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갤러리] 대안공간 루프 9월 9일까지

'Red Cabinet', 2005
방 안은 언뜻 무질서해보인다. 물건들은 멋대로 놓여 있다. 누군가가 정리를 하다 말고 뛰쳐 나간 것 같다.

그런데 물건들 틈에 끼어들어 벽에 걸린 영상을 보면, 앗, 거기에 내가 있다. 몬드리안의 추상화, 제스퍼 존스의 성조기 그림, TV의 화면 조정 시간을 알리는 색색의 줄무늬 속에서 불청객처럼 기웃거리고 있다.

그제야 깨닫는다. 저 질서정연한 영상이 방 안의 실시간 풍경이었고, 물건들은 CCTV를 향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CCTV를 활용해 시각적 속임수를 만들어낸 한경우 작가의 작품이다. CCTV가 관객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작품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설정은 보고 보여지는 것이 일상화된 감시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위성 카메라 아래에서,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에 둘러싸여 우리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매순간 이 시대의 구성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나아가 수많은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시각적 정보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대부분 보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믿는 것이 꼭 사실은 아니다.

'Tableau with Objects', 2008
진실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방 안의 무질서함에 대한 체험과 이 방을 질서정연하게 담아낸 CCTV 화면간의 괴리는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현실은 얼마나 감쪽같이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껏 보고 믿고 익숙해지고 주장해 왔던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매체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진실과의 거리는 좁아지지 않은 상황을 대입하면 한경우 작가의 개인전 'Red Cabinet'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전시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대안공간루프에서 9월 9일까지 열린다. 02-3141-7265


'Green House', 2009
'Triangle, Circle, Square', 2008
'Corners of Loop', 2010
'Star Patturn Shirt', 2011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