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음색 신뢰도 쑥쑥, 음높이 적당히 높을수록 매력적생활습관 관리와 발성훈련 통해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어

'콩푸 팬더'에서 목소리 출연한 잭 블랙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에는 목소리에 관한 유명한 아리아가 있다.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라는 아리아로, 유혹에 넘어온 삼손이 사랑을 맹세하자 델릴라가 화답처럼 부른 노래다. 델릴라의 의도는 결코 순수하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노래에 공감하게 되는 것은 남녀 사이에서 목소리가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국내의 한 취업포털에서 1128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당신은 이성의 어떤 점에 가장 두근거리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응답자의 가장 많은 비율인 44.4%가 '목소리'라고 대답했다. 외모보다 목소리가 상대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결과였다.

이는 비단 남녀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앨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은 일찍이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말투와 목소리라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내용 8%, 표정 35%, 태도 20%이며 말투와 목소리의 비중은 38%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의 주인공 '시저'(왼쪽)
표정을 보지 못해도 감정상태를 짐작하게 하는 목소리는 또한 일치하든, 아니든 그에 어울리는 외모를 상상하게 한다. 그 때문인지,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의 목소리 출연은 종종 캐릭터의 생김새와 닮은 배우가 맡는다.

가령 <쿵푸 팬더> 시리즈에서 주인공인 팬더 곰, 포의 목소리는 코믹하고 둥글둥글한 이미지의 잭 블랙이 목소리 열연한다. 또 도전적이고 맹렬한 호랑이, 타이그리스의 목소리는 강인한 턱과 액션 여배우의 이미지로 다져진 안젤리나 졸리가 맡고 있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한동안 외모에 비해 소외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세계 후두학 교수들은 건강한 목소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4월 16일을 '세계 음성의 날(World Voice Day)'로 제정하기도 했다. 목소리는 성대가 있다고 해서 나오는 건 아니다. 목소리가 나오는 환경적, 신체적 조건, 건강한 목소리를 유지하고 훈련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중요하다.

목소리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몇몇 가수들은 성대결절로 고생하기도 하고, 목을 많이 사용하는 이들은 목 건강을 위해 성대 보호를 가장 첫손에 꼽는다. 하지만 발성은 성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사람이 목소리를 내기까지 거치는 발성기관은 네 곳이다.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지고 쉰 상태가 지속된다면 치료도 가능하다.(사진=임재범 기자)
폐를 발생기라고 한다면, 후두의 성대는 진동기이고, 목 내부의 인두강은 공명기, 그리고 구강과 혀, 입술을 발음기라고 한다. 목소리는 이들 발성기관이 움직여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김형태 원장(예송이비인후과 음성센터)은 "성대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이들 기관과 이들을 둘러싼 근육의 기능까지 건강하게 유지되어야 좋은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발성기관만 갖췄다고 해서 어디에서나,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기의 성분과 밀도 등의 환경과 신체적인 조건 역시 갖춰져야 한다.

가령 공기의 대부분이 이산화탄소로 채워지거나 대기의 밀도가 현저히 낮은 금성과 화성에서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또한 목소리 변조 시에 종종 사용되는 헬륨가스를 사용해 보더라도 공기의 성분과 밀도가 목소리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지구의 공기 성분은 산소21%, 질소 78%, 헬륨0.1% 등을 차지한다. 그러나 지대에 따라 공기의 밀도는 달라져 고지대에 올라가면 목소리가 가늘어지고 반대의 상황이 되면 목소리는 한층 굵어지게 마련이다.

인간의 직립보행은 도구사용으로 인한 문명의 발달을 가져온 것과 동시에 목소리를 갖는 것 또한 가능케 했다. 98.4%의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침팬지와 인간의 언어 보유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그 외의 유전적 요소이다. 그러나 단지 소리가 아닌 목소리를 갖게 되는 것은 직립보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랑을 속삭일 때 여자의 목소리 톤은 평소보다 높아진다
사족 보행을 하는 동물은 발성기관의 연결이 일직선으로 되어 있는 반면, 직립보행을 하게 된 인간은 폐에서 입에 이르는 통로가 직각을 이루게 됐다. 반면, 침팬지는 이 각도가 45도 정도다.

침팬지 '시저'가 등장하는 최근 개봉작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에는 직립보행과 목소리와의 상관관계 역시 드러낸다. '시저'가 인간 못지않은 지능을 갖게 된 것은 과학자 윌 로드만(제임스 프랭코 분)이 개발한 알츠하이머 병 치료제 덕이지만,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시저의 키는 점점 더 커진다.

'시저'가 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그가 점점 더 상체를 바로 세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화 막바지, 시저는 윌과 마주 보며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한다. 감독이 전술한 상관관계를 알고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무척 흥미로운 장면임은 분명하다.

좋은 목소리란?

듣기 좋은 목소리에 대한 선호도는 있을 수 있지만 목소리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귀와 뇌는 그 기준을 분명히 알고 있다. 사람의 귀는 1000-3000Hz의 소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람 뇌의 90%를 차지하는 대뇌피질이 감싼 대뇌변연계는 감정과 욕망을 통제하는 감성중추와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귀를 지나 뇌에 목소리가 도달하게 되면 감정과 본능을 자극하는 소리에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남성이 높은 톤을 가진 여성의 목소리에, 여성은 중저음을 가진 남성의 목소리에 끌리는 이유도 각각 성욕과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녀의 구분을 떠나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고 호소력을 갖는 목소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정도 힘이 있으면서 화음이 풍부하고 맑은 목소리다. 혹자는 둥글게 말린 듯한 목소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한국소통학회는 <목소리 구성 요소의 커뮤니케이션 효과에 관한 연구>(박란희 & 이시훈, 2009)를 통해 매력적인 목소리의 요건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음색, 음높이, 휴지, 크기, 속도 등 목소리 구성요소를 구분해 호감과 신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찾아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호감을 주는 목소리는 '음색이 풍부하고 음높이가 높고, 휴지가 정상이며 속도가 느린 경우'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음색이다. 풍부한 음색은 앞서 언급한, 화음이 풍부하고 둥글게 말리는 목소리로 표현된다.

풍부한 음색은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와 함께 음절 간에 적절히 쉬는 시간을 두는 휴지(평균 0.9초)가 결합되면 신뢰도는 크게 상승한다. 휴지는 곧 말의 속도와도 연결되어 있어, 휴지가 거의 없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말하는 것은 신중하지 않고 경박해 보여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또 음높이는 적당히 높을수록 매력적이지만 신뢰도에서는 오히려 감점이 될 수 있다. 반면 목소리의 크기는 호감과 신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려면?

굳이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드러낼 일이 많아진 현대인들에게 목소리는 중요한 재산이다. 목소리가 좋지 않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전문가들은 "목소리는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성공을 부르는 목소리 코칭>의 저자 임유정 (라온제나 스피치 대표) 씨 역시 첫 방송을 한 후 PD와 선배에게 '방송과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라는 평을 들어야 했다.

높은 톤과 허스키한 음색, 그리고 부정확한 발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꾸준히 단련한 결과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숨겨진 목소리를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하루 30분~1시간 동안 꾸준히 발성 훈련을 해왔다고 한다. 복식호흡으로 끌어올린 숨으로 입안에 공명을 발생시켜 한층 풍부한 음색을 찾을 수 있다. 또 입을 크게 벌리면서 단어를 또박또박 발음하면 훨씬 자신감 있고 매력적인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미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목소리는 변하기 마련이다. 목소리는 건강 상태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혹독한 다이어트나 과도한 음주와 흡연, 혹은 갑상선 기능저하증을 앓고 있더라도 목소리는 쉽게 거칠어진다. 노화가 시작되면 발성기관 주변 근육의 탄력이 떨어지면서 목소리가 흔들리기도 한다.

적절한 수면과 운동을 기본으로, 생활습관에 특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커피나 녹차, 콜라, 초콜릿처럼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식음료와 기름진 음식, 과식, 음주와 흡연 등을 피하고 무리하게 소리를 지르거나 말을 많이 하는 것도 경계하라고 말한다. 또 목이 아플 때는 가급적 말을 줄일 것을 권한다.

한편, 김형태 원장은 "목 보호를 위해 마시는 날계란, 도라지 물, 유자차 등은 잘못된 상식으로, 성대의 윤활작용에 도움 안 된다. 그보다는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물을 자주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참고도서:<보이스 오디세이>, 김형태 저, 북로드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