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동거, 동성결합 따른 가족 개념의 확장과 제도적 보완 필요

미혼남녀들이 단체미팅을 하고 있다.
"혼자 사는 것을 구체화하면서 요리학원에도 다녔어요. 건강하게 사는 법에 관심이 많아졌고, 주변 사람과의 친분을 돈독히 하는데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죠. 제가 직접 아이를 낳아 기르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더군요."

30대 후반의 여성 김모 씨()는 비혼자로서의 삶을 차근차근 준비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사랑을 주고받는 일은 꾸준히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반려 동물이든, 예술이든, 정신적인 사랑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기에 비혼 결심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심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나이가 차서 결혼하는 건 관습이기 때문에 오히려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지만, 혼자 살기로 한 것은 관습을 깨는 일이기에 더 많은 고민과 준비가 필요해요.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가족들에게 비혼자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일은 아직도 어렵네요."

결혼을 선택으로 보고, '주체적으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비혼(非婚)은 이제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20대 후반~30대 중반의 여성들이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비혼을 선택하는 일이 적지 않다. 결혼을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났던 김씨 역시 35세를 넘기면서 비혼자로서의 삶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제1회 '싱글맘의 날' 기념 컨퍼런스
하지만 비혼자들은 여전히 현실의 단단한 벽에 막혀 있다. 넓게는 '결국 적당한 상대를 찾지 못해 결혼하지 못했다'는 사회적인 편견이지만 가장 두꺼운 벽은 가족의 시선이다. 형제 자매가 다들 결혼을 택했을 경우엔 홀로 남은 비혼자의 삶은 어쩐지 더 불안하고 외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언제 나타날지 모를 짝을 기다리며 미혼을 지속하는 것처럼 비혼의 삶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기혼의 반대말은 '미혼'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부 급진적인 사회학자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결혼제도가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그러나 다양화되는 결혼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또, 언제가 되었든 자신의 반쪽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미혼남녀의 증가로 1인 가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사회적, 경제적 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을 경우 비혼 인구 증가는 피할 수 없을 현실이 될 전망이다. 사전적으로 결혼은 남녀가 법적·사회적 승인 아래 남편과 아내로서 맺어지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합은 사실혼, 동거, 동성결합 등의 형태로 다양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들 모두가 건강보험 혜택이나 주택계약 문제, 또는 상속에 관련된 법적 지위 등에 있어 정식 결혼과 마찬가지의 법적·사회적 테두리 안에 속해있지는 못하다.

결혼반지 끼는 남성 동성애자
우리보다 앞서 '표준적' 결혼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한 서방선진국은 어떤가. 프랑스에는 1999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 의해 시작된 팍스(PACTES)가 있다.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 간단한 신고만으로 결혼과 동등한 사회적 권리를 취득할 수 있는 일종의 합법적 동거제다. 이 제도로 전 세계적으로 낮은 출산율로 고민했던 프랑스의 출산율이 높아지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벨기에, 스페인, 남아공 등은 합법적으로 동성결혼을 인정하며, 덴마크, 미국, 핀란드 등에서는 동성결합(파트너쉽)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급진적으로는 결혼제도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개인이나 종교의 범주 안에 가둬놓자는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제도는 국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에 손쉽게 놓을 수도 없다. 수천 년 동안 결혼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현상과 밀접하고 복잡하게 얽혀왔다. 남자와 여자의 개인적인 만남, 범위를 조금 더 넓혀 가족 간의 결합이라는 기존 결혼 개념과 그 전제는 가족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사고와 행동이 사회적인 분위기와 정치적인 상황과 경제적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 정치, 경제적 요소가 서로 뒤엉켜 사회구조가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결혼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결혼제도는 스스로 발전해온 것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형태의 다양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가족 형태의 모습까지 바꾸고 있다. 결혼으로 파생되는 가족의 모습은 아빠, 엄마, 자녀로 구성된 '일반적' 가족 외에도 다양한 가족 형태를 그 범주 안으로 포용할 것을 요구한다.

에어랑엔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은 <위험에 처한 세계와 가족의 미래>에서 이런 현상을 이같이 설명한다.

"오늘날의 상황을 특징짓는 것은 단순히 '일탈'이 일어나고 그것이 횟수를 더해간다는 것뿐이 아니다. 훨씬 중요한 것은 이전에는 '일탈적'이던 방식들이, 여러 다양한 형태들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것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것, 그래서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거커플, 이혼커플, 사실혼을 통한 출산, 혼외 출산이나 아버지가 없는 형태의 출산, 혹은 비혼자나 동성결합커플의 아이 입양, 그리고 정자은행을 통한 출산 등을 통해 고려해볼 수 있는 가족의 형태도 다양하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개념 확장이 필요한 시점이자, 다양한 방식을 통해 태어나는 아이들에 대한 제도적 보호장치 역시 중요해졌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