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신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박세일, 김문수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원총회를 요구한 가운데 지도부의 대답이 없자 대책회의를 하고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정계개편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미 민주당과 친노세력 중심의 '혁신과통합'은 12월17일 통합 전당대회를 치르기로 한 일정에 합의했다. 비록 민주당내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 당권주자들이 '선(先) 전당대회 후(後) 통합'을 주장하고 있어 진통이 계속되고 있지만 손학규 대표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큰 틀의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야권통합의 가속도는 점점 배가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안풍'(安風ㆍ안철수바람)에 이은 재보궐 선거 패배로 위기감이 고조된 여권도 꿈틀대고 있다. 한나라당 만으로 범야권의 단일화 위력을 감당해 내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라 다각도 전략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최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등장에 따라 흔들리고 있는 '박근혜 대세론'하고도 맥이 닿아 있다. 야권과 시민사회가 합종연횡을 통해 배출하는 후보에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라는 단수 후보 갖고는 벅찬 승부가 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박세일 "신당 창당 가시화"

새로운 정당 창당에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가장 앞 줄에 서 있다.

▦김문수(왼쪽) 경기도지사와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가 7일 프레스센 미래한국국민연합 창립1주년 지도자포럼에 참석했다.
17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박 이사장은 9일 신당 창당과 관련,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있다. 연말까지 가시화할 수도 있다"면서 "총선 전에 창당 여부가 결정되면 (자체적으로) 후보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여론조사를 하면 40%가 중도라고 답변하는데 이는 소(小) 중도이고 보수든 진보든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을 다 모으면 75%이며 이것이 대(大) 중도"라면서 "이 같은 대(大) 중도신당이 나와야 한다.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대동단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6월 보수진영 인사 1만명으로 구성된 '선진통일연합'을 출범 시킨 이래 최근까지 전국의 지부를 100개까지 확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신당 창당 추진 이유로 "현재의 정당 정치로는 더 이상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게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났다"며 "현재 정당들은 국가 비전과 전략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종합해보면 이렇다. 중도 성향의 정치 결사체를 연말까지 만들어 보수와 중도ㆍ진보진영도 아우를 수 있는 인사들을 포함시켜 내년 4월 총선 전 선보이겠다는 계획이 된다.

여야는 물론 시민사회 학계 등 다방면의 인사를 참여시켜 새로운 이념과 정치 노선을 표방하는 정당의 틀로 내년 총선과 대선에 나서겠다는 이야기다.

▦2010년 12월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모임'함께 내일로' 송년모임에서 이재오(왼쪽) 의원과 김문수 경기지사가 인사말 순서를 양보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새로운 정당의 틀 안에는 김문수 경기지사와 안철수 원장도 함께 할 수도 있다"면서 "박근혜 전 대표도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분으로 창당 움직임에 환영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중도 성향의 정당 창당을 추진한다고는 했지만, 박 이사장의 출신 성분과 그와 어울리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중도 보수 정도의 노선을 갖출 수 있는 정당이 태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밖에서 박 이사장이 두드리자 안에서는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이 박자를 맞췄다. 친이계인 나 의원은 "바깥에 있는 보수 우파 세력을 묶을 필요가 있다"며 "지금 한나라당만 갖고는 내년 총선과 대선이 힘들다는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집토끼들이 많이 떠나갔기 때문에 박근혜 전 대표가 아무리 지지도가 높아도 그 정도로는 안 된다"며 "새로운 보수 우파 세력이 한나라당과 연합이나 합당을 해야 하고 여기에 자유선진당도 힘을 합해 야권단일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의 창당 움직임에서 나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보수 대통합의 필요성을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이재오 정몽준 김문수 오세훈

박 이사장 등 보수진영에서 그리는 신당은 지금의 한나라당보다는 중도 쪽으로 옮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과거 자민련처럼 보수 이미지가 강한 만큼 신당은 조금 더 왼쪽으로 가서 둥지를 터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신당이 한나라당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 보다 이념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면서 "신당이 신 중도 보수의 기치를 들고 제대로 된 세력을 흡수할 경우 한나라당은 자민련처럼 보수 정당으로 입지가 좁아들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나라당이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보수, 영남, 올드(OLD) 이미지가 강하다고 한다면 신당의 모습은 중도, 수도권, 40대가 중심이 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어디서 이 같은 인물들을 추려내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결국은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등 기존 정치권에서 수혈하는 방법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현재 한나라당은 각종 쇄신의 요구가 분출하면서 혼란상을 보이고 있다. 그 중 공천 물갈이를 뜻하는 인적 쇄신에 대해 친박계는 부정적이다. 큰 틀의 변화가 생기면 박 전 대표에게 이로울 게 없다는 판단이다.

벌써부터 대구 출신의 이한구 의원은 "내년 총선 공천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도움이 돼야 하는 사람들로 이뤄져야 한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할 정도다.

그런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은 9일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와 비공개 오찬회동을 가졌다. 대외적인 이유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에 협조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지만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 정도 문제는 전화상으로도 가능한데다 굳이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나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나서서 대통령의 뜻을 전할 수도 있다. 때문에 정계개편과 관련한 보수 대통합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지 않았겠는가 하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169석의 거대 정당 한나라당이 의석도 없고 국민 지지 여부도 불확실한 신당 때문에 균열이 생기거나 세력적으로 밀릴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누가 합류하느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진다.

한나라당은 이미 박 전 대표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당연히 친이계 등 구주류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공천은 받더라도 정치구도로 도저히 상대 당을 이길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이 들면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대선 후보군도 마찬가지다. 당내에서 박 전 대표에게는 어려운데다 지금의 한나라당이 갈 수록 국민에게 외면을 받는 상황이 된다면 다른 생각을 가져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재오 의원이 서 있을 수 있다. 아무래도 친박계와는 가장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이 의원의 별다른 움직임이 포착된 것은 없다. 하지만 정가에서는 한나라당 내부에서 변화가 생길 경우 이 의원에 의해 진동 폭이 커질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이 의원과 추종 세력들의 패키지 이동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선주자로는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가 호응할 수 있다. 정 전 대표가 박 전 대표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낸 지는 이미 오래됐다. 여기에 김 지사도 대세론의 위험성을 경계하며 같은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김 지사가 차기와 차차기를 놓고 저울질 한다고 치면, 정 전 대표에게 대선의 꿈은 사실상 이번이 끝일 수도 있다. 선택의 여지가 적은 정 전 대표 입장에서는 모험에 가까운 도박에 나설 수도 있다.

당내에는 적지 않은 반박(反박근혜)ㆍ비박(非박근혜) 세력들이 있다. 박 전 대표를 제외한 대선주자군이 이들과 힘을 합하고 여기에 이 대통령을 위시한 친이계가 가세하면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이석연 변호사 등 장외 인사들이 뜻을 모은다면 결과를 예단하기 어려워 진다.

안 원장이 언제부터 정치에 뜻을 뒀다고 지금 대선주자 1,2위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가. 그렇게 정치가 가변적이고 쉽게 유권자들의 마음이 변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보수대통합? 박근혜와는?

신당이 곡절 끝에 탄생한다면 차기 총선과 대선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물론 박 이사장은 양대 선거에 모두 후보를 내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안다. 보수의 분열은 필패 중 완패이다. 박 이사장이나 다른 신당 참여 후보군이 이를 모를 리 없다.

4년 전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은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면서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정동영 대선 후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당명처럼 제대로 된 대통합으로 유권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저 열린우리당의 자기 분열 후 복원한 것으로 여겨졌다.

중도 보수 신당이 출현하더라도 면면이 기성 정치권 인사들을 벗어나지 못하면 4년 전 대통합민주신당의 전례를 넘어서기 어렵다.

최대한 한나라당과는 다른 방향과 노선, 훨씬 더 폭넓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보유해야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정당이란 점을 인식시킬 수 있다. 한나라당의 자기 복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듣는 순간 신당의 밑천은 바닥난다는 얘기다.

따라서 총선을 전후해 사람들을 흡수한 뒤 제대로 된 정당의 모습을 갖춘 상태에서 대선 후보를 배출해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이후 정치 상황을 봐가며 한나라당과의 연합 또는 합당을 추진하던가 2002년 대선 당시의 '노무현-정몽준'후보 단일화 형태의 방식을 추진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의 중심에 서서 총선을 지휘해 제1당의 위치를 굳건히 유지하는 수준의 성적을 올려낸다면 신당이 끼어들 여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반대로 한나라당이 흔들리고 박 전 대표가 위축되면 신당에 대한 보수 진영 유권자들의 기대감이 커지게 된다.

지금처럼 한나라당이 총체적 위기에 휩싸이다 보니 신당 이야기가 제법 구체적으로 나돌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당 창당 등 정계개편의 모든 것이 한나라당과 박 전 대표 하기에 달린 셈이다.

▶ 말도 많던 재보선 그후…박근혜 vs 안철수 '맞장'?
▶ MB 측근 줄줄이 비리 의혹… 이제 시작일 뿐?
▶ 검찰, SK 최태원 정조준… 다른 대기업도 '덜덜덜'
▶ 말도 많은 한미 FTA… 한국에 유리한 것이 있나?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