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막걸리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막걸리의 정확한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사람마다 막걸리에 대해서 그리는 이미지는 모두 다르다.

재료도 마찬가지다. 쌀, 찹쌀, 밀가루 등이 주로 사용되지만, 조 껍질, 고구마, 보리, 잣, 토마토, 알밤, 옥수수 등을 주재료나 부재료로 사용해도 막걸리는 막걸리다.

발효 재료로 누룩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나 상당수는 일본식 씨누룩 즉, 종국(種麴)을 사용한다. 한국 누룩은 국자(麴子) 혹은 곡자(麯子)라고 부르는 뭉친 누룩이다. 우리의 전통 누룩을 사용하나 씨누룩을 사용하나 모두 막걸리다. 2~3일 만에 만들어도 막걸리고 보름 이상이 걸려도 막걸리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공급가 기준으로 1천 원 미만짜리가 있는가 하면 8천 원에 공급되는 것도 있다. 모두 막걸리다.

조선시대 숱한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백성의 술로 생명력을 이어간 '탁주'는 일제강점기 초기 주세법과 주세령으로 인해 수많은 종류가 사라졌지만 그 후 다시 힘차게 살아났다. 1970년대 언저리에는 막걸리가 전체 술 소비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막걸리 제조에 쌀 사용을 금했다. 수입 밀가루로만 만들게 하니 막걸리의 맛이 형편없어졌다. 드디어 속성 카바이트 막걸리가 나오고 사카린 막걸리가 나왔다.

2000년을 넘기면서 막걸리 제조에 쌀을 사용할 수 있게 하니 막걸리는 또 살아났다. 게다가 일본의 막걸리 열풍에 힘입어 2008년을 기점으로 전국의 막걸리 양조장들은 우후죽순으로 살아났다. 2010년 기준 전국 양조장은 1,400개를 넘어섰다. 드디어 1,400종류의 막걸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막걸리는 참 신기한 술이다. 세상의 모든 술은 '스펙'이 있다. 알코올 도수와 사용하는 재료, 만드는 방법의 기준이 있다. 막걸리는 기준이 없는 혹은 기준이 너무 넓은 술이다.

오래 전부터 막걸리의 '5덕(五德)'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막걸리는 쉽게 취할 수 없는 술이다. 도수가 낮고 양이 많으니 취하기 전에 먼저 배가 불러온다. 또 막걸리는 식사대용이 되고 취하면 힘이 솟는다. 막걸리는 쉬이 취하지 않으니 술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풀리지 않던 일도 잘 풀리고 또 사람들 사이의 맺힌 앙금도 풀어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막걸리는 '오덕'만으로 설명하기는 너무 복잡하다. 이 복잡한 막걸리 이야기 중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부분은 "전통의 누룩을 이용한 전통 막걸리는 맛이 깊다"는 것이다.

막걸리 마니아들은 '금정산성막걸리와 금정산성 누룩마을'에 대해서 감동한다. 척박한 산골의 화전민들이 누룩을 발로 디뎌서 만들었고 누룩도 팔고 막걸리도 빚어서 팔았다. '금정산성막걸리'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박통시절' 밀주 단속이 심했다. 마을로 단속원들이 오면 주민들은 온갖 방법으로 누룩을 사수했고, 그렇게 지킨 누룩이 오늘날 '금정산성막걸리'의 깊은 맛을 보증하고 있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단골손님' 박 대통령 덕분에 '민속주 1호'로 지정되었고 드물게 '우리 쌀 우리 누룩으로 빚은 전통 막걸리'로 살아남았다. 숱한 고난을 겪었으면서도 '금정산성막걸리 마을'에서 박 대통령을 '은인'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송명섭막걸리'를 만드는 전북 정읍의 '태인양조장'은 막걸리 마니아들이 성지로 생각하는 곳이다. 육당이 '조선의 3대 명주'라고 손꼽은 대나무 향기가 나는 '죽력고'를 만드는 명인 송명섭씨가 직접 막걸리를 빚는다. 송명섭 장인은 막걸리 관련 책자와 만화책에 단골로 등장한다. 직접 재배한 우리 쌀, 양조장 마당의 우물물, 직접 재배한 밀을 이용하여 만든 누룩만을 사용한다.

밀가루 막걸리 이야기가 나오면 늘 경기도 고양의 '배다리막걸리'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박통'이 좋아했던 막걸리고 서거 직전까지 청와대에 공급했던 막걸리다. 밀가루 막걸리만 만들던 시절, 청와대에 납품하는 막걸리에만 쌀을 사용했다. 정작 청와대의 술 감정관과 박 대통령이 쌀 막걸리라는 사실을 몰랐는지 혹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했는지가 술꾼들의 술자리 안주거리가 된다.

'자희향'도 재미있는 술이다. 2009년에 처음 선을 보인 젊은 술 '자희향'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막걸리의 범주에 들지 않고 청주 혹은 탁주이지만 막걸리 전문점에서 '탁주'와 청주를 동시에 선보이고 있다. '자희향'을 빚는 전남 함평의 양조장 '자희자향'의 대표는 여자다. "여자면 도수가 낮은 술을 빚어야"라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자희향'은 기본 도수가 12도다. 찹쌀과 물, 누룩만 사용하는데 술에서는 은은한 국화 향이 난다.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여 누룩을 충분히 발효시키면 꽃향기가 난다"는 예전의 술 이야기를 현실화시킨 셈이다.

이박사 신동막걸리
밀가루 막걸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밀가루 막걸리 시절 카바이트 등을 이용하여 속성으로 술을 만들다가 맛이 나지 않자, 사카린 등을 섞은 것이 문제였다. 마시고 나면 카바이트의 불순물, 사카린 등이 숙취를 심하게 만들었다.

경북 칠곡의 '칠곡막걸리'는 쌀 40%에 밀가루 60%로 술을 만들다가 쌀 함량을 70%대로 높였다. 원주(原酒)는 12도이고 막걸리는 6도다. '신동막걸리'를 마시면 모두 3번 놀란다. 우선 색깔이 노란 것을 보고 놀라고, 마실 때 입 안 가득 바나나 향이 번지는 것을 느끼고 놀란다. 그리고 밀가루가 많이 들어간 막걸리의 뒤끝이 깨끗한 것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놀란다.

'소백산대강막걸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꺼번에 6잔을 '원샷'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단맛이 강점이면서 단점이다.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던 이가 퇴직 후 만들고 있는 충북 진천의 '덕산막걸리'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고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전남 해남의 귀농 부부가 만드는 해남쌀 100% '해창막걸리'도 권할 만하다.

막걸리는 역시 혼란스럽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술이다. '주세 5%' 때문에 가격이 낮아졌고 그 덕분에 인기를 끌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막걸리는 꾸준히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살벌하던 제조 금지 시절에도 살아남았고 여러 가지로 변신을 했던 술이 막걸리다.

다모토리
지방 양조장서 공수한 '명주'를 마실수 있는 곳들

막걸리와 어울리지 않는 장소인 삼성역 코엑스 부근에 있다. 일본잡지에 널리 알려져서 일본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다. '고수들의 막걸리' '막걸리-여인의 향기' '대통령의 막걸리' 등 주제가 있는 이벤트도 자주 연다.

세발자전거

막걸리 계의 고수 닉네임 '허수자'를 비롯하여 세 사람의 친구가 운영한다고 이름도 세발자전거다. 나름 막걸리 고수들은 한 번씩 들르는 곳이다. 합정역 부근 외진 곳에 있지만 내부 분위기와 안주의 맛은 일품.

헬렌스 키친
여기다

최근에 떠오르는, 제법 내공이 깊은 막걸리 전문점이다. 분당 일대에서는 최초로 지방 명주 막걸리를 취급한다. 일식, 양식 주방장을 두루 거친 쉐프가 주방을 맡고, '막걸리를 무지 퍼 마시고 다녔던' 주인이 홀을 맡았다.

주말이면 빈자리 없이 빼곡하게 동, 서양 술꾼들이 모여든다. 이태원이라고 하지만 이태원에서는 먼, '경리단 길' 맞은 편 골목의 비탈진 곳에 있다.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조금씩 맛볼 수 있는 테이스팅 코스가 있다.

월향
홍대 지역에서 지방 양조장의 좋은 막걸리를 처음 소개한 공로가 크다. 2호점까지 성공적으로 런칭했고 홍대 일대에서 '낮술 환영'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다. 좋은 막걸리를 널리 알린 공로가 크다.

술익재

막걸리 유행의 첫 세대에 속한다. 막걸리 전문점 중 상당히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초동 서울교대 후문 건너편 2층에 자리하고 있고, 내부 분위기, 안주, 명주 막걸리 구비, 접객 등 모든 면에서 단연 돋보인다.

경북 칠곡 신동의 막걸리만 취급하는 특이한 집이다. 보통막걸리와 12도짜리 원주가 있다. 그릇을 봉화유기를 쓸 정도로 정갈하고 기품이 있다. 막걸리 안주도 좋고 국밥도 뛰어나다. 유기 주전자도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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