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훈 중위 의문사 14년만의 '진실'김중위 오른손 화약흔 없어 증거 명백"증거 제대로 조사했으면 바로 드러날 사실 은폐조작 위해 외면" 유족들 주장대법원 등선 "규명 불능"

14년 간 굳게 닫혀 있던 ‘진실의 문’은 열릴 것인가.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경비소대(JSA) 241GP에서 경계근무를 지휘하던 중 의문사한 김훈 중위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마침내 진실에 답하려 한다.

육사(52기) 출신의 전도양양했던 청년장교 김훈 중위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사인(死因)에 대한 수사결과도 나오기 전에 ‘자살’로 결론‧공표됐는가 하면, 여러 ‘타살’ 의혹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자살이란 불명예의 멍에에 갇혀있어야 했다.

특히 김훈 중위 소속 부대원의 북한군 접촉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특조단)이 구성돼 김 중위 사인을 원점에서부터 재조사에 들어갔지만 ‘자살’ 결론을 고수하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국방부 일각에서는 일부 언론에 자살 쪽으로 결론을 흘리는가 하면 유족을 수사 과정에 참여시키겠다던 약속을 거두고, 천주교인권위원회의 현장 총기 시험(지문 및 화약 반응)도 사실상 취소했다.

때문에 특조단의 최종 수사결과(99년 4월14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와 유족 간에는 자살동기, (손의)화약흔, 혈흔관계, 총기 지문, 현장 철모 등 여러 쟁점에 대해 대립을 보였다.

국회는 1999년 국방위 산하에 ‘김훈 중위 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를 두고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인 후 그해 5월31일 부실 수사에 대한 의문 15가지를 제기하며 ‘김훈 중위는 타살당했다’는 요지의 활동 보고서를 펴냈다.

대법원은 2006년 12월 김훈 중위 사건 관련 판결을 통해 “초동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판시했다.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김훈 중위 사건을 3년여에 걸쳐 조사한 결과, 2009년 11월2일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3대 주요 국가기관인 국회와 법원, 대통령 소속 기관이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결론지은 국방부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여전한 논란 속에 10년 가까이 침묵 속에 놓여 있던 김훈 중위 죽음의 진실은 지난달 국방부가 제출한 자료의 문제로 인해 재점화되는 양상이다.

김훈 중위 사망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온 민주당 서종표 의원(예비역 육군대장, 3군사령관 역임)이 국방부를 상대로 제출 요구한 자료들이 단초가 됐다. 서 의원이 국방부에 요구한 ‘김훈 중위 자살 판단 근거 자료’에 대해 국방부가 제출한 자료들이 그간 국방부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자살’ 결론과 상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국방부가 10월 17일 서 의원에게 김훈 중위의 자살 판단 근거 자료로 제출한 것은 ‘뇌관화약감정서’(손에 대한 뇌관화약 검출여부 확인) 사본 일체로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화약감정결과(99.2.6) 및 미국 군수사연구소 증적(證跡)과 보고(98.3.25)를 첨부했다. 또한 총기 자살자의 화약성분 검출 관련 논문 일부를 제출했다.

10여 년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추적해온 부친 김척(68‧예비역 중장)씨는 “지금까지 군수사가 조작돼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자료는 이를 증명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김훈 중위 사인이 ‘타살’임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1 M9 베레타 피스톨의 권총발사 시험 감정서

‘뇌관화약 감정서’는 김훈 중위 사건의 핵심을 가르는 결정적 자료다. 사건 현장의 권총과 같은 M9베레타 피스톨로 국방부 요원 3명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 발사한 3명 모두의 오른손에 뇌관 화약 성분이 검출됐다.(99.2.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서)

권총을 ‘발사한 손’에서 뇌관화약성분(바륨,안티몬)이 나타나면 발사자이고, 발사한 손에 뇌관화약성분이 없으면 발사자가 아니다. 그 이유는 피스톨은 탄피 방출구 쪽으로, 소량의 뇌관화약성분이 나오기 때문에, 발사한 손에만 부착된다. 그러나 김훈 중위는 발사했다는 오른손에 일체 화약 흔적이 없다. 즉 ‘자살’이 아니라는 증거다.

국방부는 김훈 중위 좌 우 어깨 부위에 무연화약 성분이 검출된 것을 근거로 ‘자살’로 규정했다. 그러나 M9베레타 피스톨은 총구 쪽에서 나오는 무연화약은 양이 많아 주변에 넓게 퍼져 근처에 있는 사람의 옷에도 부착되므로 권총 발사자 식별에 이용하지 않는 게 세계적 공통교리이다.

더구나 김훈 중위가 사망한 장소인 JSA 241GP는 2명 이상이 자유롭게 운신하기 곤란할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어서 권총을 발사하면 그 공간에 있는 사람의 옷에 무연화약이 부착된다. 따라서 자살, 타살을 식별할 수 없다. 김훈 중위가 발사한 오른 손에 화약흔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결정적 타살 증거다.

#2 38% 통계의 문제

김훈 중위의 오른쪽 손에 화약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국방부는 발사자의 38%만이 뇌관화약이 검출된다는 논문 통계를 근거로 제시하며 ‘자살’ 결론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를 뿐더러 통계를 조작했다는 게 유족 측의 주장이다. 즉 38% 통계는 김훈 중위의 ‘타살’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인 오른쪽 손에 화약이 없는 것을 의도적으로 불식시키기 위해 자료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실제 국방부가 인용한 통계는 피스톨과 리볼버 총을 구분하지 않고 종합해 낸 결과다. 피스톨과 달리 리볼버는 탄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뇌관화약 자체가 검출이 안되는 권총이다. 유족은 ‘김훈 중위가 권총을 발사했으나 화약이 안나타난 것’이라고 강조하기 위해 이 통계를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통계를 내려면 권총의 종류, 화약량, 발사장소와 위치(실내, 실외), 기상관계 등을 구분해야 정확한 결론에 이르는데 국방부는 이러한 것들을 무시한 통계 자료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유족은 특히 국방부가 자체 권총발사시험 결과가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논문 통계를 이용해 김훈의 사인을 자살로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3 미군 뇌관화약감정서 내용

국방부는 김훈 중위의 자살 근거로 미국 군 수사연구소 증적 자료(98년 3월 25일)에 나타난 왼손 손바닥의 화약 잔재를 제시했다. 그러나 미 수사 자료는 오히려 김훈 중위가 자살하지 않은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즉 ‘자살’이라면 앞서 M9 베레타 피스톨의 권총발사 시험 감정서에도 나타났듯 발사한 오른손에 100 % 뇌관 화약성분이 검출돼야 한다. 하지만 미 증적보고서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즉 김훈 중위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더구나 미 보고서는 ‘왼손 손바닥에 화약 잔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자살자로 귀결되어져서는 안된다는 사항에 유의할 것‘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미국총기전문가이자 뉴욕주 법의학자 노여수 박사, LA경찰청 마뉴엘 머르드씨 등은 미 수사자료를 분석해 “김훈은 오른손으로 권총을 발사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즉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친 김척씨는 지난 5일 국방부 장관에 이어 육군 참모총장, 국방부 조사 본부장, 인사복지국장 등에게 김훈 중위 사망과 관련한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김훈 중위 사인이 ‘타살’이라는 여러 증거들을 언급하면서 군이 진실을 밝혀 국민의 신뢰받는 군으로 떳떳하게 설 것을 촉구했다.

박종진 기자

<박스> 김훈 중위 부친 김척 예비역 중장

김훈 중위 부자는 군인 가족이다. 부친인 김척씨는 육사 21기로 1965년에 임관한 뒤 평생을 야전군에서 단련해 온 전형적인 야전통이었다. 김훈 중위 사망 3개월 전인 1997년말 1군단장을 끝으로 전역했다.

- 새로운 증거들이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동안 군이 진실을 은폐, 조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앞으로 진실을 밝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 군의 입장이 달라지지 않는 한 진실을 밝히기가 쉽지 않을텐데

“10여년간 난관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진실을 밝히는데 쉼없이 달려왔다. 이것은 내 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식을 군에 둔 모든 부모의 일이기도 하다. 또 군 출신으로 군이 바로 서게 하는데 책임을 느낀다.”

-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김)훈이의 사인을 밝혀가는 과정에 군 일부에선 “미쳤다”느니 “군 명예를 실추시킨다”느니 여러 말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힘들었던 것은 군의 책임 회피적인 태도와 방해공작이었다. 군 후배들마저 피해를 입을까봐 외면할 땐 화도 났지만 가슴이 아팠다.”

- 타살이라면 범인을 아는지

“여러가지 정황상 알리바이가 성립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건 당일 현장에서 화약채취, 피복수거 등 증거를 수집하지 않았으며,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범인은 증거에 의해서 수사관이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 김훈 중위는 어떤 군인이었나

“참 군인이었다. 육사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가장 위험하다는 최전방 JSA를 자원했다. 평소 미군 교본을 보면서 한국군의 선진화를 많이 생각했다.”

- 군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진실은 은폐한다고 끝까지 감춰지지 않는다. 군에 대한 불신을 자초할 수 있다. ‘강군’이 되려면 국민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진실 앞에 당당하게 나서 군이 떳떳한 강군으로 바로 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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