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곡동 땅, 그것이 궁금하다의문의 본질은 '매입 과정' 아니라 '진짜 땅주인이 누구냐' 하는 것인근 그린벨트 해제 염두에 두고 싼값 제공 가능성계약 완료 직후 매도인 美로 떠나… 도피성 외유 여부 관심

이명박대통령이 퇴임 후 사저 예정지로 매입한 서울 내곡동 20-17번지 현장.
“뉴스를 보면 이명박 대통령 사저와 관련해 여러 얘기가 나오는데 사건의 본질은 그게 아니고요, 땅을 헐값에 매입했느니, 국고로 대통령 아들의 돈을 대신 냈느니, 또 무슨 무슨 법에 위반했느니 하는데 핵심은 다른 데 있어요.”

이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할 사저 터와 청와대 경호시설 부지 매입을 둘러싼 의혹이 쏟아지는 가운데 1990년대 정부 고위직과 대기업 임원을 지낸 K(71)씨는 언론 보도와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내곡동 땅’ 사건의 본질을 ‘매입’ 과정에 있는 게 아니라 ‘진짜 주인’에 있다고 말했다. 땅의 실제 소유자가 등기부상의 인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기업)이라는 것.


대기업 소유 가능성

K씨는 90년대 대기업들이 강남 일대의 땅을 송두리째 사들일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문제의 내곡동 땅도 그 속에 포함돼 있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렇다면 그 대기업이 등기이전을 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청와대가 땅 매입시 대통령 사저가 들어설 장소라는 점을 감추기 위해 아들 시형씨 이름을 이용한 것과 유사하다. 모 대기업이 그 지역에 땅을 대거 매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소문이 크게 날 것이고, 당초의 매입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민주당 백재현(왼쪽부터), 이윤석, 이석현, 홍영표 의원 등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내곡동 이명박 대통령의 사저 건립용 부지를 직접 방문해 구입 경위 등을 검증하고 있다. 연합뉴스
40년 가까이 강남에서 대기업 부동산 관련 심부름을 해온 J(67)씨도 K씨와 비슷한 견해를 나타냈다. “아마 ‘이면계약’이 있을 겁니다. 문제의 땅의 실제 주인은 등기부에 나타나지 않는 ‘숨은 사람’일 겁니다.”


'경호 목적' 아니다

이면계약을 하면서까지 대통령 사저를 내곡동으로 유치한 목적은 자명하다. 부근 땅값 상승을 기대한 것이다. 대통령 사저가 들어설 경우 인근 지역의 그린벨트 해제나 대규모 개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럴 경우 보유한 땅으로부터 엄청난 수익을 내다볼 수 있다.

그는 대기업이 기업 소유 목적의 부동산을 대거 사들일 때 실명, 또는 내부 임원의 가차명으로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소위 ‘땅 장사’를 하려고 할 때는 땅 투기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면계약’ 수법을 사용한다고 귀띔했다.

땅의 실소유자가 따로 있고, 이면계약이라는 관점에서 ‘내곡동 땅’ 의혹들을 보면 새로운 접근이 가능해진다.

임태희 대통령 실장(오른쪽)이 지난 10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할 내곡동 사저의 땅 매입 경위와 관련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효재 정무수석, 백용호 정책실장, 임태희 실장.
우선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후 사저를 논현동에서 내곡동으로 바꾼 이유. 청와대는 논현동 자택 주변 땅값이 비싸 경호시설 부지 확보가 힘들고, 경호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국회에서는 논현동 사저를 기준으로 경호시설 부지 매입비로 40억원 + 예비비 30억원이 확보됐다. 총 70억원이면 왠만한 경호시설 마련이 가능하다. 또 기존의 논현동 쪽이 숲이 있는 외진 내곡동의 사저 예정지보다 경호가 쉬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향후 개발이익 기대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사저를 논현동에서 내곡동으로 바꾼 배경에는 또 다른, 숨어있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내곡동 땅 주변을 이면계약으로 대거 매입한 기업이 향후 개발이익을 기대하고 싼값으로, 혹은 거의 무상으로 그 땅을 제공했다면 사저 부지 이전은 의외로 쉬울 수 있다. 소문 내지 않고 그만한 넓이의 땅을 구하기가 현실적으로 서울 인근에서 찾기 쉽지 않을 터이니까.

다음은 헐값 매입 의혹.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가 사들인 땅은 한정식집 ‘수정’이 있던 내곡동 20-17 필지 330m²(100평‧대지, 건물 포함) 등으로 11억2,000만원이 들었다. 하지만 이 지역 공시지가는 12억8,697만원으로 1억6,697만원 낮게 산 셈이다.

여타 필지도 마찬가지다. 내곡동의 부동산 관계자는 “한정식집 건물은 평(3.3m²)당 1,500만원은 간다”며 “도로 건너 마주하고 있는 4가구는 평 당 1,300만~1,400만원선”이라고 말해 시형씨가 평균 시가보다 싸게 부지를 매입했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20-17 필지 3.3m²당 1,500만원이라는 가격은 부르는 가격이지 실제 거래되는 가격이 아니어서 싸게 산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평당 1,500만원에도 팔지 않겠다는 160-27번지, 평당 2,000만원도 더 요구하는 164-2번지 등이 있고, 정부를 상대로 계약할 경우 가격을 높게 부르는 것이 보통이어서 시형씨의 매매는 실제 매매가격보다 낮게 계약서를 만들었다는 ‘다운계약서’ 의혹이 따른다.

반면 청와대 경호처는 사저 경호실을 짓기 위해 사저 터 일부와 시형씨가 사들인 땅 주변 밭 등 모두 2,143m²(648평)를 42억8,000만원에 매입했다. 공시지가보다 2~4배 가량 비싸게 매입한 셈이다. 야당은 “아들은 공시지가보다 싸게 매입하고 대통령실은 비싸게 산 것은 국가예산에서 아들의 저가 비용을 부담한 의혹이 짙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측은 “시형씨 땅은 공시지가가 시가에 가까운 대지 부분이 많아 상대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며 “경호처가 산 부지는 밭이라고 해도 건물 건축이 가능한 대지와 접해 있어 실제 거래가는 높다”고 해명했다.


돈 흐름 추적하면 규명

이와관련,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언론과의 회견에서 “해당 부지를 (이시형과 청와대가) 54억원에 매입을 했는데 실제로는 (매도자가) 40억에 내놨다”며 “경호실 부지를 42억8,000만원에 매입했다면, 그 돈으로 사저및 경호부지 전체를 매입한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시형씨가 11억2,000만원에 매입했다고 하는데 이는 거짓말이고, 실제로 지불한 돈이 없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두 가지 가정이 가능하다. 이시형씨측이 실제로 한푼도 내지 않고 가격 조작을 통해 국가예산으로 전체 부지를 매입했을 가능성과, 또 하나는 땅 소유주 뒤에 숨어 있는 실소유주(기업)가 이 대통령 부담분의 땅을 무상으로 건넸을 가능성이다. 박지원 의원은 앞의 가능성을, K씨는 뒤의 가능성을 주장하는 셈이다.

이 문제는 돈을 흐름을 추적하면 금방 나올 것이다. 이시형씨가 농협쪽에서 대출받은 돈이 실제 소유자인 유씨로 갔고, 유씨가 이 돈을 정상적으로 활용했다면 박의원이나 K씨의 주장은 의미가 없다.

국고에서 나온 돈 42억8,000만원도 같은 방법으로 추적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매수인(이시형·청와대 경호처) 쪽 거래를 중개한 서울 서초동 T부동산 대표가 “양도세 문제 때문에 매도인 쪽 부동산에서 어떤 요청이 있었다”며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더 이상 말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그 ‘복잡한 사정’이 거래액을 줄여 세금을 더 내려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등기부상 매도인과 실제 주인 간의 복잡한 관계를 정리하려 했던 것인 지는 알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매도인과 매수인 간의 거래 과정도 수상쩍은 부분이 있다. 내곡동 땅 계약은 4차례 나눠 이뤄졌다. 이 거래를 중개한 T부동산에 따르면 이시형씨가 먼저(5월13일) 계약서를 작성하고, 나중에 청와대(5월 25일), 이시형씨(6월 15일), 청와대(6월 20일) 순으로 계약했다고 한다. 이시형씨는 6월 15일 경호실과 공동으로 구입한 세 필지 중 마지막 필지 토지 매입이 끝나자마자 토지담보대출로 돈을 빌리는 등 청와대와 사전교감을 통한 매입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농후하다. 무언가 서류상 격식을 맞추려는 어색한 움직임이다.


국정조사 쟁점화 추진

또한 매도인 유씨는 건물 1필지와 토지 8필지 중 마지막 토지 필지와 계약이 완료된 6월 15일 직후 미국에 갔다. 부동산 중개업자에 따르면 유씨는 “미국에 있는 딸과 살고 싶어 갔다”고 한다. 그러나 유씨의 딸은 서울 J대 의대를 다니고 있어 유씨가 고의적으로 계약 체결 후 해외로 도피한 정황으로 볼 수도 있다. 유씨가 과연 내곡동 땅의 실제 주인인가에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의 ‘내곡동 땅’은 민주당이 13일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결의하면서 뜨거운 쟁점이 될 전망이다. 내곡동 땅을 둘러싼 의혹들이 얼마나 풀릴 지, 아울러 내곡동 땅의 ‘진짜 주인’이 실재하는 지 여부도 밝혀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