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정치권의 빅뱅이 시작되고 있다. 10ㆍ26 재보선의 후폭풍 여파로 여야 정당은 각각 쇄신을 위한 자구책 마련에 한창이다. 과거처럼 지도체제의 개편이나 새 인물 영입을 통한 물갈이 차원이 아니라 큰 틀의 정치지형을 바꾸는 지각변동마저 예고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2002년부터 연달아 세 차례 승리했던 서울시 선거에서 패한 데 대한 충격에 휩싸여 있고, 민주당은 호남지역 이외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전패한 데 따른 위기감에 빠져 있다.

특히 한나라당은 전 대표까지 지원에 나섰는데 서울에서 패했다는 점, 민주당은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당선까지는 환영할 만 하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비롯한 시민사회세력 중심의 정치권 세력 변화가 이어지는 점에 고민이 있다.

그러나 여야 모두 충격의 강도가 너무 큰 탓인지 구체적인 방향이나 진로를 설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중심으로 한 제3의 정당 창당 이야기가 피어 오르고 있어 이래저래 정치권에 대한 국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근혜
홍대표 정면돌파 시사

한나라당은 일단 대표체제를 유지하면서 대대적인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홍 대표는 선거 다음날인 27일 "이번 선거는 국민 여러분이 한나라당에 희망과 애정의 회초리를 함께 준 선거라고 생각한다"면서 "더욱 국민 여러분의 뜻을 받들도록 하겠다. 앞으로 당 개혁과 수도권 대책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다분히 당 일각의 지도부 책임론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이다.

실제 홍 대표는 선거 결과가 예측된 26일 밤에도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를 염두에 두면서 "이번 선거는 진 것도 이긴 것도 아니다"고 말하며 지도부 책임론에 대해 미리 방어막을 친 바 있다.

홍 대표가 물러날 경우 재선의 유승민 최고위원이 승계하게 된다. 따라서 당내에서는 친박계 핵심에다 대구 출신의 유 최고위원으로 총선을 치르는 것이 여러모로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현 체제 유지를 바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나경원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엄존하고 있다. 더구나 당 쇄신 논의과정에서 현 체제를 갖고 급속 이탈하는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느냐에 대한 회의가 많다.

따라서 향후 상황 전개 과정에서 언제든지 '새판짜기' 요구가 분출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당 안팎에서는 총선 체제로 미리 전환해 홍 대표는 그대로 두되, 박 전 대표에게 선대위원장을 맡겨 공천권 행사를 포함해 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게 하는 방안과 당 지도부 전원 사퇴 후 박 전 대표를 선대위원장으로 올려 당 대표 역할까지 맡기는 방안이 논의된다. 아이디어 차원서 제기되는 방안이지만 박 전 대표가 이에 응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비상대책위 구성 거론

내년 총선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섰다가 여당이 패할 경우, 대선가도에 엄청난 악영향으로 다가오는 것은 자명하다. 지금도 안철수 원장과의 대리전 성격이 짙었던 서울시장 선거에 패해 흠집이 상태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7일 국회 민주당 의원총회장을 방문, 의원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그나마 현실성 있는 안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임시 지도부가 총선까지 당을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비대위 체제로 가더라도 친이계와 친박계, 소장파의 자리 경쟁이 불가피해 또다시 국민에게 구태 모습을 보이게 될까 하는 점도 우려된다. "지도부 책임론이 반드시 해법만은 아니다"라는 기류가 퍼지는 이유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의 주요 패인 중 하나가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신축 계획에 따른 내곡동 부지 매입 사건이었던 점을 들어 이 대통령의 탈당과 한나라당의 당명 교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이에 대한 추동력이 많지 않은 편이다.

이와 관련 서울지역 한 의원은 "공천 개혁 등의 논의 상황을 지켜본 뒤 여의치 않으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천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거나 외부 인사 수혈 등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집단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홍 대표의 살 길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제2의 창당과 같은 수준의 대대적인 인적 개편이 필요하지만 물리적으로 가능할까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기존의 지역구 의원이나 원외위원장, 친이계와 친박계, 소장파의 영역 다툼 속에 자칫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홍 대표의 정치생명도 불안해 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야권 대통합 안간힘

민주당은 일단 박원순 후보의 당선으로 26일 밤에는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환호는 그날로 끝났다. 27일부터는 민주당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태산같이 밀려왔다.

무소속 박 후보의 승리지, 민주당의 승리로 볼 수 없는 정치적 현실 때문이다. 더구나 전국에서 치러진 기초단체장은 호남을 빼면 전패다. 민주당을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이 낱낱이 드러난 것이다. 박 후보와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통합 경선을 치러 단일화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민주당은 10ㆍ26 재보선에서 전패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계산도 가능해진다.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 등 지도부의 조기 교체보다는 당 쇄신과 야권통합에 당내 논의를 집중하고 있다. 통합의 전도사 역할을 해 온 손 대표를 중심으로 야권통합 추진기구인 혁신과 통합,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과 활발하게 대화하며 통합 논의의 중심에 서겠다는 복안이다.

민주당은 12ㆍ11 전당대회를 야권 '통합전당대회'로 치르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시간이 부족해 현실성은 적다.

총선까지의 길은 크게 세 가지다. 현 상태로 여당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것과 시민사회세력을 제외한 민노당, 진보신당, 참여당 등과의 야당연합 또는 선거연대를 통해 여당과 1대1 구도를 만들어 승부에 임하는 것이다.

또는 아예 안철수 원장을 포함한 시민사회세력까지 모두 흡수한 새로운 범야권 정당을 탄생시켜 총선에 전면적으로 나서는 안도 거론되지만 정치 현실상 쉽지는 않다.

현재 당내에서 민주당 자력으로는 큰 게임의 승리가 불가능하고, 특히 야권의 주도권을 시민세력에게 내주면서 자칫 당 간판으로 대선 후보도 못 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래서 향후 논의의 방향이 대대적인 인적 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손 대표와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 등 대선주자 군은 일단 야권통합 논의를 거들면서 당내 입지를 넓히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범야권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 등 친노세력의 움직임도 관심사다.

문 이사장은 선거가 끝나고 "야권 대통합만이 (정권 교체의) 유효 적절한 대안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힌바 있다.

문 이사장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주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통합이 아닌) 선거연대를 통한 후보단일화로는 부족하다"며 "결국 야권정당과 시민사회가 함께 하는 대통합을 통해 새 정치에 대한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 동구청장 선거의 민주당 후보의 패배와 관련, "부산 동구 선거는 비호남 지역에서 민주당이 갖는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며 "부산 지역에서 민주당의 지역적 한계는 민주당만의 힘으로는 넘어서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것조차도 대통합으로 함께 극복해내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야권 대통합 추진기구인 '혁신과통합'의 상임대표인 문 이사장이 민주당과 다른 야당, 친노세력과 시민사회진영을 모두 아우르는 범야권 대통합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안철수 주축 제3당 뜰까

정가의 시선은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시장 당선에 큰 역할을 한 안철수 원장의 행보에 쏠려 있다. 박 전 대표와 함께 나서며 대선 전초전이란 말을 들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겨 기세는 일단 올렸다.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민주당 등 기존 야당과 다시 힘을 합하느냐, 아니면 신당을 창당해서 총선에서도 독자적으로 돌풍을 이어가느냐, 아니면 신당을 만들되 민주당 인사들을 흡수하는 큰 틀의 야당으로 나가느냐 등 여러 시나리오가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일단은 안 원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모두 신당 창당에는 손사래를 치고 있다.

박 시장은 27일 "일부 언론에서 제3정당을 말하는데 한 번도 말한 적이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며 "제3정당을 만들 것 같으면 처음부터 따로 갔지, 민주당과 경선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시장이 안 장과 손잡고 독자신당을 꾸릴 수 있다는 정치권 안팎의 관측을 부인하면서 야권대통합의 흐름에 합류하겠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시장은 또 "민주주의를 지켜 온 민주당을 중심으로 통합과 연대를 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새로운 바람을 흡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며 "민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통합과 변화라는 가치를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도 그 과정에 함께 하겠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안 원장은 정치권 등 세간에서 제3정당 창당 관측이 나오고 있다는 기자들의 언급에 "학교 일만으로도 벅차다"며 즉답을 피했다. 또 '야권 통합을 위해 역할을 하겠느냐'는 질문에도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했고,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당혹스럽다. 그런 결과들은, 글쎄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신당 창당과 관련해 안 원장은 '지금으로서는 생각이 없다'는 식이다. '전혀 안 할 것'이라는 박 시장의 발언과는 온도차가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안 원장 입장에서는 정치권에 섣불리 발을 들여놓는 것 보다 정치의 경계선에 머물다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에 옮기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을 하고 있다.

때문에 당장 신당 창당보다는 정중동의 자세로 정치권의 변혁 움직임을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마냥 장외에 있을 수는 없다. 때문에 총선으로 가는 여야 정당의 행태를 지켜보고 제3의 세력에 대한 국민적 욕구가 커질 대로 커졌다는 판단이 들 경우 내년 초 총선을 앞두고 시민사회세력을 중심으로 전격 깃발을 세울 수도 있다. 기성정치와의 한판 승부를 선전포고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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