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담당기자였던 브렌트 슐렌더(포춘 기고가)는 잡스가 마치 '록스타'처럼 자신의 이야기가 가능한 한 많은, 가능한 한 최고의 청중들에게 들려지기를 원했다고 전했다.

슐렌더는 20년 넘게 취재한 잡스의 삶과 개인 소장 사진 일부를 포춘최신호에 공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포춘코리아 11월호에 따르면 슐렌더는 잡스의 화려한 경력에 대한 심층 기사를 썼던 기자들 중 대부분은 '우리가 하나의 현대적 신화를 만드는 일에 공모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포춘에 기고한 글에서 "잡스가 클루니처럼 카리스마 넘치고 마키아벨리처럼 교활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잡스가 만든 전설은 그의 자아를 부풀리는 것외에 많은 목적에 이용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잡스를 '자신의 상상 속에서 넘쳐나는 경이로운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서는, 그 세대를 지배하는 디지털 혁명의 조종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며 '그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볼 수 없는 큰 그림을 그려낸 가장 세밀한 관리자였다'고 평했다.

잡스는 그러나 정말 좋아했던 멋진 걸프스트림 제트기 외에는 어떤 것에도 결코 만족한 적이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었을 때야말로 여러 모로 완전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잡스는 가끔씩 다른 사람들을 아주 냉혹하게 착취했다.

슐렌더는 포춘에 기고한 글에서 잡스와 알고 지낸 지난 25년을 이렇게 회상했다.

잡스의 전설은 지난 몇 년간 너무나 판에 박힌 뻔한 이야기 같을 때가 많았다. 또 많은 면에서 잡스는 그런 식을 좋아했다. 그의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기사를 쓸 때 가장 큰 문제는 그가 기사로 알리기로 선택한 것이 무엇이든, 컴퓨터 마우스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든, 픽사 영화든, 그것에 대한 열망을 펼쳐 보이는 그의 놀라운 능력을 묘사할 수 있는, 적절하고 독창적인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었다.

컴퓨터업계 '수석 미학의 책임자'

잡스가 싫어했던 말은 '걸으면서 말하는 현실 왜곡의 장 reality distortion field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믿게 만드는 잡스의 능력을 일컫는 말)'이라는 표현이다. '뻔뻔하다' '변덕스럽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까다로운 성격을 묘사할 때 매우 자주 사용했다. 그의 재능과 괴팍함은 아주 다양하고, 상호 보완적이어서 그의 천재성을 묘사할 때 아주 재미있는 방법으로 사용됐다.

슐렌더는 포춘 커버스토리에서 애플의 잡스를 컴퓨터 업계의 '수석 미학 담당 책임자', 픽사의 잡스를 '가상 현실의 독창적 기획자'라고 표현했다. 또 애플 성장에 터보 엔진 역할을 한 아이팟을 공개하기 전인 2000년대 초반, 힘들었던 그 시기에 잡스를 '찌그러져 가는 왕국의 늙어가는 왕자'라고 놀렸다. 그 기사를 본 '뻔뻔하고 변덕스러운' 잡스는 곧바로 슐렌더에게 전화를 걸어 '그걸 보고 얼마나 유쾌하게 웃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포춘코리아에 따르면 슐렌더가 잡스를 처음 만난 건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시절인 1987년 2월이다.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는 애플 동료들과 함께 새 컴퓨터 회사 '넥스트'를 창업했고, 1986년에는 나중에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될 디지털 애니메이션 전문 회사를 조지 루카스에게서 1,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잡스는 넥스트와 픽사를 홍보하고, 비즈니스 및 기술 석학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남기기 위해 월스트리트저널의 애플 담당기자인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슐렌더는 술회했다.

답변은 늘 직설적지만 날카로워

그는 1989년 포춘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월스트리트저널에 넥스트와 픽사에 대한 장편 기사를 여러번 썼는데, 그때 잡스와 개인적으로 잘 맞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나이도 같고, 비슷한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책, 영화, 음악에 대한 취향도 놀라울 정도로 두 사람이 비슷했다. 만난 지 몇 년 후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 슐렌더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잡스의 여동생인 소설가 모나 심슨과 거의 결혼할 뻔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더욱 친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슐렌더는 항상 기자였고 잡스는 취재대상이었다. 잡스는 마치 '록스타'처럼 자신의 이야기가 가능한 한 많은, 가능한 한 최고의 청중들에게 들려지기를 원했다.

슐렌더는 "나는 잡스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더 큰 것을 향해 가고, 그리고 맨 앞자리를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 20년간 우리의 사회적 개인적 관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언론적인 거래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모든 거래가 잡스를 만족시킨 것은 아니었다. 기자 슐렌더의 목표는 잡스를 만나면 비즈니스나 기술, 예술, 정치 및 시사, 심지어 그의 개인사에 대해서까지 즉흥적으로 묻고 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결과를 종합하면 잡스의 답변과 분석은 늘 직설적이었지만, 그만큼 날카로웠다. 잡스의 통찰력과 지성의 진정한 깊이를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적에 대한 그의 집착이, 뛰어난 그의 머리를 돋보이지 않게 하는 위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포춘 본사의 간부들도 잡스를 만나기 위해 슐렌더(기자)를 활용하기도했다. 슐렌더는 "나의 상사들이 잡스 인터뷰 장소에 함께 가기 위해 출장을 올 정도였다"며 "타임의 편집장인 존 휴이는 2003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본사에서 나와 함께 잡스를 만난 적이 있었다"고 적었다.

휴이 편집장은 당시 잡스와 만나 포춘의 모기업인 AOL 타임 워너의 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을 요청했다. 잡스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휴이 편집장을 쳐다보고는 '백미러로 사물을 보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인지에 대해 중얼거렸다. 그러곤 20분 동안 전화접속 인터넷 서비스인 AOL의 비즈니스 모델이 왜 부적당하며, 훨씬 더 전망 있는 광대역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을 둔화시킬 수밖에 없는지를 아주 자세히 설명했다. 또 온라인 콘텐츠를 우편엽서 만들듯이 하는 AOL의 행태가 얼마나 가망 없는 지난 세기의 방식인지 신랄하게 비판했다.

슐렌더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휴이 편집장이 잡스의 조언을 들은 뒤 "그 말은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로 들리는데"라고 하자, 잡스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다만 관심이 없을 뿐이다"라고 응수했다. 그리고 화이트보드로 걸어가서 15분 동안 AOL을 미디어 회사로 만들기 위한 전략을 그렸다. 실제로 잡스가 그린 전략은 수년 후 타임 워너에서 분사한 AOL이—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하긴 했지만—결국 따르게 된 과정이었다.

1995년 애플 인수 암시 받아

슐렌더는 잡스와의 만남은 항상 재미있지만은 않았다고 회상했다.

1995년 크리스마스 다음 일요일이었다. 잡스가 자기 집으로 불렀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스나 필립스 NV가 어려움에 처한 애플을 인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들리던 때였다. 잡스는 가장 친한 친구인 오라클의 설립자 겸 CEO 래리 엘리슨과 함께 애플을 인수할지 심사숙고 중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그건 이상한 전략 같았다. 나는 그에게 문제를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잡스는 그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는 나에게 비밀유지 맹세를 하게 한 후 밖으로 나와 내 차까지 배웅해 주었다. 커브에 주차된 낡은 1976 도요타 셀리카를 본 그가 갑자기 말했다. '아이들을 저 차에 태우고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농담 아니다. 그 차는 에어백도 없다. 폐차시켜버려라'고.

1년 후인 1996년 말, 잡스는 엘리슨과 함께 애플을 인수하는 대신, 애플 CEO 길 아멜리오를 설득해 4억 달러에 넥스트를 인수하게 하고 자신은 특별 고문에 앉았다. 그리고 잡스가 쿠데타를 기획하고, 자신의 넥스트팀을 경영진에 앉히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확히 7개월이 소요됐다. 소위 '방황의 시기'가 끝나고 스티브 잡스 신화의 속편이 시작되고 있었다.

포춘코리아판에 따르면 슐렌더(기자)는 그 후 7년간 잡스의 변혁적인 리더십에 대한 커버스토리를 4편이나 썼고, 다른 기사들도 내보냈다. 잡스는 포춘에 맥 OS X운영체제를 최초로 볼 수 있는 독점 권한을 주었다. 또한 2001년 아이팟이 공개되기 수주일 전에 첫 아이팟을 보여주었다. 이유는 그의 제품 소개 발표에 대한 평가를 듣기 위해서였다. 잡스는 또 1년 후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 온라인 출범 전에 포춘에 이 사실을 처음 알려주었다.

포춘코리아는 잡스가 포춘의 몇 기사에서는 심각하게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럴 때마다 그 불만을 맨 처음 듣는 사람은 슐렌더(기자)였다. 포춘이 2001년 6월 '위대한 CEO, 연봉 절도의 내막 Inside the Great CEO Pay Heist'이라는 커버스토리의 이미지로 그를 사용했을 때, 잡스는 포춘에 애플 광고를 영원히 싣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슐렌더는 잡스에게 포춘 편집장에게 편지를 써 문제의 기사가 자신을 부당하게 폄하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라고 했다.

슐렌더가 잡스에게 어느 유명인보다 더 강한 애착을 느낀 것은 동병상련 때문이다. 15년 전 첫 심장마비를 겪었을 때 잡스는 병실에 전화를 걸어와 오랫동안 담배를 피운 그를 호되게 나무랐다. 6년 전에 인공심장판막에 생긴 염증이 뇌척수막염으로 발전하면서, 슐렌더는 거의 사망 직전까지 갔다. 이로 인해 청력을 상당부분 잃었다. 그때 5주 동안 병원에 있었는데, 잡스는 두 번이나 병문안을 왔고,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 주었다.

2008년 우연한 기회에 병 알게돼

슐렌더(기자)가 잡스의 병을 알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병원에서 퇴원한 슐렌더는 '어떤 기업가들은 자신들이 세운 기업보다 더 빠르게 비즈니스 리더로서 성공하는가'라는 주제로 책'파운더스 키퍼스 Founders Keepers'을 기획했다. 그때 잡스는 빌 게이츠, 마이클 델, 앤디 그로브와 함께 그 책의 주요 취재 대상이 되기로 했다.

2008년 11월말 실리콘 밸리에서 취재대상들을 모두 함께 만나 원탁 토론을 하기로 했는데, 회의 1주일 전, 잡스가 전화를 걸어 "이러고 싶진 않지만, 그 회의에서 빠져야겠어"라고 통고했다. 청각 상실로 끼게 된 보청기 때문에 그렇게 들렸는지 모르지만, 잡스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잠겨 있었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회의를 취소하는 이유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않을 거라고 믿네. 나는 내 건강 문제의 진짜 원인을 알아내야 해. 지금 누굴 만날 상태가 아니야. 추수감사절 후에 장기 병가를 낼 거야."

3주 후 잡스는 간 이식수술을 받았다. 그 후 두 사람은 진지한 이야기를 몇 번밖에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고 포춘코리아판은 전했다

그리고 3년 후 잡스는 세상을 떠났다. 슐렌더는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었다.

'스티브 잡스는 분명 기자들에게 꿈의 인터뷰 상대이자 살아 있는 전설, 프리마돈나였다. 그는 자신이 원할 때는 은근한 매력을 한껏 발산하기도 하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심통 난 불평꾼이 되기도 했다. 잡스는 가족을 사랑했다. 그렇다. 그는 실제 삶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삶이 그를 저버렸다. 바꿔 말하면 그 역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던 셈이다.'

'토이 스토리' 첫 관객은 슐렌더 딸

슐렌더기자는 픽사를 세상에 알린 영화 '토이 스토리'에 얽힌 일화도 소개했다. 1995년 5월 어느 토요일 아침, 잡스는 전화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데리고 팔로알토에 있는 그의 집으로 당장 와달라고 말했다. 잡스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멋진 것이 있다"는 말만 했다. 잡스의 집에 도착하자, 아이들에게 튀긴 팝콘과 주스를 준 뒤 지하로 데리고 가 비디오 테이프를 틀었다. 음악소리가 커지면서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 opening credit 같은, 읽기 어려운, 연필로 그린 스토리보드 (영화 등의 줄거리를 보여주는 일련의 그림이나 사진)가 연이어 스크린에 등장했다. 그리고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컬러 애니메이션이 상영되었다. 그 영화는 겨우 절반 정도 완성되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 영화에 빠져들었다. 사운드트랙은 완벽했지만, 그때까진 전체 장면들은 부분적으로만 애니메이션이었고, 여전히 스토리 보드 형태였다. 바로 6개월 뒤 개봉한 영화 '토이 스토리'의 초기 장면이었다.

이것이 잡스 스타일의 시장조사 방식이었다. 잡스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생각해? 포카 혼타스 만큼 좋니?"라고 물었다. 아이들인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라이온킹 만큼 좋니?" 아이가 잠깐 생각하더니 "토이 스토리를 5~6번 더 보기 전까지는 대답할 수 없어요"라고 했다. 토이 스토리의 성공은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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