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료 21억.550억 벌어… 26배 천정부지!

1982년 원년 선수 평균 연봉 1215만원

올 평균은 8704만원
출범때보다 7배이상 증가

돈 가치는 오히려 떨어져
서울아파트 전세도 못구해

PS도 출범땐 2억 불과
작년엔 57억 28.5배나

중계로 3억→230억
게임시장도 연매출 1000억
천문학적 규모로 발전

구기종목 중 대한민국 프로 1호인 프로야구.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가 6일 30번째 정규시즌을 마쳤다.

30시즌 동안 프로야구의 총 입장 관중은 정규시즌 기준 1억260만 명. 산술적으로 지난 30년 동안 국민 1명이 최소한 2번쯤 야구장에 갔다는 얘기다. 30년간 총 입장수입은 4,160억8,216만6,985원.

서른 살(而立) 장년이 되는 동안 프로야구는 질적,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특히 선수들의 연봉과 관중 입장수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었다. 하지만 돈의 가치를 따져보면 2011년 선수들의 수입이 30년 전인 1982년에 비해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박철순 첫 연봉 2400만원

"프로야구 선수라면 연봉이 아파트 한 채 값은 돼야지." 프로야구가 닻을 올릴 때 유행했던 말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할 때만 해도 직업의 안정성과 흥행에 대해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1, 2년 후 프로야구가 문을 닫을 수 있을 거라는 우려도 컸다. 실업야구에서 몸담았던 선수들 중 상당수가 프로야구 참여를 거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프로야구 원년 선수들(141명)의 평균 연봉은 1,215만원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선수들은 월봉으로 평균 120만원(프로야구 선수는 10개월에 나눠서 연봉을 지급함)을 받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셈법은 이랬다. 1981년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서 활약하던 '홈런왕' 김봉연(해태)은 연봉과 상여금을 합쳐 1년에 480만원을 벌었다.

그런데 정년을 보장할 수 없는 직업 특성상 10년 동안 벌 돈을 1년에 챙겨줘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에 따라 미국프로야구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던 박철순(OB)과 김재박(MBC)은 입단 때 연봉 2,400만원을 받았다. 연봉 2,400만원짜리 선수는 박철순과 김재박 2명뿐이었다. 특급으로 분류됐던 김봉연도 1,800만원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당시 2,400만원이면 서울 강남의 99.1㎡(30평)짜리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원년에 코치였던 한 전직 프로야구 감독은 "1982년에 받은 연봉으로 부동산 재테크를 잘한 덕분에 노년 걱정은 크게 안 한다"고 털어놓았다.

올해 프로야구 선수들(484명)의 평균 연봉은 8,704만원이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7배 이상 증가한 금액이다. '꿈의 연봉'이라는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도 100명이나 된다. 최고 연봉은 7억원의 김동주(두산).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선수 숫자가 늘고, 개개인의 연봉도 오르면서 구단의 연봉 총액도 크게 증가했다. 원년에는 6개 구단 중 MBC의 연봉 총액이 3억3,400만원으로 최고였으나, 올해는 59억2,900만원을 쓰는 SK가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돈의 가치를 보면 30년 전에 비해 선수들의 수입이 증가했다고 볼 수만도 없다. 30년 전에는 평균 연봉의 2배인 2,400만원만 있으면 서울 강남에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평균 연봉의 2배인 1억5,000만원을 가지고는 구입은커녕 서울 시내에서 아파트 전세도 구하기 쉽지 않다.

경제 파급효과 1조1837억

6개 구단 체제로 출범했던 1982년 관중 수는 143만8,000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592만8,626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사상 최초로 600만 명을 넘어 680만 명에 이르렀다.

한양대 스포츠산업 마케팅센터가 국민체육진흥공단에 의뢰해 만든 '한국 프로야구 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따르면 지난해 프로야구의 국내 경제 파급효과는 1조1,837억원에 이르렀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프로야구 8개 구단 관중은 야구장에서 약 4,500억원을 지출했다. 또 생산파급효과는 8,000억원 그리고 1만2,000명의 고용유발효과가 창출됐다.

프로야구의 입장수입은 1982년 21억원이었으나 지난해 412억원으로 19배가 늘었고, 올해는 550억원에 이르렀다. 또 '가을잔치'로 불리는 포스트시즌은 원년에 입장수입이 2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57억원으로 무려 28.5배가 증가했다.

입장권은 일반석 기준 원년에는 서울 3,000원, 지방 2,000원이었으나 올해는 7,000원에서 1만원 선이다. LG의 홈인 잠실구장 프리미엄석은 7만원이고, SK의 홈인 인천 문학구장에서는 30만원(8인실), 50만원(16인실)에 이르는 스카이 박스도 있다.

프로야구를 보러 간 관중 1명은 야구장에서 얼마나 쓸까? 지난해를 기준으로 1인당 지출비용은 ▲입장권 ▲간식비 ▲응원용품 구입비 등을 더해 3만6,500원이었고, 올해는 정확한 집계는 이뤄지지 않았으나 4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야구중계로도 77배 상승

프로야구 중계료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원년에는 중계료가 3억원에 불과했으나 1989년에는 10억원, 1995년에는 30억원으로 뛰었고 2000년에는 5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각종 중계료가 180억원까지 치솟았고, 올해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 뉴미디어 중계료 50억원을 더해 총액 230억원이다. 프로야구 중계료는 앞으로도 매년 급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프로야구를 소재로 하는 게임시장도 천문학적인 규모로 발전했다. CJ E&M의 '마구마구', 네오위즈게임즈의 '슬러거' 등 프로야구단 엠블럼과 선수 초상권 등을 사용하는 야구게임의 연 매출규모는 1,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업계에서는 내년에 2군에 참가하는 9구단 NC의 모기업인 NC소프트가 게임 개발을 선언한 만큼, 2012년 이후로는 KBO와 선수협회에 지급하는 각종 라이선스 비용만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종범 첫 계약금 아파트 한 채 값!

'한국야구의 아이콘' 이종범(41ㆍKIA)의 계약금도 아파트 한 채 값이 기준이었다.

광주일고를 졸업한 뒤 건국대에 진학한 이종범은 군계일학의 실력을 뽐내며 팀을 대학 정상으로 이끌었다. 당시 윤동균 OB 감독은 "이종범은 당장 일본에 가도 통할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KIA 전신 해태 입단이 예정된 이종범은 건국대 4학년이던 1992년 10월 초 구단 스카우트 실무자와 협상 테이블을 차렸다. 협상 테이블에는 이종범과 함께 보호자 자격으로 집안 어른도 동석했다.

식사 후 이종범 측은 우회적으로 '한 장(1억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살림이 빠듯한 해태에 1억원은 너무 큰돈이었다. 스카우트 실무자는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젊은 나이에 집 한 채 장만하면 성공한 것 아닙니까? 아파트 한 채로 하시죠"라고 제안했다.

당초 1억원을 바라던 이종범 측 관계자도 스카우트 실무자의 설명을 들은 뒤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양측은 일사천리로 계약에 합의했고, 이종범의 계약은 7,000만원으로 결정됐다. 당시 광주 시내 99.1㎡짜리 아파트 한 채 값이 7,000만원 안팎이었다.

이종범과 계약 성사를 이끌어 냈던 스카우트 관계자는 "나중에 알았지만 구단 내부적으로는 최대 1억원까지 준비하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종범 측에서 '아파트 한 채라면 그래도 괜찮다'고 해서 7,000만원에 도장을 찍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종범과 함께 대졸신인 중 월척이었던 투수 이상훈은 LG와 계약금 1억8,800만원에 계약서를 작성했다. 서울과 지방의 물가차이가 반영됐음은 물론이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