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서 조폭 관련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경북경찰청은 연말까지 조직폭력배 특별단속에 나서기로 하고 지난 4일 수사과 강력계 사무실에서'조직폭력 근절 추진단' 현판식을 열었다. 김정석 청장(왼쪽에서 4번째)과 수사과 직원들이 현판식에 참석했다. 대구=연합뉴스
조직폭력배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한동안 잠잠한 듯 했으나 최근 들어 전국 곳곳에서 조폭 관련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지난달 '경찰의 날'에 발생한 인천 조폭간 난투극 사건으로 경찰당국은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나섰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권총을 쏴서라도 조폭을 소탕하라"고 지시하며 강력한 척결 의지를 드러냈다.

경찰은 그후 300여명의 조직원들을 검거하며 조폭에 철퇴를 가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왠만한 조폭은 이미 경찰의 단속에 크게 동요되지 않을 정도로 기업화 지능화 권력화 돼 있기 때문이다.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조폭은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세력을 규합하거나 재건을 추진하는 등 부활의 날개를 활짝 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조폭에 대한 단속이 워낙 심했던 터라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조폭들은 결혼식, 회갑, 고희연 등을 빙자해 모임을 자주 가졌다. 이런 모임은 자연스레 친목을 다지고 조직을 재건하는 자리로 변질된 것이다.

경찰 단속 과연 통할까

경찰은 최근 조직원들이 대거 집결하는 조폭 연계 결혼식 날짜까지 미리 파악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강구하고 있다. 건장한 조직원들이 동원돼 위화감을 조성하는 모임이나 그 밖의 '수상한 회동'에 감시의 눈을 가동,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오는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호텔 결혼식장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주 지역 조폭인 '나이트파'A(36)씨의 결혼식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A씨의 결혼식에는 전주 지역 유력 조직인 '월드컵파'의 보스를 포함해 총 50여명의 조폭 조직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경찰은 우선 결혼식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조폭들의 보스들에게 식장에서 '깍두기 머리'를 한 건장한 청년들이 일렬로 줄을 서 있거나, 집단으로 허리를 90도 굽히는 '굴신 인사'를 하는,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를 일체 금지하라고 사전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경찰당국의 이런 움직임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거나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조폭이 세력을 키우고 있을 동안에는 방치하더니, 경찰의 단속만으로는 역부족일 정도로 세력이 키운 지금에 와서, 이를 어떻게 막겠느냐는 게 조폭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설적 인물들 수면위로

주간한국이 최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칠성파 이강환씨, 서방파 김태촌씨, 양은이파 조양은씨 등 유명 보스들은 조직의 재정비 또는 재건작업을 끝냈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김태촌씨와 조양은씨가 조직을 재건했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며 "김태촌씨와 조양은씨는 오랫동안 자신을 추종해온 최측근 인사들을 내세워 조직을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다시 조폭 세계에서 '양강구도'를 그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보스의 측근들으로 알려진 보스급 인사 두 명이 지난해 10월과 11월에 차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해 10월 중순경 김태촌씨의 오른팔로 알려진 A씨가 강남의 모 호텔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식장에는 조폭 관련 인사 수백 명이 하객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하지만 당시 호텔 주변에는 경찰차량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달 후인 11월 중순경에는 조양은씨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박영진(51)씨가 흑석동의 모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수많은 하객들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장소가 성당인 탓에 대부분의 하객들은 인사만 하고 바로 돌아갔다고 한다.

박씨는 '서진룸살롱 살인사건'으로 20년을 복역한 인물로, 이날 결혼식에 나온 신부는 동료 조직원의 누나인 장모(53)씨로 전해졌다. 일부에서는 박씨가 조양은파의 조직을 재건하는데 앞장섰고 현재 조직의 핵심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이 소문의 사실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결혼식이 성당에서 열린 사실에서 보듯 지난 2006년 출소한 박씨는 모 기계제조업체 직원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며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폭 장학생 금배지 소문도

문제는 조폭이 과거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같은 조폭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 기업형 조폭으로 진화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일반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 유명 커피전문점, 제2 금융권 등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기업이 조폭의 소유라는 이야기도 나돈다. 정치권에는 '국회의원 중에 조폭 장학생이 있다'는 소문도 있다.

주간한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P언론사는 호남출신 유명 조폭이 자본을 출자해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인 S식당이 조폭 자금으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유명 커피전문점 브랜드도 이 식당의 자금이 대거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간 수백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각종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도 대부분 조폭이다. 조폭은 이렇게 불법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사업체를 세우거나 코스닥에 투자한다. 코스닥에는 주가조작을 전문으로 하는 작전세력이나 편법적 M&A 전문가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들중 일부가 이미 조폭 자금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찰당국이 조폭을 단속하기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경찰당국에게 조폭 단속이 가장 부담스러운 지역은 역시 부산이다. 부산지역 조폭은 이미 기업형으로 진화한지 오래라고 한다. 부산의 전설적인 칠성파 두목 이강환씨가 최근 경찰에 검거돼 검찰로 송치됐으나 이틀 만에 풀려났다. 이는 조폭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알 수 있게 하는 사건이었다.

부산은 오래 전부터 조폭이 국제적으로 활동해온 지역이다. 일본 야쿠자가 야마모토구미, 중국의 삼합회가 대표적이다.

또 부산에는 칠성파의 권위에 '21세기파'와 '학이파'가 도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세 조직의 세력다툼으로 부산 경찰청은 현재 고민중이다. 부산 지역의 한 경찰 관계자는 "부산 조폭은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그 세력이 다른 지역과 비교가 안 된다"며 "칠성파 등은 정 관 재계에도 영향력을 미칠 정도다. 즉, 단순 조폭이 아니라 일종의 권력이 됐기 때문에 표면적인 단속 외에 근본적인 소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부산 조폭 6년 새 40% 증가
부산지역 조직폭력배 수가 6년 새 40%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일 국회행정안전위 소속 박대해(한나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의 관리대상인 부산지역 조폭은 2005년 24개 조직, 283명에서 올해 23개 조직, 397명으로 114명(40.3%)이나 증가했다.

경찰 관리대상 조폭은 조직 체계와 강령, 자금 능력이 있어 활동이 왕성하다고 판단되는 폭력조직으로 매년 초 경찰이 선정해 감시한다.

부산 14개 경찰서 가운데 관할 구역 조폭수가 증가한 곳은 부산진서 영도서 등 8곳이다.

이 중 조폭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부산진서 관할로 지난 2005년 17명이 활동했으나 올해에는 56명이 관리대상에 올랐다. 지난 2008년 7월 오락실 수익금 상납 문제로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집단 난투극을 벌인 '부전파'와 '서면파' 조직원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신규 조직원이 대거 파악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폭 수가 늘어나면서 조폭 검거 건수도 크게 늘었다. 지난 2005년 부산에서 검거된 조폭은 143명이었으나, 2010년에는 327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 검찰, SK 최태원 정조준… 다른 대기업도 '덜덜덜'
▶ 말도 많은 한미 FTA… 한국에 유리한 것이 있나?
▶ 말도 많던 재보선 그후…박근혜 vs 안철수 '맞장'?
▶ MB 측근 줄줄이 비리 의혹… 이제 시작일 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