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여의도역에서 민주당 지도부들이 출근길 시민들에게 FTA 저지 거리 홍보전을 하고 있다.
●야당 FTA 강공 이면엔 대권 야망

"한미 FTA를 보면 대권이 보인다."

정치권 최대 쟁점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차기 대선주자들의 행보에 내재된 함의를 이르는 말이다.

한미 FTA에 대해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해 정몽준 전 대표, 김문수 지사 등 여권 대선주자들이 조속한 처리를 주장하는데 반해 야권 잠룡들은 한 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야권 잠룡들의 한미 FTA에 대한 태도는 야권 통합론과 맞물려 향후 정치 지형과 대선 전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의 행보가 그러하다.

지난 6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장 입구에서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이 회의실 입구를 봉쇄하고 있다.
진보진영 집회 자주 참석

정동영 최고위원은 한미 FTA에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FTA 문제를 다뤄온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정 최고는 최근 들어 '이완용'에 비유했는가 하면, 비중있는 한미 FTA 반대 집회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손학규 대표 역시 여야 원내대표가 한미 FTA 비준안을 처리하기 위해 합의한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은 데다 길거리로 나가 비준 반대 투쟁을 이끌고 있다.

손 대표와 정 최고가 유별나게 한미 FTA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올해 들어 두드러진 '좌(左)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정 최고는 그간 재야 시민세력, 노동단체의 집회에 참여하고 한진중공업 파업 현장을 찾는 '희망버스'에 자주 오르는 등 진보진영에 부지런한 발걸음을 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동철 의원이 "정동영 민노당 의원요?" 라고 말을 할 정도로 같은 외통위원인 정 최고의 언행은 급진적이고 과격하게 비춰졌다.

손학규 대표도 재야 세력과, 시민단체의 집회나 행사에 자주 모습을 보이며 그들에게 친밀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손 대표와 정 최고가 '좌 행보'를 하는 실질적인 이유는 '대권' 과 관련이 있다. 즉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의 위력이 여전하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지지율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낮은 데다, 설령 후보가 되더라도 민주당만으론 집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손 대표와 정 최고 입장에선 진보적인 정당과 시민세력을 우군으로 삼는다면 당내 지지그룹을 업고 대권에 도전할 만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민한당 운명'될수도

이는 최근 야권 통합 논란과 관련, 손 대표와 정 최고가 민주당을 넘어선 범야권 대통합을 주장하는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정 최고는 "민주당만의 독자전당대회를 치른다는 것은 국민의 뜻과도 어긋나며 제3세력이 출현하면 민주당은 과거 제1야당으로부터 소멸해갔던 민한당의 운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손 대표도 "야권통합만이 땅에 떨어진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고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손 대표는 지난 9일 문재인 혁신과통합 상임대표와 만나 내달 17일 야권 통합 전당대회를 치르자고 제안했다. 만일 야5당과 진보 시민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통합전당대회를 통해 통합정당이 결성되면 손 대표나 정 최고 모두 안정된 지지그룹이 있는 만큼 유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할 수 있다.

그러나 야권 통합으로 가기까지에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 유시민 대표의 국민참여당은 통합정당의 정체성을 이유로 민주당과의 통합에 부정적이다. 다른 진보 진영 일부에서도 구 민주당은 배제하자는 입장이어서 야권 통합이 아직 제자리 걸음이다.

대의원 서명 가속화

무엇보다 DJ정신을 이어가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 호남권 인사들은 '강한 민주당'을 내세우며 통합전당대회에 반대의사를 밝혀 통합파와 독자파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어려운 때일수록 당헌‧당규를 지키고 정도를 가는 게 순리"라며 민주당 전당대회에 무게를 실었다. 전당대회 출마를 준비 중인 김부겸 의원도 "정당의 해산과 통합은 전당대회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독자전당대회 소집을 위한 대의원 서명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밖에도 이종걸, 조경태, 이석현 의원 등 비호남 의원 상당수가 당 지도부의 통합 전대 추진을 반대하고 있다. 김원기‧정대철‧권노갑 상임고문 등 당 원로들도 손 대표를 만나 통합 전당대회 방식에 불만을 표시했다.

손 대표와 야권 통합을 추진 중인 '혁신과 통합' 내에서도 민주당을 중심으로 통합 야당을 이룬 뒤 여타 정당들과의 통합 내지 연대를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이사장은 "민주당이 분열하거나 깨지는 통합도 반대하며 다른 정당들이 흡수되는 통합도 반대한다"고 말해 민주당이 통합의 한 축임을 분명히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민주당을 포함한 '더 큰 민주당'을 주창하며 신당 창당에 반대해 민주당 역할론을 견지하고 있다.

"친노가 당권 장악"

'혁신과 통합' 일각에서는 통합을 전제로 민주당 전대에 참여해 한명숙 전 총리를 당권 후보로 출마시키자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인사들은 친노 그룹이 중심이 돼 당권 후보를 밀면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설령 당 대표가 호남 인사가 되더라도 대권 후보는 문재인 상임대표, 김두관 경남지사를 내세울 수 있는 만큼 민주당 전대 참여에 긍정적인 것이다. 이들은 특히 야권 통합에 민주당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우선 민주당을 환골탈태시켜 통합의 중심체로 삼은 뒤 여타 진보 정당 및 세력과 2차 통합(또는 연대)을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논리를 편다.

이렇듯 친노 세력이 중심이 된 '혁신과 통합'이 민주당을 중심으로 통합정당을 만들어 간다면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총선서 역풍 맞을수도

더구나 민주당내에서 한미 FTA에 대한 온건론이 확산되면서 손 대표와 정 최고의 위상은 물론, 야권 통합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민주당 온건파가 마련한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ISD)'가 성사될 경우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위한 협상은 탄력을 받게 된다.

당내 강경론이 만만치 않지만 한미 FTA에 대한 지지여론이 높아 계속 반대를 하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어 여야 간 막판 타결 여지가 있다. 이럴 경우 한미 FTA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진보 진영과 호흡을 맞춰온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은 타격을 입게 된다.

'제2 노무현 돌풍'기대

야권 통합이 내년 총선, 나아가 대선과 맞물리면서 벌써부터 야권의 경쟁력 있는 후보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안철수 변수를 논외로 한다면 손 대표와 정 최고 외에, 문재인 이사장과 김두관 경남지사가 주목받고 있다. 호남 고정표에 PK(경남‧부산)표를 잠식할 수 있어 '제2의 노무현'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야권의 이런저런 가능성은 우선 한미 FTA와 범야권 통합이라는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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