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옥의 해장국
해장국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다. 바로 '해정탕解酲湯' 혹은 '성주탕醒酒湯'이다. 참 재미있는 것은 이름에 있는 글자들이다. 해정탕의 '해정解酲'은 "숙취를 푼다"는 뜻이고 성주탕의 '성주'는 "술을 깨운다"는 뜻이다. '성주탕'에는 한자로 술 '酒주'가 두 번이나 들어간다. 둘러치나 메치나 결국 해장국은 숙취를 풀고 술을 깨우는 국물이라는 뜻이다.

"양반은 대추알 하나로도 숙취를 푼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술로 꼬인 장을 푸는, 최고의 해장거리는 바로 '술'이다. 다음은 고려시대 목은 이색의 <목은집>에 나오는 "저녁밥을 먹으며"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급히 해장술을 불러 마시고/취한 꿈 깨고 나니 허망하기만 해라/문을 여니 맑은 하늘은 푸르기만 한데/(중략)/뜨거운 국은 금세 주독을 푸네"

이쯤 되면 가히 '주선酒仙'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술이 취해서 급히 해장술을 마시고, 또 뜨거운 국을 먹으며 해장을 한다. 해장국의 역사도 퍽 긴 셈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는 더 가관(?)인 내용이 나온다.

청진옥
"(전략)백천만겁 동안 질그릇 굽는 집의 흙이 되어서/길이 술그릇의 재료가 되리라"

이 정도로 술을 사랑하고 또 마시면 반드시 술 이외에 해장거리도 필요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프리미엄 해장국 '효종갱'

조선 말, 일제강점기 최영년의 <해동죽지>에 나오는 '효종갱曉鐘羹'이란 음식은 '프리미엄 해장국'이다. 전복부터 쇠고기까지 넣고 고사리 등 각종 나물이 들어가는 '반가의 해장국'인 셈이다. 남한산성 부근의 '국 끓이는 마을, 갱촌羹村'에서 이른 아침 국을 끓여서 솜이불로 싼다. 동이 트기 전 4대문이 열리면 바로 양반가로 배달했다. '새벽종이 칠 때 배달하는 국'이라서 '효종갱'이다. 이때의 남정네들은 이른 아침 해장국 한 그릇 얻어먹으면서 아내에게 "어이구, 이 귀신아!"라는 소리는 듣지 않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조선 후기에는 경제가 어느 정도 발달하면서 시장 통에서 해장국 솥을 걸고 해장국을 퍼 먹는 장면도 심심찮게 보인다.

용문해장국의 해장국
해장국의 재료는 다양하다. 고기, 생선, 야채 등 모든 식재료를 해장국의 재료로 사용하고, 아울러 모든 장류醬類들과 고춧가루 등을 해장국에 넣는다. 고추가 널리 사용되기 전에는 산초가루로 매운 맛을 냈다. 국, 탕의 이름으로 골동갱骨董羹 혹은 잡갱雜羹이 있다. 골동갱은 뒤섞어서 끓인 국을 말하고 잡갱은 여러 가지를 넣었다는 말이니 결국 같은 뜻이다. 국은 야채 위주고 탕은 고기나 생선 위주라는 설도 있다.

"얼큰하면서도 담백하고, 뜨거우면서도 시원한 해장국의 묘한 경지"는 한국인들만 알 수 있는 것인 지도 모른다.

'대중옥' 주당들에게 명성

서울의 오래된 해장국집들은 대체적으로 사대문 안의 좁은 골목이나 도성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다.

''과 '영춘옥'은 도성 안의 해장국집들이다. 얼마 전 자리를 옮긴 해장국집 ''이 이사를 할 때는, 서울 시내 상당수의 술꾼들이 ' 70년 역사'가 무너진다고 낙담했다. 일제강점기 때 문을 연 맑은 서울해장국의 표본 같은 집이다.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과 영화배우 이예춘, 김승호씨 등이 단골이었다. 지금도 토박이들은 최고의 해장국집으로 손꼽는다. '영춘옥' 역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설렁탕, 수육 등도 있지만 역시 선지, 우거지, 콩나물이 들어간 맑은 서울식 해장국이 압권이다.

대중옥의 해장국
2011년 11월 현재 '이사 중'인 '대중옥'은 주당들에게 '해장국의 지존'이라 불린다. 허름한 '유리 가라쓰' 문이 아주 정겨웠던 서울식 해장국집이다. 찰선지와 우거지를 넣은 진국 해장국이 아주 좋은 집이다. 동대문구 용두동의 '어머니대성집'은 문을 여는 시간이 참 흥미롭다.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후 4시까지. 초저녁부터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대신 해장을 하기엔 아주 좋다. 우거지를 사용하고 야채와 고기류를 잘게 썰어서 내놓는다. 국물은 맑은 서울식인데 정작 풋고추양념을 얹어서 먹는다.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비교적 업력이 짧은 용산구 용문동의 '용문해장국'은 살코기 '왕건이'를 하나씩 준다. 상당히 넉넉한 느낌이고 기분이 푸근해진다. 우거지가 좋고 국물이 시원하다. 새벽 2시에 문을 열고 오후 2시 무렵이면 문을 닫는다. 메뉴는 '해장국 6천원'이 모두다. 가히 해장국 전문점이다.

무교동(다동)의 '무교동북엇국집'은 북엇국 한가지로 오랫동안 명성을 얻어온 집이다. 점심시간에는 늘 20~30미터 정도 대기 줄이 늘어서 있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질 좋은 북어의 구수한 맛이 작게 썬 두부와 잘 어울린다. 국물이 시원하고 담백하다. 그야말로 속 풀이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무교동 북엇국집의 해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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