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는 막 걸러서, 바로(막) 먹는다고 막걸리다. 빛깔이 흐려서 '탁주濁酒', 색깔이 희다고 '백주白酒'라고도 하며 농사지을 때 마신다고 '농주農酒'라고도 한다.

세상의 모든 음식은 결국 세 종류다. 날 것, 익힌 것 그리고 삭힌 것이다. 발효시켜서 즉, 삭혀서 먹는 것에 관한 한 한민족이 으뜸이다. 무려 2천여 년 전 중국 측 기록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 편에 나오는 '선장양善藏釀'이라는 구절은 우리가 오래 전부터 삭혀 먹는 음식에 관한 한 대단한 민족임을 잘 보여준다. 얼마나 인상 깊었으면 한민족을 두고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고, 발효음식을 잘 만든다"고 적었을까? 막걸리도 발효음식이다. 사실 한류와 한식, 막걸리 등은 이미 2천 년 전에 시작된 것이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의 딸 유화부인을 취한 것도 바로 '그놈의 술' 때문이다. 해모수는 큰 궁궐을 짓고 하백의 세 딸을 초대하여 '맛좋은 술'을 권한다. 이 자리 끝에 유화부인은 해모수와 부부의 연을 맺고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 주몽을 낳았다. 해모수가 '작업용'으로 사용한 술도 아마 막걸리(탁주)였거나 기껏해야 청주였을 것이다. '막걸리'는 사실 특정한 술의 이름은 아니다. 청주와 막걸리는 뿌리가 같은 술이다. 한쪽은 맑고 한쪽은 흐릴 뿐이다.

곡물과 누룩을 섞고 적당한 양의 물을 부은 다음 큰 옹기독에 담아 두면 술이 괸다. 이때 대나무 등으로 만든 용수(추자篘子) 를 박아서 맑은 술을 조심스럽게 떠낸 것이 바로 청주淸酒다. 나머지를 체에 받치고 살살 문지르면 뿌연 액체가 아래로 고인다. 이게 탁주고 막걸리다. 청주를 떠내지 않고 바로 체에 받쳐도 역시 뿌연 액체, 막걸리가 나온다. 특별히 물을 섞지 않으면 도수는 청주나 막걸리 모두 16도 정도다. 결국 막걸리는 술독 째 마시는 술임을 알 수 있다. 징기스칸의 원나라가 아랍을 침공한 후 배워서 전 세계로 퍼뜨린 소주燒酒는 고려 말기에 한반도로 전래된다. 40도에 육박하는 소주는 '해모수 시대 천년 이후'에 등장하는 고급술이다. 물론 오늘날의 '이슬이'와는 전혀 다른 술이다.

누구나 막걸리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막걸리의 정확한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사람마다 막걸리에 대해서 그리는 이미지는 모두 다르다. 어떤 이들은 마시고 나면 이튿날 아침 '머리가 깨지는' 술로 기억한다. 단맛이 나야 막걸리라고 믿는 이들도 있고 진짜 막걸리는 절대 달지 않다고 목청을 높이는 이들도 있다. 소설 속의 신출귀몰한 '홍길동'이나 영화 속의 '트랜스포머'도 아닐 진대 막걸리는 혼란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재료도 마찬가지다. 쌀, 찹쌀, 밀가루 등이 주로 사용되지만, 조 껍질, 고구마, 보리, 잣, 토마토, 알밤, 옥수수 등을 주재료나 부재료로 사용해도 막걸리는 막걸리다. 발효 재료로 누룩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나 상당수는 일본식 씨누룩 즉, 종국(種麴)을 사용한다. 한국 누룩은 국자(麴子) 혹은 곡자(麯子)라고 부르는 뭉친 누룩이다. 우리의 전통 누룩을 사용하나 씨누룩을 사용하나 모두 막걸리다. 2-3일 만에 만들어도 막걸리고 보름 이상이 걸려도 막걸리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공급가 기준으로 1천 원 미만짜리가 있는가 하면 8천 원에 공급되는 것도 있다. 모두 막걸리다.

재료 다르고, 만드는 법 다르고, 맛도, 가격도 제각각이다. 표준화를 외쳐보지만 당분간은 힘들 것 같다. '표준화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막걸리 양조장은 그날로 문을 닫아야 할 터인데 사활이 달린 막걸리 표준화가 쉽게 이루어질 리가 없다.

조선시대에는 곡식을 아끼기 위해서 숱하게 금주령을 내렸다. 술 마신 고위관리를 사형시킨 적도 있었지만 술 마시는 일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 조선시대 내내 우리 선조들은 열심히 '탁주'를 마셨다.

일제강점기 초기 주세를 걷기 위하여 주세법과 주세령을 내렸다. 전국의 모든 가양주는 일단 스톱! 허가 받고 세금 내는 양조장만 술을 만들게 했다. 숱하게 많았던 탁주와 청주들 그리고 우리의 고유한 술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막걸리는 그 후 다시 힘차게 살아났다. 1970년대 언저리에는 막걸리가 전체 술 소비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막걸리 제조에 쌀 사용을 금했다. 수입 밀가루로만 만들게 하니 막걸리의 맛이 형편없어졌다. 드디어 속성 카바이트 막걸리가 나오고 사카린 막걸리가 나왔다. 그래도 막걸리는 모습을 바꾸었을 뿐 사라지진 않았다.

2000년을 넘기면서 막걸리 제조에 쌀을 사용할 수 있게 하니 막걸리는 또 살아났다. 게다가 일본의 막걸리 열풍에 힘입어 2008년을 기점으로 전국의 막걸리 양조장들은 우후죽순으로 살아났다. 2010년 기준 전국 양조장은 1,400개를 넘어섰다. 드디어 1,400종류의 막걸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막걸리는 참 신기한 술이다. 세상의 모든 술은 '스펙'이 있다. 알코올 도수와 사용하는 재료, 만드는 방법의 기준이 있다. 막걸리는 기준이 없는 혹은 기준이 너무 넓은 술이다.

붉은 막걸리, 자주색 막걸리, 흰색 막걸리, 노란 막걸리, 드디어 푸른색을 띈 막걸리도 나온다. 색깔뿐만 아니라 맛, 재료, 도수가 모두 다르다. 그런데 모두 "나도 막걸리예요"라고 주장한다.

오래 전부터 막걸리의 '5덕(五德)'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막걸리는 쉽게 취할 수 없는 술이다. 도수가 낮고 양이 많으니 취하기 전에 먼저 배가 불러온다. 또 막걸리는 식사대용이 되고 취하면 힘이 솟는다. 막걸리는 쉬이 취하지 않으니 술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풀리지 않던 일도 잘 풀리고 또 사람들 사이의 맺힌 앙금도 풀어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막걸리는 '오덕'만으로 설명하기는 너무 복잡하다. 이 복잡한 막걸리 이야기 중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부분은 "전통의 누룩을 이용한 전통 막걸리는 맛이 깊다"는 것이다.

막걸리 마니아들은 '금정산성막걸리와 금정산성 누룩마을'에 대해서 감동한다. 척박한 산골의 화전민들이 누룩을 발로 디뎌서 만들었고 누룩도 팔고 막걸리도 빚어서 팔았다. '금정산성막걸리'는 고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박통시절' 밀주 단속이 심했다. 밀주 단속원들은 그야말로 '저승사자'였다. 깊은 산 속 마을로 단속원들이 오면 온 마을이 난리가 났다. 마을 아낙네 중 일부는 단속원들의 차량 바퀴 앞에 드러눕고 남정네들은 문을 잠그고 버텼다. 그 사이 발 빠른 일부 주민들은 누룩을 메고 산으로 달렸다. 산골짜기 군데군데 누룩을 숨겼다. 미처 못 숨긴 누룩에는 '증거인멸'을 위하여 오물을 끼얹었다. 압수해서 가져가 봐야 오물이 섞인 것을 누룩이라고 증거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지킨 누룩이 오늘날 '금정산성막걸리'의 깊은 맛을 보증하고 있다.

'금정산성 막걸리'는 '단골손님' 박 대통령 덕분에 '민속주 1호'로 지정되었고 드물게 '우리 쌀 우리 누룩으로 빚은 전통 막걸리'로 살아남았다. 숱한 고난을 겪었으면서도 '금정산성막걸리 마을'에서 박 대통령을 '은인'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유난히 장마가 길었던 올해 초여름 서울의 막걸리 전문점들은 '송명섭막걸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우체국 택배로 가게에 배달되는 '송명섭막걸리'의 상당수가 병마개 부분이 터져서 줄줄 새고 더구나 맛도 이상해졌다. 흙냄새가 나다가 짚 삭은 냄새가 났다. 막걸리 맛이 아니었다. 전화를 걸어서 항의를 해봐야 양조장에서는 "자연이 빚는 막걸리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러나 술꾼들에게 "자연이 엉뚱한 술을 빚었다"고 설명할 수 없는 서울 시내 막걸리 전문점들 대부분은 여름동안 '송막'을 들이지 않았다.

'송명섭막걸리'를 만드는 전북 정읍의 '태인양조장'은 막걸리 마니아들이 성지로 생각하는 곳이다. 육당이 '조선의 3대 명주'라고 손꼽은 대나무 향기가 나는 '죽력고'를 만드는 명인 송명섭 씨가 직접 막걸리를 빚는다. 송명섭 장인은 막걸리 관련 책자와 만화책에 단골로 등장한다.

직접 재배한 우리 쌀, 양조장 마당의 우물물, 직접 재배한 밀을 이용하여 만든 누룩만을 사용한다.

밀가루 막걸리 이야기가 나오면 늘 경기도 고양의 '배다리막걸리' 이야기가 뒤를 잇는다. '박통'이 좋아했던 막걸리고 서거 직전까지 청와대에 공급했던 막걸리다. 밀가루 막걸리만 만들던 시절, 청와대에 납품하는 막걸리에만 쌀을 사용했다. 정작 청와대의 술 감정관과 박 대통령이 쌀 막걸리라는 사실을 몰랐는지 혹은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했는지가 술꾼들의 술자리 안주거리가 된다.

'자희향'도 재미있는 술이다. 2009년에 처음 선을 보인 젊은 술 '자희향'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막걸리의 범주에 들지 않고 청주 혹은 탁주이지만 막걸리 전문점에서 '탁주'와 청주를 동시에 선보이고 있다. '자희향'을 빚는 전남 함평의 양조장 '자희자향'의 대표는 여자다. "여자면 도수가 낮은 술을 빚어야"라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자희향'은 기본 도수가 12도다. 찹쌀과 물, 누룩만 사용하는데 술에서는 은은한 국화 향이 난다.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여 누룩을 충분히 발효시키면 꽃향기가 난다"는 예전의 술 이야기를 현실화시킨 셈이다.

밀가루 막걸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밀가루 막걸리 시절 카바이트 등을 이용하여 속성으로 술을 만들다가 맛이 나지 않자, 사카린 등을 섞은 것이 문제였다. 마시고 나면 카바이트의 불순물, 사카린 등이 숙취를 심하게 만들었다.

경북 칠곡의 '칠곡막걸리'는 쌀 40%에 밀가루 60%로 술을 만들다가 쌀 함량을 70%대로 높였다. 원주(原酒)는 12도이고 막걸리는 6도다. '신동막걸리'를 마시면 모두 3번 놀란다. 우선 색깔이 노란 것을 보고 놀라고, 마실 때 입 안 가득 바나나 향이 번지는 것을 느끼고 놀란다. 그리고 밀가루가 많이 들어간 막걸리의 뒤끝이 깨끗한 것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놀란다.

'소백산대강막걸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꺼번에 6잔을 '원샷'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단맛이 강점이면서 단점이다.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던 이가 퇴직 후 만들고 있는 충북 진천의 '덕산막걸리'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고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전남 해남의 귀농 부부가 만드는 해남쌀 100% '해창막걸리'도 권할 만하다.

막걸리는 역시 혼란스럽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술이다. '주세 5%' 때문에 가격이 낮아졌고 그 덕분에 인기를 끌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막걸리는 꾸준히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살벌하던 제조 금지 시절에도 살아남았고 여러 가지로 변신을 했던 술이 막걸리다.

지방 작은 양조장의 막걸리 명주를 마실 수 있는 곳들

헬렌스 키친

막걸리와 어울리지 않는 장소인 삼성역 코엑스 부근에 있다. 일본잡지에 널리 알려져서 일본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다. '고수들의 막걸리' '막걸리-여인의 향기' '대통령의 막걸리' 등 주제가 있는 이벤트도 자주 연다.

세발자전거

막걸리 계의 고수 닉네임 '허수자'를 비롯하여 세 사람의 친구가 운영한다고 이름도 세발자전거다. 나름 막걸리 고수들은 한 번씩 들르는 곳이다. 합정역 부근 외진 곳에 있지만 내부 분위기와 안주의 맛은 일품.

여기다

최근에 떠오르는, 제법 내공이 깊은 막걸리 전문점이다. 분당 일대에서는 최초로 지방 명주 막걸리를 취급한다. 일식, 양식 주방장을 두루 거친 쉐프가 주방을 맡고, '막걸리를 무지 퍼 마시고 다녔던' 주인이 홀을 맡았다.

다모토리

주말이면 빈자리 없이 빼곡하게 동, 서양 술꾼들이 모여든다. 이태원이라고 하지만 이태원에서는 먼, '경리단 길' 맞은 편 골목의 비탈진 곳에 있다. 여러 종류의 막걸리를 조금씩 맛볼 수 있는 테이스팅 코스가 있다.

월향

홍대 지역에서 지방 양조장의 좋은 막걸리를 처음 소개한 공로가 크다. 2호점까지 성공적으로 런칭했고 홍대 일대에서 '낮술 환영'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다. 좋은 막걸리를 널리 알린 공로가 크다.

술익재

막걸리 유행의 첫 세대에 속한다. 막걸리 전문점 중 상당히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초동 서울교대 후문 건너편 2층에 자리하고 있고, 내부 분위기, 안주, 명주 막걸리 구비, 접객 등 모든 면에서 단연 돋보인다.

이박사 신동막걸리

경북 칠곡 신동의 막걸리만 취급하는 특이한 집이다. 보통막걸리와 12도짜리 원주가 있다. 그릇을 봉화유기를 쓸 정도로 정갈하고 기품이 있다. 막걸리 안주도 좋고 국밥도 뛰어나다. 유기 주전자도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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