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중공업 사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SNSㆍ실시간 영상 통해 자발적ㆍ능동적 참여 가속화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한진중공업을 찾은 사람들, 사진=<진보 정치>의 정택용 기자
장맛비로 인한 비 피해 소식이 대부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지난 주말,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이와는 다른 소식들이 수시로 전해졌다.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역 광장을 찾은 이들은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글로, 사진으로 올리며 정보를 공유했다.

지난 7월 9일 밤, 부산역 광장에는 1만여 명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전국에서 희망버스나 자가용, 혹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온 이들이다. 지난 6월 11일에는 천여 명에 불과했던 희망버스 참여자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10배 가까이 불어났다. 몇 만원의 적지 않은 자비를 들여가며 스스로 이곳에 모여든 이들은 누구일까?

그들 중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시민단체, 대학생, 그리고 여러 세대의 가족구성원, 종교인들도 있었다. 목적은 단 하나였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대량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영도 조선소의 35m 높이 크레인에서 185일째 농성을 이어가던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해고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희망버스 행사를 진행해온 희망버스 기획단은 당초 농성일과 상징적으로 맞춘 185대의 희망버스를 끌고 부산역에 운집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다소 무리하게 보였던 이 숫자는 탑승 희망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195대로 불어났다. 기획단 역시 예상치 못했던 높은 참여였다.

이들을 응원하는 방식은 비단 희망버스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1인 시위를 약속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저서 <소금꽃나무>를 펴낸 바 있던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는 가격을 낮춰 펴낸 응원판 5천 부를 출판했고, 희망버스 관련 글을 묶어낸 <깔깔깔 희망버스>도 출판했다.

<깔깔깔 희망버스>, 사진=후마니타스
이미 한정수량의 응원판은 서점에서 거의 소진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으며, 그들의 공감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사회적 약자에 눈 돌리다

희망버스 앞에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이란 수식문구가 붙어있다. 희망버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년간 기륭전자와 뉴코아-이랜드, KTX 여승무원, 코스콤 등의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해고와 투쟁 과정을 겪으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의 백만 행진 사업으로 2008년에 시작됐다.

전국의 900만 명에 육박하는 비정규직을 위해 '연대'를 외치며 희망을 찾아가는 움직임은 이제 한진 중공업으로 향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집필한 <소금꽃나무>, 사진=후마니타스
다만 여기에 힘을 더하는 개인과 단체가 예전보다 크게 늘어났으며, 그들의 표현의 방식에서 또한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무엇보다 희망버스 참여자들의 움직임은 능동적이고 자발적이다.

금속노조 소속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평택에서 부산까지 걸어가는 천리길 행사를 자체 기획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희망 자전거를 타고 울산에서 출발해 부산에 당도했다.

현장에서 열린 문화 행사나 발언도 주최 측의 주도와 섭외 없이 자발적으로 이어졌다. 공연이나 발언을 준비해온 이들은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현장에서 진행하며 이 모습을 지켜본 희망버스 기획단의 이원호 씨는 "과거의 집회가 날짜를 정해놓고 단체를 조직하고 인원을 동원한 것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라며 놀라워했다.

국내에서 비단 한진 중공업 사태에서만 공감과 연대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둘러싸인 제주 강정마을. 그곳에서 추진 중인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백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전국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서울 마포의 성미산 마을은 강정마을을 위해 '마을과 마을로!'라는 콘셉트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콘서트를 열었다. 지난 7월 2일 성미산 마을 사람들은 '살롱 드 마랑'에서 열린 콘서트를 통해 강정마을의 실상을 알렸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농성중인 크레인, 사진=<진보 정치>의 정택용 기자
콘서트가 열린 시각, 촛불문화제가 열리던 강정마을에는 이 콘서트 현장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평화의 길에의 동행을 자청한 성미산 마을은 문화적인 활동을 통해 강정마을의 자칫 외로울뻔했던 투쟁에 힘을 실은 것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문인 단체인 한국 작가회의는 지난 달부터 적극적으로 강정마을을 방문해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회의의 김근 시인은 "작가들이 시나 소설을 쓰는 것은 결국 이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정치적인 사안이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참여하고 발언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당연한 움직임은 한동안 한국에서는 꽤나 낯선 모습이었다.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 속에, 가깝게는 IMF 경제위기를 시점으로 한국에서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되었다.

치열한 경쟁이 당연시 되었고 일상화된 경쟁은 조금 뒤처지는 이들을 루저로 낙인 찍었으며, 이는 곧 양극화를 뒷받침하는 논리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계층간의 싸움이 아니라, 약자들간에도 서로 물어 뜯는 '이상한' 모습이 그간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었다.

우리 시대의 연대란?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는 <공감의 시대>에서 세계적 공감의 현상에 대해 이 같이 설명한다. "장애인, 게이, 여성 등 소외집단을 인정하고 각양각색의 다른 사람들과 공감적 유대를 넓혀가는 새로운 현실은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또한 이는 개인의식이 활성화되고 자기 표현이 두드러지는 현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생존이 안정되면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고, 삶의 질을 논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박정훈 사회공공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그동안 한국 민주주의가 간과해왔던, 공동체를 이끄는 삶의 조건-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삶의 요건-이 과거에는 온전히 개인에게 책임 지워졌다면, 그것이 복지문제로 부각되고 사회 약자들간의 동료의식이 더해지면서 문화적인 직관 내지는 각성에서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각성 외에도 발언이 가능해진 환경적인 요건도 더해졌다. 자본권력을 통해 설 자리를 잃었던 보통 사람들의 언로가 SNS(Social Network Service)와 영상 매체를 통해서 트였다는 점이다.

강정마을에서 투쟁하는 영화평론가 양윤모 씨가 용역들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은 영상으로 네티즌들에게 전해져 공분을 샀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생생한 현장은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주도 강정마을, 사진=한국작가회의
치열하고 억압받는 현장이 가감 없이 전달되면서 왜곡 없이 대중들을 환기시켰고, 달라진 호소와 표현의 방식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이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 같은 문제가 결국 동시대뿐 아니라 후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데 생각이 모였다. 생각과 의견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이들 공감은 더욱 확산되었고, 그로 인한 연대의 힘은 공고해지고 있다.

박정훈 사회공공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이 같은 흐름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면서 "결국 민주주의는 약자들이 일궈낸 역사이지만 여전히 가시화되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많은 이들의 존재를 기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그는 "재개발로 인해 터전을 잃은 수많은 빈곤층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