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상황 중심서 일상 속 평범함이 주는 서늘한 공포로소수 마니아 전유물서 장르 문학으로 새롭게 주목받아

여름이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시원한 수박과 팥빙수, 일 년 내내 기다린 휴가, 납량특집 영화 등등. 그 중 하나가 공포소설이다. 국내에서 공포소설은 소수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최근 장르소설의 인기와 더불어 새롭게 주목받는 분야가 됐다.

올 여름 유행하는 공포소설과 신작, 주목받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왜 공포소설일까?

사람들은 왜 이 더운 여름에 공포영화, 공포소설을 찾는 걸까? 이는 공포영화, 공포소설이 지닌 장르적 매력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인물들의 공포를 보여주거나 상상하게 하는 장편은 피부 혈관 근육을 수축시키고 체온 저하 효과로 이어진다는 것. 최근 몇 년 간 여름이면 공포영화, 공포소설 만큼이나 이런 의학적 분석을 실험하는 프로그램이 자주 방송되기도 했다.

지난해 국내 출간된 스티븐 킹의 <죽음의 무도>는 소설, 영화를 비롯한 공포 장르 전반에 관한 그의 글을 모은 논픽션집이다. 이 책은 공포소설에 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좀 더 포괄적으로 설명해준다.

스티븐 킹은 이 책에서 "우리에게 있어 공포 영화는 안전밸브"라고 말한다. 주지하다시피 그의 전공(?)은 공포소설. <쇼생크 탈출> 등 영화화된 소설로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그는 <미저리>, <그린 마일> 등 일련의 공포소설로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허물며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지난 30여 년간 그가 쓴 500여 편의 소설은 30여 개 언어로 번역돼 3억 권 이상 팔렸다. 생존 작가로 단연 최고의 베스트셀러작가인 셈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공포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허구의 공포 속으로 피신한 덕분에 현실의 공포는 우리를 압도하지 못하고, 우리를 꽁꽁 얼어붙게 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제대로 살아가려는 우리를 방해하지 못한다"라고 말이다. 요컨대 공포 영화 속 나쁜 꿈이 끝났을 때, 평범한 현실이 더 좋아 보인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공포의 유형도 변해왔다. 공포소설의 원형으로 꼽히는 <드라큐라>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프랑케슈타인>으로 발전했고, <검은 선>(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이나 <유골의 도시>(마이클 코넬리) 등으로 한 단계 더 비약했다. 이전 공포소설이 죽은 자의 원혼에 시달리는 인물과 상황을 내세웠다면,

최근의 공포소설은 이에 한걸음 일상 속 평범함 혹은 현실의 충격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섬뜩함을 선사한다. 앞서 소개한 스티븐 킹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샤이닝>, <그것> 등 그의 대표소설은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는 것을 소재로 서늘한 공포를 던진다.

한국형 공포소설은?

여름이면 반짝 인기를 끌지만 사실 국내 출판시장에서 공포소설은 장르문학 내에서도 '비주류'로 통한다. 민음사의 장르문학 전문 브랜드 '황금가지'의 김준혁 편집장은 "국내 장르문학에서 공포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10 이내"라고 말한다.

예컨대 올 상반기 국내 출판 종수를 볼 때 추리․스릴러는 200종, 판타지는 100종, SF는 30여 종인데 반해 공포소설은 단 10종에 불과하다. 신간 공포소설 중 그나마 시리즈물을 제외하면 5종이 전부다.

김준혁 편집장은 "전체 장르문학시장 규모는 '라이트노블', '대여점 무협지, 판타지, 로맨스' 등을 제외하고 실제 서점에서 유통되고 판매되는 장르문학에 국한했을 때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는 공포시장 자체가 작아 작가를 발굴하는 제도가 많지 않은데다 그나마 공포소설을 발표할 매체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2년 전 복간했던 장르문학 전문지 <판타스틱>의 경우 '시공사'가 복간 3개월 만에 다시 정간을 결정해 사실상 폐간 상태에 있고 출판사 '자음과모음'이 올해 창간을 추진했던 장르문학 전문지 <네오픽션>은 창간을 무기한 보류한 상태다.

자음과모음 편집자 손수지 차장은 "장르문학전문지의 경우 당분간은 발행하기 어렵지만, '네오픽션상' 등 장르작가 공모전은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네오픽션상은 추리, 스릴러 등을 비롯해 장르문학 전반을 대상으로 한 문학상. , .

김준혁 편집장은 "90년대 전성기에 비해서 공포소설은 장르문학의 한 갈래로 인정받고 있다. <링>이 성공했던 90년대에 비한다면 지금 시장규모는 작지만, 최근 공포소설 출간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출간된 <공포문학단편선 시리즈>는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국내 공포소설작가들의 비공개 인터넷 카페 '매드클럽' 회원을 주축으로 매년 여름마다 출간되는 이 책은 국내 유일의 공포문학 작품집으로 현재까지 다섯 권이 출간된 상태다.

이종호, 김종일 등 익숙한 작가들 외에도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추가하고, 소재의 다양성을 살려 읽는 재미를 준다. 시리즈 1권은 7000권 가량이 판매됐고, 해마다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출판사 자음과모음 역시 장르문학을 전문으로 한 출판브랜드'네오픽션' 브랜드를 통해 이달 초부터 잇따라 추리, 스릴러 등 장르소설을 출간하고 있다.

김준혁 편집장은 "<공포문학단편선 시리즈>의 성공은 국내 공포소설의 가능성을 본 사례다. 짧지만 다양한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다는 게 독자의 부담감을 덜어줬고, 짧은 단편 모음이다보니 강렬한 작품을 여럿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올 여름 추천도서

여름을 나는 저마다의 피서법이 있겠지만, 공포영화나 공포소설을 보는 것만큼 싸고 효과적인 피서법은 없다. 올여름 공포소설과 함께 서늘한 여름을 보내려는 당신에게 다음 책들을 추천한다.

<언더 더 돔>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
스티븐 킹의 신작 소설. 그가 왜 오랜 세월 '호러 킹'으로 군림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가 1970년대 처음 구상한 후 30년 만에 빛을 본 작품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투명 돔 속에 갇힌 채 외부와 단절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악이 어디에 숨어 있고 어떻게 창궐해 사람들을 죽음과 공포로 몰아넣는지 너무나 현실적인 묘사로 보여준다. 스릴와 서스펜스분만 아니라 우정과 가족애, 유머와 현실 비판 등을 모두 담아 거장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검은 선>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문학동네 펴냄
계절 가리지 않고 꾸준히 읽히는 스테디셀러로 작가의 '악의 기원 3부작'의 첫 작품이다. 과거 무호흡 잠수 챔피언이던 르베르디가 말레이시아에서 연쇄살인으로 체포된다. '한 때 잘나갔던' 저널리스트 뒤페라는 가상을 여인을 만들어 르베르디에게 접근하고, 르베르디는 사랑에 빠진다. 뒤페라가 르베르디를 알수록 그의 미학적인 살인의식에 빠져들게 되고 그의 궤적을 쫓아간다. 출간 당시 <다빈치 코드> 열풍에도 20주 동안 종합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작품으로 정교한 플롯과 스릴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검은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창해 펴냄
국내에도 꽤 많은 팬을 보유한 일본 공포소설의 대가 기시 유스케의 대표작으로 국내에서 황정민 주연의 영화로 제작돼 화제가 된 바 있다. 보험금 지급을 담당하고 있는 신지, 불만접수로 고모다라는 남자의 집을 방문하다 고모다의 아들인 가즈야가 목을 매달고 죽은 모습을 발견하고 기겁한다. 사이코패스로 추정되는 고모다는 신지 주변을 맴돌고 신지는 점점 끔찍한 사건에 휘말린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다룬 소설로 추리기법을 사용해 공포소설에 거부감을 가진 독자도 재미있게 읽을 만한 작품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