가이드를 대신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의 소셜태깅 시스템
관객들은 단체 관광객처럼 도슨트를 따라 다니는 대신, 각자 스마트폰을 통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도슨트 투어 시간에 맞춰야 하는 번거로움이나 도슨트를 둘러싼 인파에 치여 우왕좌왕하는 경우도 사라졌다.

경기도미술관은 최근 미술관 자체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미술관 찾아오는 방법부터 전시 설명, 관람한 전시를 기억하는 팁까지 고루 갖춘 전천후 도우미다. 지하철역부터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는 단점을 보완하고자 자전거를 대여해 타고 오는 방법을 알려주고 콜택시 서비스로 바로 연결시켜주는 센스가 돋보인다.

담당 큐레이터의 음성으로 녹음된 전시 설명은 정확할 뿐 아니라 쉽고 감각적이다. 미술을 처음 접하는 관객도 즐겁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밖에도 관람한 전시 정보를 즐겨찾기하고 페이스북, 트위터로 공유할 수 있는 기능, 이전 전시 관련 유투브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기능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리움미술관의 전시 설명을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도 나와 있다.

개방과 참여, 공유의 미학

장민승, 정재일의 'spheres in mullae' 애플리케이션
미술관들이 시도하고 있는 '소셜태깅 시스템'도 스마트 기술의 화두인 '개방과 참여, 공유'가 실현된 사례다. 소셜태깅 시스템이란 관객들이 스스로 선택한 키워드를 통해 미술관의 소장품을 분류해 나가는 것. 관객과 작품, 관객과 미술관, 관객과 관객 사이의 네트워크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클리브랜드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등이 함께 추진해 왔다.

그 중 하나인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 사이트에 들어가면 '고양이', '스포츠', '누드' 등의 키워드로 분류된 작품들이 나타난다. 관객들이 붙여준 태그를 통해 집합한 미술관 소장품들이다. '우울'이라는 키워드로는 심각한 표정의 초상화, 서정적인 분위기의 풍경화, 짙은 파란색의 얼굴상 등이 검색된다.

기발한 키워드들이 작품 감상을 이끌어낸다. '뭐에 쓰는 물건이지?'라는 키워드는 언뜻 정체를 알 수 없어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들을 가리킨다. 상사와 할머니를 감동시키거나 뜨거운 데이트를 연상시키는 작품들도 있다. 집단의 힘이 미술관 수장고 속에 잠들어 있던 작품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이는 그 자체가 새로운 전시 방식이다. 미술관은 이 맥락을 파악해 오프라인 전시와 행사에 반영할 수 있다. 미술을 둘러싼 관계가 상호작용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경기도미술관이 처음으로 소셜태깅 시스템을 도입했다. 미술관 사이트 내 '태그 클라우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키워드들로 가득하다. 그중 '몽환'을 클릭했더니 현실과 환상의 접점에 있는 듯한 작품들이 펼쳐지고, 그중 문범 작가의 'slow, same, #21015'를 클릭했더니 작품 이미지 옆에 또 다른 키워드들이 딸려 나온다.

전지윤 작가의 'The Free Color Packed Motion'
그중 '심오하다'를 선택하면 많은 관객들이 그 앞에서 한숨을 내뱉었던 작품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전시 투어는 한이 없다. 네트워크도 미술의 세계도 방대하다.

스마트 기술이 낳은 미술

미술 작가들은 스마트 기술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을 내놓는다. 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한 미술이라는 뜻의 '앱아트'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이들 작품은 새로운 미디어의 가능성을 실험할 뿐 아니라, 그 의미까지 탐색한다. 이는 스마트 기술이 빠르고 깊숙하게 파고드는 일상을 빗댄 것이기도 하다.

영국의 화가이자 사진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는 스마트폰으로 그린 그림을 갤러리에 전시했고, 국내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은 자신의 작품을 담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유통시켰다. 지난 3~4월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린 <다중감각> 전에서 몇몇 작가들은 작품 옆에 QR코드를 붙였다. 관객이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작가가 직접 한 설명이 나왔다.

미술작가 장민승과 작곡가 정재일은 소리를 좇아 서울 문래동을 탐험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spheres in mullae'를 만들었다. 애플리케이션은 일정한 경로로 관객을 이끌고, 6개의 지정된 장소에 이르면 저장된 음악을 들려준다. 이 음악들은 일상적 소리들과 섞이면서 골목과 공원, 버스 정류장 등 평범한 공간을 강렬하게 체험하도록 돕는다. 스마트 기술의 이동성을 미술 작업으로 풀어낸 사례다.

실재에 가상을 겹쳐 보는 증강 현실 기술도 활발히 다루어지고 있다. 이용백 작가의 '미지의 조각'은 빈 받침대를 스마트폰으로 들여다보면 화면에 조각이 나타나는 작품. 조각 이미지는 관객의 참여에 의해 움직인다. 이런 작품은 기술을 통해 비로소 드러나는 것들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어디이고 인간의 감각은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같은 철학적 질문까지 제기한다.

미디어아티스트 전지윤의 작업은 '미디어는 인간 감각과 기능의 확장'이라는 미디어학자 마셜 맥루한의 고전적 명제를 탐구하는 듯하다. 가슴과 엉덩이, 성기 등의 신체 부위를 적나라하게 등장시키는 작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만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양한 입력 장치, 센서 등 상호작용적 기술들은 이런 '접촉'을 강화시킨다. 시각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온 미디어 기술이 다양한 감각을 시각으로 대체했다는 성찰이 녹아 있다.

스마트 기술을 활용한 작품들도 이런 맥락에서 현재의 소통 양상을 함축한다. 벽에 영사된 이미지를 관객이 스마트폰으로 조작하도록 하는 'The Free Color Packed Motion'에서는 시류와 개인, 기술과 인간 간 긴장 관계가 읽힌다. 여성 유방 모양의 조형물을 스마트폰으로 보면 화면 속 젖꼭지 부분에서 꽃이 피는 'Do not Squeeze'는 미디어 문화 속에서 훈련된 현대인의 성적 상상력을 가뿐히 뒤집는다. 이들 작품에는 인간의 능력을 제한하고 몸의 기능을 대신하는 동시에 확장시키는 미디어 기술의 양가적 측면이 뒤섞여 있다.

미술, 고도화된 기술 사회를 낯설게 하다

오늘날 기술과 예술, 생활의 편리와 미학은 종종 구분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은 소통의 도구면서 일의 도구이고, 동시에 유희와 성찰의 도구다. 어떤 애플리케이션은 미술관에 전시된 어떤 작품보다 감동을 주며, 어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어떤 미려한 문학 작품보다 더 정당하고 민주적인 소통을 이끌어낸다. 스마트 기술의 핵심이자 개방과 참여, 공유의 가치는 시대 정신이기도 하다.

이 와중에 예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스마트 기술과 만난 미술은 어원이 같지만 오랫동안 분리되어 왔던 기술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기술의 가능성에 기대면서도, 그것에 의문을 품는 미술적 아이러니는 고도화된 기술 사회를 낯설게 경험하게 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