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어 등 출사표실존 인물과 허구적 사건들의 배합… 역사 왜곡 논란도

SBS '무사 백동수'
<근초고왕>와 <짝패>가 끝이 났다. 백제와 조선의 이야기가 별 시간차를 두지 않고 안방극장에서 나란히 방영됐다는 것만으로 역사는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모양이다.

<근초고왕>이 실존 인물의 삶을 다소 무겁고 진지하게 따라갔다면, <짝패>는 허구의 인물들을 내세워 시대와 사회상을 담았다. 지난 5월 비슷한 시기에 마무리된 두 드라마 중 어떤 드라마가 대중에게 더 어필했을까?

<근초고왕>은 평균 시청률 10.9%(이하 AGB닐슨미디어리서치)를, <짝패>는 평균 시청률이 15.5%였다. 물론 방영 날짜와 시간대에서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짝패>의 성적이 더 높았다.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가는 스토리보다 상상의 인물들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었던 것일까?

올 하반기부터 또 다른 사극들이 한 상을 차렸다. KBS <광개토태왕>, MBC <계백>, SBS <무사 백동수>가 그 주인공들이다. 광개토대왕과 계백은 익히 우리의 역사 속에서 존재했던 인물이기에 낯설지 않다.

그런데 백동수라는 인물에는 호기심이 어린다. 단 한 번도 사극에 등장한 적이 없으며, 귀에도 익숙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되는 건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의 판타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이다.

MBC '대장금'
한 줄의 기록, 비주류의 역사를 만들다

<대장금>, <허준>, <추노>, <동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사극이라는 이름으로 TV를 통해 방영된 작품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논해보자. 이들 사극의 주인공들은 역사적 사료에서 거의 그 존재를 찾아볼 수 없는, 미비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이다.

<대장금>의 경우 <조선왕조실록>에는 '중종의 총애를 받은 천민 출신의 의녀'로 서씨 장금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녀는 의술과 요리에 뛰어나 대(大)자를 붙여 '대장금'으로 불렸다는 것은 사극 <대장금>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대장금>은 그 역사의 한 줄이 창작을 자극하는 모티프가 됐다.

<동이>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동이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최씨다. 그녀의 본명이 동이라는 것도, 장악원이나 감찰부에서 활약했다는 것도 모두 허구다. 다만 역사서에는 숙빈최씨가 무수리 출신이었다는 사실밖에는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추노>라고 별 수 있을까. '추노꾼' 정도로만 기록되어 있다는 역사 속에서 24부작 사극이 탄생한 것이다. 그것도 평균 시청률 35%를 넘나들며 말이다.

MBC '동이'
이런 와중에 <무사 백동수>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이 드라마는 방영 전부터 '제2의 대장금'으로 불리기를 원하며 '한 줄 기록'을 강조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백동수라는 인물은 '정조의 명에 따라 규장각 검서관 이덕무, 박제가 등과 동양 3국의 무예를 총망라한 실전무예서 <무예도보통지>(1790년, 정조 14년)를 만든 장용영 장교'로 역사서에 기록돼 있다는 것. 백동수가 실존인물이긴 하지만 대장금처럼 역사서에 한 줄로 축약된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한 셈이다. 단 한 줄의 인물이 50%대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대장금>을 낳았으니 무리도 아니다.

<무사 백동수>의 이현직PD도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에 대해 역사 자체보다도 인물을 부각해 끌어가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했다. 그는 "이때까지 역사, 혹은 사극 속에서도 무인들의 이야기는 많이 감춰져 있었다"며 "이순신 장군 등과 또 다른 무인들이 역사 속에 존재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백동수는 실존인물이다. 그러나 이번 드라마는 역사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 무인들의 삶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며 그 색깔을 분명히 했다.

영화 <왕의 남자>와 원작인 연극 <이>도 몇 줄 되지 않는 대목이 모티프가 됐다. <연산군일기>에는 '궁중광대 공길이 논어를 외어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들 먹을 수 있으랴'라며 임금을 비판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고 한다.

영화 '왕의 남자'
이 대목이 연극을 낳았고, 영화와 뮤지컬로 재탄생됐다.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궁중광대나 남사당패들의 이야기가 대중에게 공개되는 순간이었으리라.

<팩션시대, 영화와 역사를 중매하다>(김기봉, 2006)에는 주류의 역사가 아닌 이런 비주류의 역사를 두고 '거시기로의 역사'라고도 언급했다. 영화 <황산벌>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거시기'다. 영화 속의 '거시기'는 다층적 의미를 지닌 핵심코드라는 것. 의자왕이 계백에게 "네가 거시기 해야겄다"라고 말하고, 백제는 "머시기할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해야 한다"며 해독 불가능한 전략을 짠다.

<황산벌>의 거시기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이나 인물들을 모두 일컫는다. 어찌 보면 거시기의 역사는 <왕의 남자>나 <대장금>, <추노> 등을 아우르는 통칭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컬처코드>(주창윤, 2010)는 바로 이점에 주목한다.

"거시기는 무인칭의 삶을 살아가고 역사의 주변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이지만, 사실상 역사를 구성하는 주체들이다. 주변인이나 무인칭이었던 이들이 역사영화와 역사드라마에서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영화 '황산벌'
한 줄이 자극하는 '상상적 역사서술'

혜원 신윤복. 김홍도와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꼽힌다. 그런데 2007년 발행된 <바람의 화원>(이정명)은 신윤복에게 성 정체성 논란을 야기했다. 책은 '신윤복이 여자다'라는 전제로 스토리를 이어간다. 이 황당하리만큼 무례하다고 여겨졌던 설정은 대중문화계에서 눈독 드리는 소재가 됐다.

결국 SBS는 <바람의 화원>이라는 동명으로 사극을 만들었고, 영화계는 <미인도>를 완성했다. 이들 모두 '신윤복은 여자였다'며 마치 그것이 사실인양 역사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자 우려했던 문제가 발생한다. 청소년들의 지식체계에 혼선을 준 것이다. 당연히 신윤복은 여자가 아니다.

역사서에도 그는 화원 신한평의 아들이라고 확인된다. 하지만 그가 조선시대 화가 가운데 여성을 가장 잘 그리고 많이 그렸다는 점에서 '혹시 그가?'라는 물음표를 그릴 수는 있다. '신윤복이 여자다'라는 설정은 과연 무리였을까?

신윤복에 대한 사료가 그리 부족한 건 아니었다. 다만 작가는 재미있는 상상력을 동원해 글을 써내려갔을 뿐이다. 하물며 한 줄의 기록이라면 어떠하겠는가. 이런 저런 부연설명 없이 한 단어나 이름으로 표기된 문자들은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 한 줄은 잠재되어 있던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SBS '바람의 화원'
최근의 사극을 보면 이러한 상상력은 극에 달한다. <무사 백동수>는 처음으로 백동수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며 시대상을 따라간다. 그 안에는 사도세자의 모습도 있다. 그런데 사도세자는 우리가 아는 그 인물이 아니다.

각종 문헌이나 사극 속에서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노여움을 사 뒤주 속에서 사망한 나약한 인간으로 묘사됐다. 하지만 <무사 백동수>의 사도세자는 총명하고 영특하며 무예에도 뛰어난 인물로 그려진다.

극본을 맡은 권순규 작가는 원작인 무협만화 <야뇌 백동수>에서 설정한 모티프를 그대로 따왔다. 원작에선 사도세자가 실제로는 성군이었고 폭군으로 묘사된 것은 역사적 왜곡이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7월말 방영될 KBS <공주의 남자>와 MBC <계백>도 이러한 상상적 서술을 고스란히 접목했다. <공주의 남자>는 조선시대 수양대군이 왕위를 위해 김종서의 집을 불시에 습격했던 '계유정난'을 비극이 아닌 로맨스로 바꿔버렸다.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2세가 운명적으로 엮이며 벌어지는 시각이다. 수양대군의 딸 세령과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 간의 사랑이 그 중심이다.

<계백>도 백제의 계백장군을 통해 진정한 충신을 모습을 그리려는 사극이다. 그런데 그 안의 의자왕이 수상하다. 방탕하고 무능한 군주로 인식된 그가 인간적인 고민과 갈등을 서슴지 않았던 왕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정통 정치 드라마'를 표방하지만 그 실상은 상상력에 의한 인물의 재해석을 가미했다.

KBS '공주의 남자'
이러한 경향은 2000년 이후부터 시작된 드라마의 계보이기도 하다. <허준>, <태조왕건>, <여인천하>, <다모>, <대장금>, <해신>,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태왕사신기>, <바람의 나라>, <자명고>, <선덕여왕>, <추노>, <동이> 등으로 이어지는 상상적 역사 서술 드라마라는 점이다.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역사적 개연성과 허구성을 적절히 배합해 대중적인 드라마로 뒤집은 것이다. 이는 역사적인 사료보다는 작가적 상상력이 극의 중심을 끌고 간다. 주요 인물들은 실존 인물들이지만 당시의 사건과 배경, 인물의 관계 등은 기록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배치되는 것이다.

권순규 작가도 "백동수라는 인물을 영웅으로 그리면서 몇몇 부분에서는 상상력도 더해질 것"이라며 작가적 상상력에 대해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도 상상력의 사극은 필요하다?

실존인물과 허구적 사건들이 적절하게 배합된 사극은 과연 역사학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KBS '추노'
이에 대해 최근 동북아역사대단과 PD연합회는 공동으로 '사극에 나타난 역사인식-역사드라마를 다양한 시각에서 심층 분석'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발표자였던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주창윤 교수는 역사드라마의 역사서술 방식을 '기록적 역사서술', '개연적 역사서술', '상상적 역사서술', '허구적 역사서술'로 분류하며 시대적으로 사극의 전개방식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1980년대 MBC <조선왕조 500년>이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충실히 따라가려고 했던 '기록적 서술방식'이었다면, 90년대 초반에는 KBS <용의 눈물>, <태조왕건> 등의 '개연적 역사서술'과 '기록적 역사서술' 방식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앞에서 언급한 '상상적 역사서술' 방식의 드라마가 지배하며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는 2000년대 초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해 만들어진 KBS <대조영>, MBC <주몽>, SBS <연개소문> 등은 강한 민족주의를 드러내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대장금>, <다모>, <추노>, <짝패> 등으로 넘어오면서 허구적 인물들을 내세운 비주류 역사는 인간 보편성 문제를 들추며 시청자에게 역사 속의 개인,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극이 역사의 사실에 대해 외면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주몽>의 연출가 이주환 PD는 "역사드라마에 가해지는 비판은 특정의 부분적 사실왜곡에 대한 것보다는 제작진들의 역사관에 대해 그리고 역사드라마가 표방하는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해져야 한다고 본다"며 "사극이 정보전달에 방점을 찍어야만 하는 '역사 재연드라마'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내가 만든 드라마를 본 어린 학생들이 의무교육제도하의 국사 시험에서 틀려서는 안 된다는 진지한 고민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재단 김현숙 책임연구위원은 '고구려 드라마를 통해 본 사극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논하며 고구려 관련 드라마들의 제작이 국민적 요구로 출발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KBS '대조영'
"동북공정에 의해 전 국민이 고구려 역사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공감할 때 그에 부응하여 고구려 관련 드라마들이 제작되었으므로 역사학자들이 못했던 역할을 드라마가 담당한 부분이 많았으므로 그 공은 결코 적지 않다. 그것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학자들로서도 고구려 관련 드라마가 보여주는 역사적 측면에서 오류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즉 드라마나 소설, 영화 등이 딱딱한 학문으로서의 역사보다 대중에게 영향을 더 쉽게, 더 오래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역사학자들이 사극의 초기 단계부터 시대상과 사회상에 대해 자문을 하는 과정, 또 드라마 종영 후 역사학자가 참여한 가운데 그 내용과 실제 역사와의 차이점을 짚어주는 등의 대비책을 갖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역사학자와 사극제작자들 사이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것.

경기대 사학과 김기봉 교수도 "역사학자와 사극제작자 간의 소통장애를 초래하는 일차적 요인은 역사는 사실이므로 진실인데 반면 드라마는 허구이기 때문에 거짓이라는 '근대 사실주의 이분법'을 해체하지 않아서다"며 "역사학자는 사극을 단순히 결핍된 역사로 볼 것이 아니라 '매체적 전환'의 관점에서 사극의 유용성과 위험성을 성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MBC '주몽'
KBS '용의 눈물'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