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박지원 진검승부

"당하고 있을수만 없다"
박태규 리스트 관련 공격에
정면 충돌 불사 의지

막강한 정보력 추종 불허
폭발력 강한 빅카드 감춰 놓고
때만 기다리는 중

마침내 여권 '실세 중 실세'와 야당의 최고 저격수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서로를 향해 일전을 겨룬 것. 이 보기 드문 장면은 공교롭게 만인이 지켜보는 국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촉발돼 흥미와 관심을 배가시키고 있다.

그간 직접 충돌 자제

그간 이상득 의원은 '몸통'이니 '실세'니 하는 간접화법의 대상으로 수없이 오르내렸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노련한 박지원 전 원내대표 역시 '이상득발' 폭발력을 의식해 직접 공격하기보단 우회적으로 이 의원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곤 했다. 그런데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직접화법을 구사하면서 고수들의 전쟁이 서막을 연 양상이다.

박 전 원내대표는 지난 4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로 알려진 박태규씨와 관련된 이른바 '박태규 리스트'를 거론하면서 이상득 의원 등 현 정권 실세들의 이름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박태규씨는 소망교회 30년 신도로 장로이고 부인은 소망교회 권사다. 그래서 교회가 끝나면 (소망교회 신도인) 이상득 의원과 자주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상득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 이 의원은 이튿날 성명을 내 박태규씨와의 관련설을 부인하면서 "이 같은 일이 재발할 경우에는 동료의원이라 할지라도 법적인 대응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박 전 원내대표를 겨냥했다.

이 의원이 항전의 자세로 나온 데는 박 전 원내대표가 같은 날 대검찰청 국감에서 부실화된 부산저축은행에 포스텍 등이 거액을 출자한 뒤에는 포항지역 실세 정치인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이 의원을 자극한 측면도 없지 않다.

현 정부 들어 '상왕'으로 불렸던 이 의원은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면서 야당뿐 아니라 일부 여당 인사들에서도 권력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의원은 직접 대응을 삼가해 왔지만, 이번 박 전 원내대표의 폭로에는 민감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야 안팎에서는 상대가 박지원 전 원내대표라는 '최고의 저격수'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호남의 한 중진 의원은 박 전 원내대표에 대해 "국민의 정부 시절 쌓은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에다 권력형 게이트의 메커니즘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탁월하다"고 평했다. 박 전 원내대표와 저축은행비리진상조사단에서 활동하는 한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정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면서 '마당발 네트워크'에 감탄할 뿐이라고 말했다.

朴 대여공세 선봉장

실제로 박 전 원내대표는 2009년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를 정확한 자료로 낙마시킨 데 이어 지난해 8‧8개각 때는 인사청문회에서 김태호 총리,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를 줄줄이 낙마시켜 7‧28 재‧보선 후 잃었던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는데 선봉장이 됐다. 박 전 원내대표의 정보력은 청와대는 물론, 여당도 떨만한 정도여서 이 의원이 그의 창에 긴장할만 하다.

박 전 원내대표가 이상득 의원을 겨냥한 것은 누구보다 권력의 생리와 정치적 파장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사실 박 전 원내대표는 이 의원에게 예리한 창을 여러 차례 겨눴다. 올해만 해도 지난 2월 2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대통령 형님'인 이 의원에게 정계 은퇴를 촉구해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박 전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민간인 사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는 사건의 '몸통'으로 이 의원을 지목하면서 '대포폰 게이트'로 확전시켜 이 의원과 여당을 궁지로 몰고 갔다. 그해 연말에는 '형님 예산'을 부각시켜 이 의원을 비롯한 여당이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게 했다.

박 전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뒤 5월 30일 정치권과 사회의 최대 이슈인 저축은행비리 진상조사단 위원장으로 복귀하면서 예리한 창을 더욱 벼려왔다. 이상득 의원은 당연히 중요한 타깃이다.

지난 7월 이 의원이 '영포(영일,포항 출신모임) 게이트' 배후로 자신을 거론한 박 원내대표를 겨냥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자 "'영포대군'은 집안단속부터 먼저 하라"고 받아쳤다. 이어 "신한금융 라응찬 회장의 50억 비자금을 영포라인이 봐주고 있다"고 주장해 이 의원 측을 압박하는 등 전략가의 면모를 보였다.

"왜 나만 잡으려 하나"

이상득-박지원의 고수 대결은 외견상 박 전 원내대표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이 의원은 방어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의원도 직간접으로 '실세'의 힘을 과시한 흔적이 엿보인다.

한상대 검찰총장 임명이 그러한 예라는 시각이 있다. 한 총장을 검찰 수장에 앉힌 것은 이명박 정부의 임기말을 위한 이 대통령의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한편에선 이상득 의원의 입김이 적잖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즉 이 의원과 한 총장의 장인이 해병대 동기로 이 의원이 한 총장 임명에 동생인 이 대통령에게 한마디쯤 거들지 않았겠느냐 하는 추정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지난 6일 법무부 국정감사 보충질의를 하면서 토로한 내용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이명박 정부에서 박지원을 그렇게 잡으려고 하는가. 태광은 내가 몸통이라고 했지만 사환 하나도 모르고, 한화, 씨앤그룹도 조사하면서 '박지원만 불어라'고 했고, 보해저축은행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중수부에서 애경그룹 전부회장을 불러 똑같이 '박지원과 박태규의 관계를 불어라'고 했다."

이는 검찰이 여러 사건에서 박 전 원내대표 관련성을 찾는데 집착한 것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수사가 검찰만의 판단이 아닌 외부의 영향을 받은 인상을 준다. 여기에 이 의원의 그림자가 걸쳐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의원이 기대하는 바와 겹쳐지는 것은 분명하다.

여권 전체 겨냥한 칼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서는 이 의원과 박 전 원내대표 간 '진검승부'가 총선, 대선으로 이어지는 길목인 10‧26 재‧보궐 선거 이후에 본격 펼쳐질 것으로 전망한다. 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권이 크고 작게 재편될 가능성이 있고, 박 전 원내대표가 차기 민주당 대표로 유력한 상황이라는 배경에서다.

민주당 일부에서는 박 전 원내대표가 여권을 향한 정말 '큰 카드'는 아직 꺼내지 않았다고 말한다. 호남의 한 중진 의원은 "부산저축은행 사태의 핵심 인사들 중 광주 출신들이 이미 박 전 대표에게 많은 얘기를 전한 것으로 안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도 박 전 대표를 만났다. 그럼에도 폭발력 있는 카드가 안 나오는 것은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때'와 관련해 박 전 원내대표가 당 대표가 되거나 총선에 즈음해서 일거라고 내다봤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들이 전하는 '박지원 카드'에는 폭발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부산저축은행 호남 출신 임원들과 여권 중진들과의 거래 내역이다. 예컨대 저축은행에서 거액을 인출하는 조건으로 액수의 30~40%를 여권 중진에게 건넸다는 내용 등이다.

박 전 원내대표와 가까운 호남의 한 중진은 "지난 7월 저축은행 사태 관련 증인 채택을 두고 여야가 신경전을 벌일 때 박 전 대표가 증인으로 나가겠다고 한 데는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자신감에는 여권을 압박할 카드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귀띔했다.

그러고 보면 박 전 원내대표가 숨기고 있는 창은 이상득 의원을 넘어 이 대통령을 포함한 여권 전체를 겨냥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상득 의원을 비롯한 여권도 눈엣가시 같은 박 전 원내대표를 어떻게든 제거하려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미국 방문을 앞두고 청와대 핵심 참모와 검찰, 국정원 수뇌부들과 회의를 갖고 이상득 의원에 대한 공세에 적극 대처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저격수인 박지원 전 원내대표에 대한 역공도 내다볼 수 있다.

이래저래 이상득-박지원의 진검승부는 더욱 볼만해지는 정국이다. 10‧26 선거를 전후해 정치권 지형이 가팔라지면 이들의 진검승부는 차원을 달리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어떤 승부가 펼쳐지더라도 이상득 의원과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그 중심에 있을 것이 분명하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