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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30년만에 모든 감독 '선수 출신', 고대 3인방, 영·호남 대표로 맞대결

●프로야구 사령탑 '거미줄 인연' 탐구
80-90년대 주름잡던 '역전의 용사' 한자리에
각 구단 감독간 관계 고교·대학 선후배부터 라이벌까지 얽히고설켜
  • 선동열 감독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한국 프로야구가 낳은 불세출의 투수 선동열(해태). 80년대와 90년대 프로야구는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를 위해 홈런을 펑펑 때렸던 한대화(해태), 그와 최고 투수를 다퉜던 김시진(삼성), 홈런 타자 이만수(삼성)와의 투타 대결, 선동열의 천적으로 불렸던 김진욱(OB) 등등.

프로야구 선수로서 야구 팬을 웃고 울렸던 역전의 용사 아홉 명이 NC를 비롯한 프로야구 9개 구단 사령탑에 올랐다. 프로야구 역사 30년에서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만 감독이 모두 채워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려대 3인방 영호남 대결

광주일고를 졸업한 투수 선동열은 1981년 고려대에 입학했다. 당시 4학년이었던 포수 김경문과 3학년 내야수 양승호의 눈엔 말 그대로 핏덩어리였다. 야구부 숙소에서 '방장과 방졸'로 만난 김경문과 선동열은 얼굴에 난 여드름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선동열은 김경문 선배로부터 여드름 전문피부과 병원을 소개받고 '하늘 같은 선배'와 함께 다녔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 한대화 감독
절친했던 고려대 선후배는 그러나 2005년 한국시리즈에 상대를 제압해야하는 적장으로 만났다. 삼성을 이끈 선동열 감독은 두산을 4승 무패로 꺾고, '하늘 같은 선배'앞에서 보란 듯이 하늘로 헹가래를 받았다. 선동열의 감독 데뷔 첫해 우승. 반면 김경문 감독은 탁월한 지도력은 인정받았지만 끝내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는 '징크스(?)'의 시작이었다.

내년부터 호남을 대표하는 KIA 감독을 맡은 선동열과 기존의 양승호 롯데감독은 각각 영남과 호남을 대표해 싸운다. 여기에 경남에 터를 잡은 NC 사령탑에 오른 김경문 감독까지 가세하면 소위 '고려대 3인방'은 영호남 야구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할 판이다.

선동열과 김시진

선동열 KIA 감독과 김시진 넥센 감독은 최동원과 더불어 프로야구 초창기 '누가 최고 투수냐'는 논쟁이 벌어질 만큼 맞수였다. 광주일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선동열은 호남을 대표하는 투수로 해태에서 활약했고 대구상고와 한양대를 거친 김시진은 영남을 대표하는, 삼성의 에이스였다.

국가대표로는 한솥밥을 먹었지만, 한양대 77학번 김시진과 고려대 81학번인 선동열은 대학 시절 맞붙을 일은 없었다. 그러나 프로야구에서는 선동렬이 프로야구판에 발을 들여놓았던 첫해부터 매년 최고 투수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 양승호 감독
선동열 데뷔 해는 김시진의 완승. 선동렬이 프로야구에 첫발을 내딛었던 1985년 시즌엔 김시진이 25승 5패 10세이브 201탈삼진을 기록해 다승왕과 탈삼진왕을 차지하며 최고 투수로 손꼽혔다. 선동열(7승4패8세이브)은 평균자책점 1위(1.70)에 올랐지만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만 했다.

절치부심한 선동열은 이듬해 0점대 평균자책점(0.99)과 24승 6패 6세이브 214탈삼진이란 빼어난 성적으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투수 3관왕을 차지했다. 김시진은 삼성 에이스(16승 6패)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1987년엔 김시진과 선동열이 엇비슷한 성적을 거뒀다. 김시진은 23승(6패 평균자책점 3.12)을 거두며 다승왕을 되찾았다. 선동열(14승2패)은 다승왕을 놓쳤지만 역대 최저 평균자책점(0.89)을 기록했다.

이후 선동열은 승승장구, 1989년부터 91년까지 3년 연속 투수 3관왕에 오르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 투수로 우뚝 섰다.

태양 잡는 김진욱

  • 이만수 감독
두산 팬들은 김진욱 두산 감독을 '선동열 천적'으로 기억한다. 각종 시위가 난무했던 1987년 4월 19일, 해태 투수 선동열과 OB 투수 김진욱은 15회까지 1실점 완투했고,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선동열은 한 달 뒤인 5월16일 롯데 최동원과 15회 완투 대결에서도 무승부(2-2)에 그쳤지만 이 두 경기는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로 손꼽힌다.

선동열과 김진욱의 두 번째 완투 대결은 1989년 5월 4일에 펼쳐졌다. 김진욱은 공 114개를 던지며 1피안타 1볼넷만 허용하는 완벽한 투구로 해태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뒀다. 선동열도 삼진을 11개나 잡아내면서 6피안타 1실점 호투했지만 김진욱의 호투에 밀려 패전의 멍에를 썼다. 김진욱은 한 달 뒤인 6월16일 또다시 선동열과 해태 강타선을 상대로 1-0 완봉승을 거뒀다. 당시 결승점 물꼬는 선동열의 고려대 3년 선배 김경문이 텄다. 김경문은 2회말 2사 1루에서 중전안타를 쳤고, 야수 선택, 볼넷 두 개에 홈을 밟았다. 김진욱이 두산 팬의 가슴 속에 '선동열 천적'으로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선동열은 그해 21승 3패를 기록하며 최우수선수가 됐는데, 3패 가운데 2패가 김진욱에게 당한 0-1 완투패였다.

찰떡궁합 커플도

선동열 KIA 감독과 한대화 한화 감독의 인연은 2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대화는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0-2로 뒤지던 8회말 결승 3점 홈런을 때렸고, 투수 선동열은 2실점 완투승(3-2)으로 최우수선수가 됐다. 선동열 감독은 "그때 3점 홈런이 없었다면 오늘의 선동열도 오늘의 한대화도 없을지 모른다"고 회상했다.

  • 류중일 감독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나자 한대화는 1983년 OB에 입단했고, 선동열은 고려대로 돌아가 서로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한대화가 1986년 해태로 옮기면서 선동열과 다시 만났다. OB에서 평범한 선수로 묻혔던 한대화는 해태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거렸다. 이런 까닭에 한대화는 선동열에게 "우리는 궁합이 맞는다"고 말하곤 했다.

한대화의 방망이는 유독 선동열이 마운드에 오르면 날카롭게 돌았던 것으로 팬들은 기억한다. 선동열이 프로 무대 첫 완투승을 거뒀던 1986년 4월 9일 빙그레(현 한화)전에서 한대화는 2회 결승 2타점 2루타를 때렸다. 선동열이 등판한 날 한대화는 홈런을 무려 38개나 때렸다. 3점 홈런의 사나이란 별명답게 선동열을 위해 때린 3점 홈런도 10개나 됐다.

선동렬 감독은 "내가 공을 던질 때마다 한대화 감독이 승리 타점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한대화 감독도 "선동열 감독과는 유난히 잘 맞아 찰떡궁합이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동렬은 2005년 삼성 감독이 되자 찰떡궁합 선배 한대화에게 수석코치 자리를 맡겼다.

이밖에 김기태 LG 감독은 선동열 감독의 광주일고 후배이고, 류중일 삼성 감독은 선동열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로 일했다. 선동열 감독을 중심으로 얽히고 설킨 프로야구 감독들의 인연 때문에 프로야구판에는 연일 각종 화제가 쏟아지고 있어 서울을 비롯한 영·호남 야구팬은 새판을 짠 프로야구 정규시즌이 시작될 내년 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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