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사계리 해안 , 60cm x 351cm, 한지에 목판, 2009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沙係里) 해안… 어찌하여 화가 김억은 자신의 목판화 속으로 이 지역의 국토 미(美)를 옮겨 놓았을까. 흔히 경치 좋은 곳을 가리켜 '그림과 같다'고 하지만 시공(時空)이 열려있는 현장의 경치와 그림으로 옮겨놓은 격자(格子) 의 경치는 다를 수 밖에 없고, 더구나 그림이 담아내는 것은 풍경만은 아니다. 작가정신을 발휘하여 형상화한 메시지 전달의 기호, 어쩌면 암호가 저장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사계리 해안을 목각한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화가에게 직접 묻고 싶지만 "그림을 보고 알아내라" 하는 대답만 들을 듯 하여 다시 꼼꼼히 그림을 훑는다.

북제주의 바다와 남제주의 바다는 질감이 다르다고 느끼게 되는데 육지로 연결되는 방향과 태평양으로 틔어 있는 방향의 차이에서 전자가 해(海)라면 후자는 양(洋)의 볼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돋이의 동제주 바다와 해넘이의 서제주 바다가 아울러 다른 풍광의 묘미를 연출해 준다.

사계리 해안은 제주 섬 전체로 살폈을 적에 남서쪽 끝머리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를테면 양수 겹장이다. 제주 남쪽 바다와 서쪽 바다의 특성을 함께 담아내고 있으려니, 한라산이 북풍을 막아주어 국토의 가장 온난한 지역이 되고 형제섬인 가파도와 마라도를 포괄하여 서쪽의 중국과 남쪽의 일본을 일의대수(一衣帶水)처럼 포옹하려고 한다. 일단은 남쪽 나라 별천지라고 인정해주고 싶은데, 여기에 엉뚱한 궁금증을 제출해본다. 서귀포(西歸浦) 시내에서 다시 서쪽으로 돌아나가는 모퉁이 해안, 귀퉁이 해안 사계리는 알고 있을까. 서귀포는 왜 서쪽으로 돌아가는 포구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는지, 그 유래에 관해서…

중국 진시황이 불로초를 얻으려고 파견한 서불(徐市)이 지나간 포구라 해서 이런 지명이 생겨났다는 사대주의 담론의 전설은 그냥 묵살해 버리기로 하고, 혹시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정토(西方淨土)'의 상징 코드와 연관되는 것은 아닐지? 그러함에도 서귀(西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냥 비밀 코드로 감춰두어야 할 일이기는 하다.

미술작품 '서귀포 사계리 해안'은 60cm * 251cm의 크기이고, 한지에 목판 인쇄로 2009년에 제작되었는데 이런 제목과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점들이 있다. 먼저 그림 속의 사계리 해안은 바다 바깥 쪽에서 바라본 풍광으로 목판되고 있는데 이러한 광각(廣角)의 시각을 현지 방문자들이 실제로는 가져보기 힘들다는 사실부터 지적하게 된다. 더구나 카메라 렌즈와는 달리 화가의 시선은 단순한 원근법이나 투시법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고, 심원법-부감법-고원법을 적절히 응용하는 평원법의 전개로 공간 구성을 확대하고 심화시킨다. 그리하여 사계리 해안은 바다로부터 두둥실 떠오르려는 듯한 환각을 갖게 하는데 화가가 이런 판타지를 실제로 경험해 보았을 듯 싶기도 하다.

서귀포 사계리 해안 중 송악산.
서쪽의 송악산과 동쪽의 산방산이 양 날개 구실을 하고 침식 해안도로(올레길 10코스 지정)가 선명하게 사계리 인문 환경을 드러내도록 하는데 멀리 뒤쪽으로 제주 특유의 오름(구릉)들이 다사롭고 아늑하고 포근하기 이를 데 없다. 니체가 말하는 '지복(至福)의 섬' 이미지를 조성해낸다. 마냥 평화롭다. 그냥 행복하다.

서귀포 신시가지, 중문관광단지, 외돌개, 쇠소깍 돈내코 등의 서귀포 해안 70리는 올레 명품 코스로 더욱 손님들을 부르지만 그에 따르는 소음도 있고 분노도 없지 않다. 산방산에서 송악산으로 이어지는 사계리 해안도 지난 시절의 역사 고난 사연과 함께 쌓인 모래(沙)의 관계(關係)가 복잡하게 어질러지고 있으나 우리는 열망한다. 김억 목판화가 열망하는 바의 사계리 해안을…


서귀포 사계리 해안 중 산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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