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신역사관 (단종충신역사관)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인기를 끌자 단종 복위를 꾀했던 사육신(死六臣)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이 때문인지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공원을 찾는 시민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사육신의 정신을 기리고자 건립한 역사관은 몇 달째 문이 닫혔다. 백촌 김문기(1399~1456년)를 사육신에 포함해야 하는지를 놓고 충신 후손끼리 싸운 탓에 20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된 역사관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벽량 유응부(?~1456년)와 김문기 후손은 1977년부터 지금까지 30년 이상 다투고 있다.

서울 동작구청은 2008년부터 짓기 시작한 역사관을 올해 7월 14일에 개관했다. 사육신 논쟁에 부담을 느낀 동작구청은 전시 범위를 확대해 사육신역사관이란 이름을 단종충신역사관으로 바꿨다. 그러나 사육신과 김문기 후손의 갈등이 폭발하자 역사관은 개관 20일 만인 8월 3일 문을 닫았다.

사육신수호회가 8월 1일 동작구청에 "역사관 이름을 사육신역사관으로 바꾸고 기존 사육신만 모셔라"고 요구하자, 김문기 후손도 구청을 방문해 "사육신에는 반드시 김문기가 포함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진정서를 전달했다. 갈등의 소지를 없애려고 바꾼 역사관 이름이 또 다른 불씨를 제공한 셈이다.

동작구청은 역사관을 시설물 정비 관계로 잠정 휴관한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구청 관계자는 24일 "양쪽이 합의하지 않으면 역사관을 개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김문기 초상화
사육신인가, 사칠신인가?

사육신 묘역에 모신 충신 무덤은 총 일곱 개. 사육신 묘와 함께 김문기 가묘(假墓)도 있다. 역사에 기록된 사육신(死六臣)이 현재 사칠신(死七臣)으로 바뀐 셈이다.

사육신이란 단어는 추강 남효온(1454~1492년)이 쓴 '육신전(六臣傳)'에서 비롯됐고, 유응부를 비롯해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을 일컫는다. 그러나 국사편찬위원회가 1977년 김문기를 사육신으로 현창(顯彰)해야 한다고 결의하면서 사육신수호회와 김문기 후손인 김녕 김씨 충의공파의 다툼이 시작했다.

유응부 후손은 "1791년(정조 15년)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통해 유응부 등 6인이 사육신으로 국가 공인을 받았고 김문기는 삼중신(三重臣)으로 선정됐다"고 강조한다. 반면 김문기 후손은 "육신전 기록이 잘못됐다"며 "조성왕조실록에 따르면 사육신에서 유응부를 빼고 김문기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육신 논란이 일자 국사편찬위는 '기록을 검토하건대 특히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김문기 순으로 육신(六臣)만을 들고 있으며 김문기가 도진무로 군 동원 책임을 맡은 사실이 기록돼 있으므로 위에 든 육신이 세조 때에 가려진 육신이라고 판정한다'고 결의했다. 하지만 1982년 서울시에 보낸 공문에는 '종래의 사육신 구성은 변경한 바 없음을 확인한다'고 밝혀 논란을 증폭시켰다.

유응부 비석
국사편찬위도 오락가락

사육신 논란의 중심에는 국사편찬위가 있다. 김문기 후손은 "국사편찬위가 77년에 김문기를 사육신으로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사육신수호회는 "국사편찬위 문서에 김문기가 사육신이란 표현은 없다"고 발끈했다. 국사편찬위는 77년 발표한 결의문에 김문기를 사육신이 아닌 세조 때 가려진 육신이라고 적었다.

국사편찬위의 모호한 표현과 어설픈 대응은 충신 집안의 싸움으로 이어졌다. 사육신수호회는 중앙정보부 김재규 부장이 조상 김문기를 위해 역사를 바꾼다고 비난했고, 김녕 김씨 충의공파 종친회는 사육신 집안 외손이 문교부 장관이 되자 국사편찬위가 자세를 바꿨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김문기 후손과 일부 사학자는 "조선왕조실록은 사관이 기록한 정사인데 반해 육신전은 개인 기록이고 오류가 많다"고 지적했다. 유응부 후손과 일부 사학자는 "김문기 후손이 편찬한 백촌유사에 김문기가 '나와 육신은 모의 역시 같이 했다'고 말한 대목이 있다"며 김문기 사육신설을 반박했다.

충신 후손끼리 30년이 넘도록 싸우자 국사편찬위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다. 국사편찬위가 실력자 눈치를 보느라 오락가락한 탓에 충신 후손끼리 볼썽사납게 싸우게 됐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학계 인사는 "어차피 사육신 논란을 국사편찬위가 만들었으니 국사편찬위가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육신이나 삼중신은 모두 충신으로 존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후손끼리 싸운 탓에 사육신에 대한 인상이 나빠졌다. 후손의 싸움으로 소탐대실할 수 있는 셈이다. 소모적인 논란보다 충신의 정신이 중요한 만큼 사육신수호회와 김문기 후손이 지혜를 모아 하루빨리 역사관을 여는 게 중요하다는 여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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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