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채소, 공정무역 커피, 인디밴드 음악, 구제 옷…

홍대 출신 인디 밴드 중 요즘 가장 뜨거운 이는 '십센치'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하며 더욱 유명세를 떨치게 됐지만 그 전에도 그들은 어느 정도 유명했다. 본격적으로 뜨기 전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인기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표현으로 말하자면 허세 음악이라는 게 있다. 난 이런 음악도 들어, 내 아이팟의 목록을 좀 보렴하는 느낌. '브로콜리 너마저'가 그 시작이었던 같은데, 우리 음악도 요즘 거기에 속하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허세의 자세한 내용은 '히트곡 제조기들이 만들어내는 귀가 녹을 것 같은 사운드에 편승하지 않고 거칠고 살아 있는 음악의 가치를 알아보는, 게다가 음반이 안 팔려서 가난에 허덕이는 인디 밴드의 음반을 사준 나란 인간의 고상함이란' 정도로 해석된다. 이런 허세는 유감스럽게도 힙스터 문화의 처음이자 끝이다.

사실 별로 유감스러울 것도 없는 것이, 잘 생겨 보이고 싶은 욕망, 돈이 많았으면 하는 욕망 사이에 당연히 착한 사람, 사려 깊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망도 존재하는 것이다.

언론이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인간성 상실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요즘에는 돈에 노골적으로 탐닉하는 된장녀와 데릴사위만 남은 것 같지만 착하고 고상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망은 의외로 아주 집요하고 끈질기다.

문제가 되는 건 착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나 실천 없이 미니 홈피에 '셀카' 찍어 올리듯 도덕적 삶의 양식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것도 소비를 통해서.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씨는 힙스터들이 비난 받는 이유에 대해 "삶이나 사람에는 관심이 없고 그 이미지만 소비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쿨해보이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체제를 비판할 때도 대통령이 없어져야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이야기를 한다.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이다. 가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나 소설 속의 인물을 연기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욕망의 모순이 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착해지고 싶은 욕망은 이 사회에서 대치될 수 밖에 없는데, 그들은 그 모순을 인정하지도, 아니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힙스터들은 정작 태평하다. 불행히도 성찰의 부재와 사상의 가벼움은 요즘 힙스터의 특징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생협에서 유기농 채소와 공정무역 커피, 그리고 캣푸드를 사서 집에 돌아와 오마이뉴스의 기사들을 훑어 보다가 고양이 밥을 주고 인디 밴드의 음악을 듣는 한국 힙스터들의 삶. 힙스터의 삶을 구성하는 것은 그들의 구매 목록이다. "이리와, 내 생협 영수증을 좀 보렴"

채식과 공정 무역

근래 요식업계의 최대 트렌드는 로컬, 유기농, 공정무역이다. 가까운 지역에서, 제대로 된 공임을 받고, 건강하게 길러진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 올해 초 일어난 구제역 사건으로 인해 채식과 육식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을 때, 힙스터들은 진작에 채식주의를 선언하고 제3세계 커피를 섭렵한 후 다음 논쟁에 돌입한 상태였다.

고기는 안 먹지만 달걀과 우유를 먹는 베지테리언들을 비난하며 ("넌 태어날 병아리의 눈동자가 불쌍하지도 않니?"), 그조차도 먹지 않는 비건(vegan)이 출현했고, 곧 이어 채소만 먹는 이들을 훈계하며("넌 식물도 공포를 느낀다는 걸 모르니?) 땅에 떨어진 낙과(落果)만 먹는다는 프루테리언들이 등장했다.

그마저도 못마땅한 사람들이 이르는 마지막 단계는 소비주의에 반대하며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을 것을 찾아내는 프리건이지만 국내에는 아직 없다. "힙스터들은 사람들이 진짜로 무시할만한 일은 안 해요."

노회찬 트위터 팔로우하기

진보신당 노회찬 상임고문의 트위터를 팔로우해 그의 소식과 동정을 실시간으로 체크한다. 거기서 얻은 정보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종종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거나 인용의 형태로 사용된다.

"노회찬이 그러던데~" 이는 물론 선거철이 아닐 때에 한정된다. 선거철만 아니라면 무언들 못하랴. 한진중공업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고, 김여진에 대해서도 잔뜩 떠들 수 있다. 좌파도 좋고 게이도 좋고 페미니스트도 좋다.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힙스터들은 새롭고 힙한 모든 것을 지지한다. 그러나 선거, 입사, 결혼 문제 앞에 섰을 때, 진짜로 팔 다리를 움직여야 하는 시점에 이르면 그 사상의 얼만큼이나 남아 있을 지는 알 수 없다.

신진 디자이너 라벨과 구제 시장

구제 옷을 사기 위해 광장시장을 간다면 그는 힙스터가 아니다. 광장시장은 힙스터를 동경하는 이들이 가는 곳이고 가게 주인들도 그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진짜 못 봐줄만한 옛날 옷은 매장 뒤쪽에 배치하고 앞쪽에는 요즘 입어도 예쁜 '검증된 빈티지'를 진열해 놓는다.

대신 황학동 구제 시장에 가면 수많은 아저씨, 아주머니들 틈바구니에서 100m 밖에서도 보일 만큼 눈에 띄는 청년들을 볼 수 있다. 딱 붙는 바지와 페도라, 귀여운 액세서리를 달고 있는 힙스터들은, 상인들이 1000원의 가치를 매긴 옷들에 스스로 자신만의 가격을 다시 매기며 바이어로서의 기쁨을 만끽한다.

20대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만드는 라벨도 좋아한다. 시즌을 많이 거치지 않아 대중화되지 않은 감성도 좋지만, 그들은 지원 받아 마땅한 가난한 예술가 아닌가. 물론 그들의 옷을 바잉해 팔고 있는 번화가의 편집숍들이 재고 부담을 몽땅 그들에게 물리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아마 모를 것이다.

정치인 얼굴 흉보기

"난 이명박이 싫어. 못생겼잖아. 게다가 저번에 그 신부 메이크업 봤어?"

거대 세력에 반항하는 것도 이제는 너무 흔해서 촌스럽다. 주류를 욕하되 그 이유가 외모여야지 비로소 '힙'해진다. 사실 그의 정치적 소견과 업적을 들어 그를 욕할 수도 있다. 몰라서가 아니다.

그러나 힙스터들이 정치인을 반대하는 근거로 드는 것은 얼굴과 패션 센스다. 오바마는 잘 생겨서 좋고 부시는 못 생겨서 싫다. 왜 그들의 정치적 사상과 행동을 비난하지 않느냐고? "그건 남들도 다 하는 거잖아"

인간적인(?) 뒷골목 카페

홍대나 삼청동에 가면 규모는 작지만 주인장의 매력이 듬뿍 묻어나는 곳들이 있다. 인테리어부터 메뉴, 서비스까지 주인의 철학이 관통된 그런 곳들은 볼 것도 없이 대박이 나게 마련이다.

힙스터들의 주요 서식지는 그런 식의 작고 컨셉추얼하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카페들이다. 그날 장 본 재료로 만드는 브런치와 제대로 내린 유기농 커피, 제 3세계의 희귀한 음악들. 그러나 그들의 세련되고 힙한 취향은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해 경쟁적으로 퍼져나가고 곧 그 카페는 문전성시를 이루게 된다.

주인으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건물주도 함께 기뻐해줄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임대 비용을 올려 원 주인을 쫓아내는 경우가 다반사고 그 자리는 건물주 또는 건물주의 자녀가 차지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문을 닫은 홍대의 카페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다.

"평일 낮에 홍대에 가면 온통 외제차인데, 그 중 반이 놀러 온 사람, 나머지 반은 점포 보러 온 사람들이에요."

이런 현상이 모두 힙스터들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억지다. 그러나 사회의 주류에 대항하는 힙스터들의 문화가 주류를 살찌우는 결과를 불러온 것도, 그들이 그것을 막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