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웰빙, 한식의 세계화… 무엇이 한국음식인가 다시 생각할 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인들의 건강과 음식/맛에 대한 관심은 유별날 만큼 각별했다. 사람들은 맛을 찾아 혹은 건강을 위해 각종 유명 식당과 레스토랑을 오늘도 배회한다. TV 속에서 만나는 맛집 소개 프로그램은 하루에도 수십 개의 맛집을 소개해, 이제는 맛집 아닌 곳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한편으론, 건강을 위해 사찰음식을 찾는 이들도 늘어났다. 음식/맛에 대한 탐닉은 관심 역시 확장시켜 에세이 혹은 요리책 정도로만 읽혔던 음식 서적 역시 그 역사적 유래나 식문화로 범위를 넓혀 독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현재 우리 식탁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단연 '웰빙'이다. 그러나 '심신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한다는 사전적 의미와 달리 지금의 '웰빙 열풍'은 신선하고 살 찌지 않는 먹거리에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화학 조미료, 인스턴트 식품을 스스로 주의한다는 점에서는 부분적으로나마 긍정적으로 비친다.

그러나 이 같은 '웰빙 열풍'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이들 뒤편에서는 여전히 패스트푸드에 대한 소비가 꾸준히 이어져 왔고, 길거리 음식이 브랜드화되면서 인기를 더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웰빙에 대한 반동처럼 일명 '폭탄 버거'라는 고칼로리 음식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음식/맛과 건강에 대한 이 같은 이중적인 태도는 최근 시장조사 전문기관 트렌드모니터가 만 13~59세 남녀 2천 명을 대상으로 한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응답자의 29.9%는 '음식의 맛보다는 영양이 중요하다'고 답했고, 유해성 논란이 있는 '인스턴트 식품을 즐겨 먹는다'는 응답도 2001년 34.8%에서 2011년 47.2%로, 오히려 증가하는 의아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우리 식탁에서 웰빙은 단지 유행처럼 지나가는 세련된 구호에 불과한 걸까?

지난 수년간 웰빙 못지않게 식생활의 중요한 이슈는 맛집이었다. 배고팠던 지난 시절의 한풀이라도 하듯 많이 먹고, 맛있게 먹는 맛집은 '탐식의 시대'(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절정을 달궜다. 블로그나 SNS를 통해 '어느 식당이 맛있다'거나 '서비스와 맛이 최악이다'라는 글이 쓰여지면 해당 식당의 매상에 변화가 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런 파급력 때문에 식당과의 검은 커넥션으로 뒷돈을 챙기는 블로거가 밝혀져 최근 사회적 물의가 되기도 했고, 영화 <트루맛쇼>는 식당과 방송국 간의 은밀한 거래를 생생하게 폭로하기도 했다.

한국의 대중이 '웰빙과 탐식'에 빠져 있는 동안, 정부는 한식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글로벌 외식 산업 규모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영세한 한식 산업을 북돋우고자 정부 주도로 시작된 사업이다. 지난 2008년부터 오는 2012년까지 4단계로 단계별 산업화를 진행 중인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무엇보다 가장 많은 지적은 '한식'에 대한 정체성의 부재다. '무엇이 한국 음식이고, 무엇이 한국 음식이 아닌가?'에 대한 질문이고, 이어지는 지적은 프렌차이즈를 통한 성과주의에 급급할 뿐 음식을 만드는 기본적인 식재료에 대한 장기적 안목이 부재하다는 점 등이다.

육부촌 육개장
또한 수용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추진 방식에는 이미 '우리 것이 최고다'라는 민족주의 개념이 스며들어 있고, 세계적인 웰빙 열풍을 쫓아 '한식은 곧 슬로푸드/웰빙푸드'라는 식의 접근은 한식에 대한 시각과 담론을 제한한다는 점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대중들이 가진 음식문화와 한식을 대하고 바라보는 정부의 태도에 한 번쯤 제동을 걸어볼 필요가 있었다. 온갖 음식/맛과 건강, 칼로리 등에 탐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번 같은 방식으로 음식문화를 향유가 아닌 '소비'만 해오는 것은 아닌지, 욕망만 있고 담론은 없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음식을 만난다는 것은 그 지역의 언어뿐 아니라 맛, 정신, 영감,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 등 다른 지역과는 차별되는 그 지역만의 특징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풍경과 언어, 민족 집단의 다양성은 무엇보다 음식에 그대로 드러난다."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의 말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에는 우리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곳에 투영된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수덕사 산채정식
운암정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