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열 EBS 편성기획부 부장매체 환경의 변화가 양적, 질적으로 새로운 다큐 제작 가능하게 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강화한 2008년 이후 EBS의 시청률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매일 밤 방송되는 '다큐 프라임'은 고품격 다큐멘터리에 목마른 시청자들에게 오아시스로 자리 잡았다.

"한 번 잘 만들어 여러 번 방송한다"는 '경제적' 전략이 충분한 제작비와 제작 기간을 보장하는 사전 제작 제도로 이어졌고, 다큐멘터리의 질과 함께 시청자의 신뢰도 높아졌다.

도전과 혁신도 안정된 제작 환경에서 나온다. 2008년 <한반도의 공룡>이 당시 국내 다큐멘터리 중 최고가로 수출된 것을 시작으로 EBS가 제작하는 블록버스터 다큐멘터리들은 해외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4월 방송된 국내 최초 3D다큐멘터리 <신들의 땅, 앙코르>는 최근 미국의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스미소니언에 판매됐다. 판매가는 35만 달러로 역대 최고다.

3D다큐멘터리 라인업은 계속 이어진다. 오는 1월에는 <한반도의 공룡 2>가 극장 개봉하고 <위대한 바빌론>과 <위대한 로마> 등 <신들의 땅, 앙코르>에 이은 '문명 시리즈'가 내년 말까지 완성된다. <위대한 바빌론>에는 배우의 표정과 몸짓을 캡처해 등장인물을 만드는 '이모션 캡처' 기술이 도입된다.

매년 개최되는 EBS국제다큐영화제도 한국 다큐멘터리 진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EBS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국내외 다큐멘터리의 흐름과 이슈를 다루는 이 영화제는 올해 8회째를 맞았다.

이 모든 전진을 지휘하고 <신들의 땅, 앙코르>를 공동 연출한 김유열 편성기획부 부장은 "한국 다큐멘터리가 기회를 만났다"고 말한다. 매체 환경의 변화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새로운 다큐멘터리 제작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들의 땅, 앙코르>가 높은 가격에 수출됐다. 좋은 선례가 된 것 같다.

작년 10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MIPCOM에서 스미소니언 채널이 3분짜리 트레일러만 보고 구매를 결정했다. 세계적으로 3D 채널은 늘어났지만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금융 위기 이후 서구의 대규모 다큐멘터리 제작이 위축된 반면, 국내에서는 3D 기술에 대한 공적 지원이 활발한 것도 한국 3D다큐멘터리의 해외 진출 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이다. <신들의 땅, 앙코르>도 제작비의 반 정도를 정부에서 지원받았다.

블록버스터급 다큐멘터리의 경우, 제작비를 회수하려면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겠다.

<신들의 땅, 앙코르>를 시작으로 <위대한 바빌론>, <위대한 로마>, 그리고 잉카 문명에 대한 다큐멘터리까지 '문명 시리즈'를 만드는 것은 활로를 확장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고대 문명은 지역이나 시기와 관계없이 호소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시리즈를 완성해서 패키지로 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판매가 측면에서도 한국 다큐멘터리가 경쟁력이 있다. 같은 규모의 다큐멘터리를 서구에서 제작할 경우 제작비가 올라가 판매가가 3~4배 이상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편성에 집중하다 보면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거나, 피상적이 될 수 있지 않나.

반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세계사가 서양 중심적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요즘에는 오히려 동양적 시각이 요구되고 있다. <신들의 땅, 앙코르>에서는 오리엔탈리즘에 빠지지 않고 캄보디아 역사를 바라보려고 노력했고, <위대한 바빌론> 역시 동양적 시각에서 서양 문명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신선할 것이다.

'다큐프라임'의 사전 제작 제도는 국내 다큐멘터리의 열악한 제작·유통 구조를 개선한 시도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공모를 통해 독립PD들에게 방송사 내부 인력과 같은 제작 환경을 제공하고, 촬영 원본을 실제작자와 공유함으로써 2차 저작물의 수익을 공정하게 나눈다는 점에서 환영받고 있다.

'고품격 다큐멘터리'라는 지향에 충실하기 위해서 내부 인력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방송다큐멘터리와 독립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PD들이 많이 생겼고, 방송사 내외부의 상생 관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러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프로젝트의 심사위원을 맡아 왔는데,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나.

<워낭소리> 성공 이후 실험적인 시도가 늘어난 것 같다. 다큐멘터리 내에서도 페이크 다큐 등 장르가 다양해지고 있다. 직접 인공위성을 만들어 띄우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도 봤다.(웃음) 이런 활기와 다양성이 한때의 유행에 그치지 않고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