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옥 설렁탕
1950년 한국전쟁 무렵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문을 연 집들이 이른바 '2세대 설렁탕집'들이다. 1980년의 국민소득은 1천6백 달러였다.

2세대 설렁탕집들은 절대빈곤기를 지나면서 생긴 음식점들이다. '많이 주는 것'이 최선인 시기에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맛집'으로 등록한 집들이다. 대부분의 설렁탕집들이 간판의 끝에 일본식 표기인 '옥屋'을 붙인 것도 이채롭다. 아직은 광복 전의 '이문옥(이문설농탕)' '잼배옥' '옥천옥' 같은 일제강점기의 표기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서울 주교동의 '보건옥' 명동의 '미성옥'과 '풍년옥' 서울 역 뒤 '중림장' 도봉구의 '무수옥' 마포의 과 관악구의 '삼미옥' 등이 1950~80년까지 생긴 설렁탕 맛집들이다.

서울2세대 설렁탕집

은 1952년 개업했다. 나이답게, 수육 등의 밑반찬으로 나오는 '지라'가 이집의 업력을 말한다. 서울의 설렁탕 노포들이 모두 설렁탕의 고기로 사용하는 '지라'는 '서울 설렁탕 역사'를 보여주는 징표인 셈이다. 노포치고는 국물이 맑다. 메뉴도 설렁탕, 수육 등으로 아주 간단하다.

'문화옥'
'보건옥'은 서울식 불고기로도 유명한 집이다. 설렁탕 전문점은 아니고 불고기, 김치찌개, 설렁탕 등을 '원하는 대로' 내놓는 실비집이다. 여전히 손님이 주문하면 그때부터 불고기 양념을 시작한다. 음식 내공은 만만치 않다.

'미성옥'은 명동에서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설렁탕 전문점이다. 한우를 사용한다고 써 붙였고, 메뉴도 설렁탕과 수육 딸랑 두 가지다. 맛은 수준급이다. 미리 소면과 파를 넣어서 내온다. 국물은 비교적 맑은 편이다.

'풍년옥'은 '미성옥'보다 10년 이상 업력이 짧다. 메뉴는 설렁탕, 수육에 머리고기 정도가 더 있다. 국물이 맑은 편이고 메뉴도 퍽 담백하다. 곰탕의 맑은 국물에 가깝다.

서울 역 옆의 염천교를 지나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예전 골목이 있다. 밤에 가면 골목도 '무협지스럽게' 음침하고, 골목 불빛도 붉으스럼하다. 이름도 무협지처럼(?) '중림장'이고 음식도 상당히 강하고 무겁다. 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나고 맛도 무거운 편이다. 특이하게 설렁탕의 고기를 찢어서 준다. 40년 이상 된 노포이다. 설렁탕, 도가니탕, 수육 등을 내놓는다.

'무수옥'은 바로 곁에 정육점이 붙어 있으니 설렁탕 전문점이라기보다 고기집인데 식사메뉴로 설렁탕도 팔고 육회, 육회비빔밥도 내놓는다. 업력이 30년을 넘겼으니 비교적 외진 도봉역 부근에서는 이미 동네 맛집을 넘어 섰다. 저녁 늦은 시간에는 가끔 설렁탕이 다 팔려서 억지춘향으로 육회비빔밥을 먹기도 한다.

'마포옥'
지금 서강대교의 '서강'은 '서호西湖'라고도 했다. 마포, 서강 일대를 이르는 말이다. 동호대교의 '동호東湖'가 있다면 서쪽에는 '서호'가 있다. 마포는 서호의 중심지역이다.

지금도 마포먹자골목이 유명하고 또 가든 호텔 뒤편으로 유명한 맛집들이 많은 것은 마포가 바로 교통과 물산의 허브였기 때문이다.

마포의 은 신축, 확장하면서 비교적 넓어졌다. 1층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2층으로 연결된다. 재미있는 점은 그냥 '설렁탕'이 아니라 '양지설렁탕' '차돌설렁탕'이라는 메뉴가 있다는 점이다. 가격이 조금 센 편이다.

마포 가든 호텔 뒤편의 은 보다는 연륜이 짧지만 비교적 오래된 집이다. '설농雪濃' 혹은 '설롱'이란 이름은 눈처럼 뽀얗다, 눈처럼 흰색깔이 짙다는 뜻이다. 은 2대 전승이 되었다. 국물이 진한 편이지만 잡냄새는 나지 않는다.

비교적 외진 관악구 신림역, 서울대역 언저리에 '삼미옥'이 있다. 예전의 무겁고 고릿한 설렁탕과 요즘의 맑은 설렁탕 맛의 중간쯤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숱하게 있는 길거리의 설렁탕집에 비하면 확실히 무겁다. 설렁탕 전문점치고는 젊은 층들도 많이 온다.

'한양설농탕'
진짜 뼛국맛은 외면?

참 밝히기 꺼려지지만, 2세대 설렁탕집의 특징은 '조미료와의 전쟁'이었다. 1960 중반 이후 '마법의 맛' '고향의 맛' 화학조미료는 우리의 식탁을 완전 점령하였다. 누구나, 아무런 '죄책감' 없이 조미료를 사용했다.

조미료 제조법은 1950년대 후반 한국으로 건너왔고, 1960년대 초반 대량 생산 공장이 섰다. 화학조미료 MSG는 '아지노모토'라는 이름으로 1908년 일본에서 개발되었고 대량 생산 초기인 1920-30년대에 한반도에 수입되었다.

2세대 설렁탕집들은 대부분 이 조미료와의 전쟁을 치렀거나 혹은 지금도 치르고 있다. 모두 "조미료 쓰지 않으면 식당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객들은 '뼈 곤 국물이 진짜 설렁탕'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뼈를 제대로 곤 설렁탕국물은 외면한다. 입맛이 까다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무뎌지면서 너도나도 달콤하고 구수한 국물 맛을 원한다. 견과류 가루, 커피 프림, 수입사골, 화공약품 수준의 땅콩버터, 구운 닭 뼈 등등 '달고 구수한 맛'을 내는 모든 것을 사용한다.


삼미옥 설렁탕
보건옥 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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