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성적 매력 원천지 립스틱(2)

인류 문명 발상지 수메르 지역에서 5,000년 전 입술 연지(rouge)가 발견됐을 만큼 립스틱의 역사는 유구하고 얽힌 사연도 무궁무진하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금속 용기형 립스틱은 1차 대전 중인 1915년 미국 코네티컷주에 위치한 스코빌사가 처음 생산을 시작하면서 자동차, 영화, 밀주에 이어 미국 4대 산업으로 부상한다. 2차 대전 당시 가장 많이 팔려나간 것이 립스틱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바르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에게 열정을 불러 일으켜 준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서 미국 제조업체에서는 여성 탈의실에 일부러 립스틱을 배치하기도 했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은 ‘경기 침체나 사회가 불안에 빠졌을 때 유독 립스틱 소비가 늘어난다’는 ‘립스틱 효과’를 주장하는데, 붉은 색은 신진대사뿐 아니라 인간에게 적극적인 행동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립스틱의 붉은 색은 보기만 해도 신진대사가 13% 좋아지고, 빨간 불빛을 보여준 뒤 악력을 재면 20% 강해진다며 붉은색의 심리적 효과를 설명한다.

책 ‘립스틱’을 쓴 제시카 폴링스턴은 여권주의 시각으로 립스틱 효과를 분석했다.

“여자들은 입을 무기로 바깥 세상과의 전투에 돌입한다. 옛날 사람들은 뺨이나 입술에 빨간 줄을 그려 넣어 악마를 물리쳤다. 원더 우먼은 행동을 개시할 때마다 립스틱을 발랐다. 출근하기 전 립스틱을 바르고 있노라면 나도 그런 태세를 갖추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난 1970년대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원더 우먼> 시리즈(린다 카터 주연)에서 악한들의 위협 속에서 지구를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원더 우먼이 출동하기 전 립스틱을 바르며 전의(戰意)를 가다듬는다.

남긴 작품마다 모두 영화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 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1971)는 가까운 미래 런던을 배경으로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청년 알렉스의 행적을 보여주고 있다. 살인, 강간, 마약 흡입 등에 빠진 10대 청소년들의 일탈된 행적을 더욱 실감나게 전달 시켰던 장치중의 하나가 바로 한쪽 눈에만 속눈썹을 부치고 립스틱을 한 뒤 꼼짝하지 않고 정면을 쏘아보는 알렉스(말콤 맥도웰 분)의 모습이었다.

무성 시대 최고 스타 메리 픽포드는 1920년대 후반 유성 영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영화에 소리를 첨가하는 것은 밀로의 비너스 조각에 립스틱을 칠하는 것과 같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가 영화를 통해 육감적인 매력을 강조했다면, 또다른 스타 오드리 헵번은 청순미와 보호 본능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가 뉴욕 상류사회에 편입하려고 애쓰는 매력적인 여성 홀리역을 맡은 <티파니에서 아침을 Breakfast at Tiffany's>(1961)과, 거리의 꽃파는 소녀에서 기품 있는 숙녀로 변신한다는 <마이 페어 레이디 My Fair Lady>(1964)에서 보여준 의상과 향수, 그리고 립스틱은 뭇 여성들이 추앙하는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립스틱은 영화속에서 담배와 함께 어우러지면 더욱 섹시미를 내뿜는다. <원초적 본능>에서 형사 마이클 더글라스에게 취조를 당하는 샤론 스톤은 붉은 입술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성적 매력을 한껏 드러낸 바 있다.

<인사동 스캔들>(2009)에서 갤러리 회장 배태진(엄정화 분)은 다크 서클을 앞세운 짙은 메이크업과 함께 짙은 아이라인, 빨간 립스틱 등의 메이크 업을 한 채 담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선보였다. 박시연도 <마린보이>에서 천수를 마린보이로 조련하는 강사장(조재현 분)의 계획을 방해하는 유리역를 위해 과감한 노출과 붉은 립스틱, 그리고 담배 연기를 보여주었다.

<타짜>의 김혜수, <범죄의 재구성>의 염정아를 비롯해 의 킴 베신저 등은 립스틱과 담배를 동시에 내세워 남성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연기를 펼쳤다.

그뿐인가.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1930년대 할리우드 섹시 스타 매 웨스트의 입술 라인을 모방한 ‘매 웨스트 소파’를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냈다.

팝 아트 창시자인 앤디 워홀은 라이자 미넬리, 잉그리드 버그만, 그레타 가르보,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디 갈란드 등의 입술에 립스틱을 짙게 바른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는 립스틱에 대한 찬가를 담은 단행본 ‘입술’을 출간한 바 있다.

이경기(영화 칼럼니스트 www.daily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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