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황교의 맛 칼럼니스트 대담

(왼쪽), (오른쪽)/임재범 기자
대담을 시작하며

TV를 켜고 맛집 소개 프로그램을 찾기는 참 쉽다. TV에 소개되는 맛집이 1주일에 170여 개, 1년이면 9천 개가 넘는다는 조사결과도 나와있다. 블로그에 소개되는 맛집 탐방기는 그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요리와 맛을 즐기기 때문일까? 그것이 맞다면 우리는 음식 이야기를 얼마나, 또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전통음식의 대명사격인 비빔밥은 어떻게 우리 밥상에 오르게 되었는지, 우리가 즐겨먹는 닭고기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전복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답할 수 있는 이들은 안타깝지만 그리 많지 않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추석이다. 익숙한 음식이 상 위에 가득하다. 궁금하고 답답했다.

왜 우리의 음식담론은 맛집과 한식의 세계화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얻고자 '음식과 맛'에 대해 깊이 있는 글쓰기를 해온 두 전문가와 조금 특별한 대담을 시도했다.

황교익
'한국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즐기는가?'라는 질문으로 대담을 시작했다. 이 질문을 통해 한국의 음식문화에서 한식 세계화까지 폭넓은 음식담론에 대한 물꼬를 터보고자 했다.

음식 이야기, 맛 이야기

(이하 황) : 음식 이야기가 아닌 음식 맛에 관한 이야기를 즐긴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모여 고기를 굽게 되면 세칭 유명 음식점을 많이 다녀봤다는 사람이 대화를 주도한다. 나는 고기를 많이 아니까 이런걸 먹어야 한다는 등의 자랑 같은 이야기만 넘친다. 쇠고기 사육방식과 유통 체계, 또는 불고기 레시피에 대한 관심은 없다. 그저 맛있냐 없냐가 주된 관심사다.

(이하 주) : '내가 이러저러한 맛있는 것을 먹어봤다'는 것은 사회적 레벨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일 거다. 옛날에는 주로 시인들이 다방이나 대포집을 출입하며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를 쓴 경우가 많았다. 고 천상병 시인의 경우 60년대 초반 명동에 있던 200여 군데의 대포집을 매일 바꿔 다녔다고 한다.

'난 먹어본 적 있어'식의 자랑은 주로 도시의 지식인들과 봉급생활자들에게서 나타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현상이 신문에서 소개되는 맛 칼럼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시골에서 자라 도시로 올라와 자리잡은 50~60대들은 사실 먹어본 것이 별로 없었지 않았나. 에세이 식으로 음식이야기를 풀어낸 고 이규태 논설고문의 칼럼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어쨌거나 지금도 여전히 맛에 대한 1순위 질문은 '가장 맛있는 한국음식이 무엇인가요?'정도다.

황 : 처음 음식 관련 칼럼을 쓸 때 의뢰 매체가 필수적으로 요구했던 것이 식당 정보였다. 전화번호, 식당위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다. 그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맛 칼럼니스트로서 식당 이야기는 빼자고 했지만 매체에서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제는 칼럼에 식당정보를 쓰지 않는다. 음식을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음식문화라고 한다면, 어떤 식당의 맛있는 음식은 그저 기호를 논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주 : 예전에 썼던 칼럼을 보고 뉴욕에 사는 독자가 이메일로 연락을 취해왔다. 미국인 남편을 둔 한국인이었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비슷한 생활수준의 각국의 사람들과 모임을 한다고 했다. 그 사람들은 피자 하나만 주제에 올라도, 음식 자체만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에서 긴 호흡의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음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김치만해도 몇 가지 종류만 언급하면 금새 얘깃거리가 동이 나는 것이다. 알고 보면 우리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주영하
신문의 칼럼 정도였던 것이 <6시 내고향> 같은 류의 프로그램이 TV매체에서 방영되면서부터 정보가 풍부해졌다고 볼 수 있다.

황 : TV에서 30~40개의 맛집 정보가 쏟아져 나오지 않는가. 나도 가끔은 블로그를 검색해 찾아가기도 한다. 블로그만 해도 몇 만개는 족히 되니까. 식당에 대해 이야기가 음식이야기의 전부였던 시기는 대략 70~80년대까지였다고 본다.

이른바 마이카 시대가 도래하면서 직접 현장에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시골에 살던 사람이 서울에 와서 장사를 하다 보니 서울이나 지방이나 음식의 차이가 별로 없다. 지방에 있다는 것만으로 향토음식이라 부르며 뭔가 다를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찾아 다니지만 모두 서울에 있는 음식이다.

탐식의 시대의 종말

주 : 일본인의 음식 이야기에는 음식 자체 뿐 아니라 오래된 식당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담긴다. 삼대째 이어지는, 지역 주민만 아는 작은 식당들이 있다. 지역 공동체의 사랑방처럼 서로 만나는 그 분위기가 참 좋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그런 류의 오래된 식당들이 존재했다.

우리도 서울 뒷골목이나 인사동에 그런 집들이 있었는데 도시 개발한다면서 다 밀어버리지 않았나. 이젠 지방에도 거의 없다. 오래된 식당은 하나의 이야기거리임과 동시에 지난 역사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상징물처럼 느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즐기지만 그 범위가 원조, 역사, 나의 경험 정도인 것 같다. 대화의 주된 대상도 아닌 것 같다. 선생한테 여쭤보고 싶다. 선생님 글을 보고 찾아가는 사람도 있고 재미있어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식탁에서의 소재가 되는가?

황 : 글쎄, 식탁에서의 소재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내 이야기는 식당에서 할 소재는 아닌 것 같고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난 음식에 깊이를 담아내고 싶다. '왜 우리가 이 음식을 소비하는가'의 맥락에서 우리 안의 욕망이나 정치적인 면을 다뤄 보고 싶다. 며칠 전 블로그에 썼던 글 중에 단체급식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난 무상이란 단어가 썩 달갑지 않다. 경제적 관점에 쏠린 '무상'이라는 말보다는 '음식'자체에 중점을 둔 친환경 단체급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급식문제 역시 먹는 문제이기 때문에 맛 칼럼니스트로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런 주제를 만류하기도 하고, 어떤 블로그 방문자는 '맛 칼럼이나 쓰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하지만 음식이야기는 결국 정치적이고 우리의 욕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주 : 우리나라에서 음식 이야기는 정치이야기랑 똑같다. 식탁에서 음식 이야기는 대화의 주제가 되지 못하고 사람들은 곧 심각해져 버린다. 간혹 사람들과 밥 먹을 때 이 막걸리 누룩은 어디에서 왔고, 물은 어디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황 : 우리의 먹고 사는 수준을 되돌아보면, 70년대까지만 해도 세끼 밥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정도였다. 넉넉하게 먹고, 기호로서 외식하게 된 것은 80년대 들어 오면서 부터다.

80년대의 특징이라면 먹는 양으로 승부한다는 것이다. 고기뷔페, 결혼식장 뷔페처럼 일단 많이 먹는 것이 중요한 시절이었다. 그 후에 '고급한 무엇이 있겠거니'하고 생겨난 외식산업으로 다양한 형태의 레스토랑들이 나왔다.

나는 지금의 시대가 탐식의 거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얼마 전 개봉한 <트루맛쇼>가 바로 그 지점에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이기도 하다. 그간 방송은 탐식의 시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앞으로는 음식에 대해 좀 더 관찰하는 시대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는 주방에서 조리되는 대로 먹었고, 누군가 어떤 것이 맛있다고 하면 믿었다. 이제는 '이것이 진짜 맛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재료가 정말 좋은 것 일까? 이 조리법이 맞는 것 일까?

일본과 유럽의 소비자들이 음식에 대해 섬세하게 보려고 하는 것처럼 우리도 진짜 미식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문화라는 것은 얼마나 섬세해지는가를 통해 그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지금은 그 초기로 만들어지는 단계인 것 같다. 가령, 이제는 쌀이 각 지방마다 품종이 다르고, 그에 따라 밥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여주, 이천 쌀도 품종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한 발짝 더 넘어서면, 같은 품종이라도 관리방법과 도정방식에 따라 차이가 나게 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차츰차츰 미식의 단계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경제 수준의 발전단계에 따라 배부르면 됐고, 돈 좀 생기면 한풀이처럼 양껏 먹는 수준이었던 것을 넘어 미식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본다.

주 : 강남에서 80년대 태어난 아이들이라면 달라질 수 있다. 일단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다양한 외식기회가 많다. 해외 여행을 통해 다양한 향신료와 맛을 경험했고, 어떤 맛이 오리지널인지도 알게 됐다. 맛의 경험은 어쩔 수 없이 경제적인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미식의 시대는 앞으로도 대다수의 경험이 되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맛의 경험을 해치는 것은 단체 급식의 획일화된 메커니즘이다. 식당, 군대, 직장, 학교 등의 단체 급식에서 다양성을 찾아볼 수가 없다. 단체 급식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급식의 방법이 천편일률 적인 것이 문제다.

개인의 기호를 존중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지역마다 똑 같은 식재료와 조리방식으로 제공된다. 일본인 교수들이 시대에 따른 급식의 변화에 대한 논문을 같이 써보자는 제의를 했지만,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지역적 특색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전국민이 미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겠지만 세대별로 그 차이가 뚜렷할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 음식도 잘 만든다. 따라서, 맛에 대한 섬세한 표현과 분별을 사회 시스템 내에서 수용해주지 못하고, 그 훈련과정이라는 것이 없이 획일화된 상황이라고 한다면,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한식과 전통, 그 오해와 진실

주 : 방송 다큐멘터리가 음식을 다뤄온 경향에 대한 글을 쓰려고 자료를 찾고 있다. 난 그동안 관련 다큐에 다수 출연하고 대본도 썼다. 음식을 다뤄온 경향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모든 리포트를 끝내면 후반 10분 정도는 꼭 실험실로 향했다. 김치나 된장에 암 예방 성분이 있느냐 없느냐를 검사하기 위해서였다.

전통음식에 대해 과학적 검증이 개입된 것이다. 그것은 당시 영양학적으로 좋지 않은 음식과 비위생적인 음식에 대한 이미지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다. 이후 2000년대 본격적인 해외 여행이 이뤄지면서 나라 별 음식을 비교해줬다.

삼국 음식열전처럼 해외의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여행경험자가 많아지면서 이것도 식상해졌다. 더 이상의 소재를 찾기 어려워지자 이제는 내가 어릴 때 먹어본 잊을 수 없는 음식 맛 같은 고향의 맛, 어머니의 맛을 찾게 된다. 이른바 '로망'을 건드리고 있다.

황 : 오리진이 있다고 설정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기대로 보인다. 민족주의적 개념이 개입되어, 우리 음식은 좋은 것이고 우리 민족은 뛰어나다는 일종의 강박증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주 :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현재 전 세계가 어머니 맛을 지향하고 있다. 일본, 중국, 지중해 연안에 인접한 나라 모두 공통적으로 고향의 맛, 어머니 맛을 내세워 글로벌 경쟁을 추억이 깃든 로컬한 입맛으로 대응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장려하는 다양성에도 부합하고 슬로푸드 이미지에도 어울리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나라에서 유행인 '7080세대의 추억'이나 '나는 가수다'와 마찬가지로 로망에 열광하는 40~50대가 주된 소비층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황 : 그 점이 묘하게도 민족주의와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한식 앞에는 흔히 슬로 푸드, 로컬, 웰빙이란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것은 웰빙과 전혀 관련이 없다. 웰빙이 맞다면 왜 OECD국가에서 위장관련 질병 발생 1위인가? 성인병 관련 발병건수는 왜 이리도 많을까?

김치의 효능을 과장하는 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치가 과다한 염분을 함유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김치 먹으면 한때 사스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풍문이 사실처럼 유행했다. 최근에는 천일염이 혈압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을 좋게 포장하려고만 한다. 현재 우리가 먹는 한식은 슬로푸드와 전혀 관계 없다. 식당에서 내는 많은 음식의 재료가 공장에서 내는 공장 된장, 공장 간장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슬로푸드가 공장의 반대 개념으로 나온 것인데 이걸 차려놓고 슬로푸드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한국 음식의 더 큰 문제는 전국적으로 획일화되어 향토음식이란 개념이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주 : 한국의 반 이상의 인구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서 모든 것이 재 발신된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전국 음식을 한곳에서 먹게 됐다. 고향 음식을 찾는 서울 이주민들을 위해 외식의 소비시스템 역시 중앙집권화되어 있는 것이다. 지방에 가서 맛을 본다 해도 마찬가지다.

지방에도 대량생산 체제 내에 편입되지 않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본, 중국, 이탈리아나 프랑스 남부는 여전히 지역 색이 강하게 남아있는 것과 상반된다. 국내의 활발한 도시로의 이주에 따라 외식업은 80년대 이후 급속히 성장했고 그 속에서 슬로푸드가 관심을 끌게 됐다.

이제는 단순히 지방이 아닌 오지를 찾아, 식당 아닌 가정식 백반을 맛보는 <양희은의 시골밥상>이 화제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조리법도 가만히 살펴보면 60년대 식생활 개선 운동과 수없이 계량된 결과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식 세계화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

황 : 지역 음식을 다시 살리고 다양화시킬 수 있는 방법과 희망은 남아있다. 지역마다 여전히 중요한 식재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가 다양하게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6~7월이 되면 일본 사람들이 고흥의 하모(갯장어) 최상위급을 모두 걷어간다. 그들은 하모로 별 요리를 다 해먹지만 정작 고흥에 있는 갯장어 음식점에서 하는 요리는 늘 탕 아니면 구이뿐이다.

주 : 전문적인 식당 메뉴로 개발된 요리가 많지 않다는 말씀인가? 새로운 요리법을 개발하면 한국 고객들은 주방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준다. 젊은 친구들이 응용해서 만들면 퓨전이라고 하고 곧 전통이 아니라고 외면한다. 농림부에서도 자꾸 매달리는 것이 역사와 전통이다.

음식에 어떤 철학도 없이, 임금님이 이것을 드셨다는 것만 강조하려고 한다. 그 외에는 웰빙뿐이다.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는 역사 이야기는 아주 간단히 쓰라고 한다. 그보다 현재 공동체가 얼마나 공유하고 즐기는 문화인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한식 세계화보다 강력한 것은 음식문화의 경험

황 : 현재 우리가 먹는 음식이 고조선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는 생각이, 음식에 대한 가장 큰 오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근대에 새로운 조리 기구와 바뀐 식재료로 만들어진 새로운 조합이다. 조선시대에 먹던 음식과 지금 음식은 전혀 다르다고 보는 게 맞다. 또 우리가 지금 먹는 음식도 쉼없이 바뀐다.

주 : 맞는 말씀이다. 덧붙이자면, 그런 과정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서서히 변화되어 왔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에 대다수의 나라가 식품 유통의 세계화 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었다.

그 유통 맥락에서 전체가 바뀌었다. 우리나라도 쌀을 권장하기 시작하면서 1970년대 후반에는 거의 모든 농토에서 벼농사를 짓게 되었다. 음식을 문화로 본다면, 어느 곳에도 오리지널은 없다고 본다. 우리만의 음식은 없다고 보는 것이 가장 편하다. 다만 정부가 문화를 상품화 시킬 때 오리지널의 개념은 필요해진다.

황 : 그것이 바로 한식 세계화와 연결되는데, 한식 세계화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국가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음식을 이용한다면 정부가 실수한 것이라고 본다.

지금 단계에서는 음식보다 더욱 수월하게 국가 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음식이라는 것이 국가나 민족을 넘어 의도적으로 외국에 있는 누군가에게 먹인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주 : 실제 사례가 있다. 한국말을 잘하는 베트남의 학생이 가끔 연락을 해온다. 그는 종종 비빔밥 먹으면서도 마치 강요당하는 느낌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베트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음식은 이상하고 한국 음식이 최고라는 분위기 때문이란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게 혐한류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황 : 음식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주체가 되는 것이지 만들어서 먹이는 사람이 주체가 될 수 없다.

주 : 한국 사회가 가진 한계이기도 한데, 한식 세계화가 민간차원에서 논의가 되고 이뤄진다면 다원성을 가질 수 있겠지만 정부가 개입하게 되면 일종의 정치적인 쇼가 될 수 있다.

국가주의가 먹는 것에 개입할 때는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나 복지 차원의 지원이어야 한다. 일본 같은 경우 국가 돈이 개입될 때는 특산물을 통해 어떻게 농촌을 살릴 것인가였다. 도쿄 올림픽을 열어 돈이 풍부했던 60년대, 일본의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농어촌의 기반을 어떻게 다질 것인가였다. 그때 각 지역마다 특산물을 육성했다.

황 : 앞서 말했듯이 음식은 먹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한식 세계화를 하려면 그를 위한 조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조사하는 것은 외국에 있는 한식당 자료조사에 그친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한식당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가 아니라 현지인들의 음식에 대한 기본적인 관습을 알아야 한다. 소비자에 대한 조사가 먼저인 거다.

주 : 자연스럽게 해외에 정착한 동포들이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현지화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연변, 카자흐스탄의 로컬라이즈된 음식문화도 다 사라져버리고 없다.

황 : 한국음식에 대한 인식부터 버려야 한다. 특히 정책입안자와 연구자들이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전 의전담당자를 만나며 알게 된 것은 국빈들이 오면 마지막에 1인 신선로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남아 순방하면서 보니, 거기서도 메인요리로 신선로가 들어와서 놀랐다고 한다. 청와대 만찬의 정체성에 혼란이 온 것이다.

주 : 명나라나 청나라의 지배나 영향을 받은 곳은 모두 신선로를 먹었다.

황 : 하지만 이런 상징적인 요리가 한국 음식이 본래 가지고 있는 모습을 왜곡시킨다. 국내에서 실제로 신선로를 먹어본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의 특별한 무엇인 것처럼 주입을 시킨다.

한국음식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혹은 외국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좋은 농산물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 좋은 농산물, 아까 말한 갯장어, 송이, 냉동 꽃게까지 일본으로 모두 수출한다.

일제식민지 치하 때 어느 지역의 무엇이 맛있는지를 낱낱이 조사했다. 이런 식재료로 우리가 요리를 만들어 외국 사람들을 오게 만들어야 한다. 외국의 유명 음식 축제도 그렇게 한다.

바로 우리 식재료의 재발견이 필요하다. 송이가 있다고 하면 이것으로 가장 맛있게 할 수 있는 요리를 집중 개발해야 한다. 산지의 좋은 식재료를 가장 많은 소비자가 있는 서울에서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태국이 관광대국인 이유에는 세계적인 음식이 큰 몫을 차지한다. 여행 다니면서 먹는 것처럼 행복한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 일본음식점이 많아지는 이유도 일본에 가서 많이 먹어봤기 때문이다.

주 : 89년 코엑스에 생라멘 집이 생겼는데, 2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그런데 지금은 종류별로 하면서도 오리지널에 가깝게 요리하는 일식집이 굉장히 많아졌다. 관광인류학에서 '관광의 경험은 반드시 돌아오면 소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고 말한다. 최근 한류 드라마를 통한 일본에서의 한국 음식의 유행은 드라마 속 추억의 장소를 경험하면서 접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드라마 <환상의 커플>이 인기를 끌면서 극중 짜장면을 먹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지니, 하노이엔 짜장면 대신 짜파게티를 만들어주는 식당도 생겼다. 결국은 빈번한 접촉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먹게 된다. 그러나 한국에 오는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음식이 맛없다는 말을 한다.

그들이 좋은 경험을 안고 갈 수 있도록 전체적인 질의 향상이 우선이다. 사실상 현재 한국의 식재료 수준은 일본을 따라갈 수가 없다.

이런 부분은 또한 사적인 영역일 수 있으니 정부가 개입해야 할 부분은 최고 품질의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식당을 지원하고 북돋아 주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 체인점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국가주의가 평준화에 힘쓰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대담을 마치며

지금 우리에게 한식의 세계적 경쟁력보다 중요한 것은 '식량의 안정된 자급률'이라고 교수는 말했다. 쌀을 제외한 농산물은 20%대에 불과하다.

우리 땅에서 재료가 생산되지 않는다면 식재료의 신선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맛으로 직결된다. 아무리 훌륭한 레시피가 있더라도 모든 요리의 기본은 신선한 식재료에 있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는 책을 통해 늘 이점을 강조해왔다.

그는 특히 간장이나 된장, 소금 등 종류에 따라 장을 달리 사용해 맛을 내는 한국의 나물요리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섬세한 맛을 갖는다고 말했다. 음식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어우러진 4시간이 넘는 열띤 대담이었다.

예년보다 빨라진 추석이다. 비가 많이 내려 예의 풍성한 차례상을 기대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음식에 투영된 우리 모습을 성찰하여 바라볼 때다.



기획 및 정리 :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