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내년 18대 대통령선거를 꼭 1년 앞둔 19일 발표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은 우리 정치 상황의 판도 자체를 완전히 바꿀 정도의 메가톤급 변수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의 사망 당시 남측은 차기 대선이 3년이 넘게 남은 시점이었다. 또 후계자인 김정일 위원장 체제가 굳건한 상태였기 때문에 김 주석 사망 소식이 국내 정치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급사는 차원이 다르다. 대선이 불과 1년밖에 남지 않았고 총선은 4개월도 채 안 남은 시점이다. 더구나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후계구도는 제대로 정립도 안돼 있다. 앞으로 1년 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키도 어려운 상황이다. 북측의 격변 움직임을 계속 지켜보면서 내년 대선까지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큰 틀에서 보면 판이 흔들리는 요인이 발생했다는 것은 여론조사 지지율 1위 후보에게는 손해일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지지율 2위권 이하 후보들에게는 1위 도약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현재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양자대결에서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앞서 있고, 다자대결에서는 박 위원장이 안 원장에게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박근혜
그러나 수년간 1위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다 최근 정치권의 변혁 물결에 따라 안 원장에게 뒤처진 박 위원장 입장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 그다지 비보(悲報)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역대 대선 과정을 살펴보면 앞서 있던 주자가 중간에 역전을 당한 뒤 다시 재역전해 대권을 거머쥔 사례는 거의 없다. 한번 흐름이 꺾이면 중대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 그대로 결승점까지 그 기운이 유지돼 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번 기세가 꺾였던 박 전 대표가 상승세를 가파르게 타고 있던 안 원장 보다는 '북풍'(北風ㆍ북한 발 변화바람)이 반가울 수 있다는 얘기다. 예상 외의 호기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율 선두회복의 기회

그렇다고 박 위원장에게 '북풍'이 마냥 호재만은 아니다. 더 큰 위기로 작용할 수 있고, 판세를 반전시킬 수 있는 최고의 호재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위기로 보는 쪽은 안보 정국이 도래할 경우 우리 국민이 대개 여성보다는 남성 쪽을 선호한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손학규
실제 2006년 10월 북한이 핵 실험을 강행하자, 대선 레이스에서 고건 전 총리와 함께 선두권을 형성하던 박 위원장은 3위에 처져있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이후 간격이 좁아졌다 넓어졌다를 반복했지만 끝내 이 전 시장에게 앞서지 못한 채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서 패했다.

따라서 박 위원장이 대북 문제에서 얼마나 단호한 입장을 보여주면서 안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국가 안보를 책임질 수 있는 카리스마가 관건이란 애기다.

이런 점에서 그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 쪽은 박 위원장이 보수진영의 대표주자라는 점을 이유로 댄다. 안보 문제가 이슈화하면 보수진영의 결집이 견고화할 것이기 때문에 이는 고스란히 박 위원장의 지지로 옮아갈 것이란 분석이다.

2년 전과 전혀 다른 상황

물론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은 경색될 대로 경색된 대북관계를 고리로 '한나라당이 당선되면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식의 선거전을 폈다. 북에서도 남측으로부터 대규모 원조를 다시 받기 위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위협했다.

문재인
전쟁에 대한 공포가 선거전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계량화할 수 없으나 위기의식을 느낀 상당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민주당 쪽으로 돌아선 건 분명하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예상을 깨고 한나라당을 눌렀다.

하지만 이번 북한의 상황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그 당시는 김정일 위원장의 안정적인 지배체제가 구축된 상황에서 남측을 위협해 대북 원조를 재개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의 북한에서는 이 같은 통일된 움직임으로 남측을 위협할 계제가 못 된다.

자신들의 안위와 직결된 문제를 놓고 서로 다투기 바쁠 것으로 여겨져 원조 재개를 위한 대남 위협 같은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더구나 그 당시의 전쟁 위협과 앞으로의 전쟁 발발 가능성은 우리 국민이 체감하는 정도가 다르다. 그 때는 우리의 선택 여부에 따라 북한 관계에서 위험도를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다. 단순히 보면 여당을 찍으면 위험도가 높아지고, 야당을 찍으면 반대의 현상이 올 것이란 이분법적 접근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선택 보다 북측의 상황 변화가 중요한 시기가 됐다. 우리가 어떤 대북정책을 펴느냐와 상관없이 북측에서 어떤 정변이 일어나느냐 여부가 한반도 안정을 좌우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몽준
따라서 우리측은 어떻게 북한을 대할 것이냐를 생각하기에 앞서 일치된 방어태세 확립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박 위원장이 한나라당을 쇄신하는 과정에서 안정적인 리더십을 유지해가면서 내년 총선에서 선전할 경우, 지지율 재역전의 신화도 새롭게 쓰여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이 이어지면서 보수진영은 물론 중도 성향의 안보 우선 심리가 대선까지 주요 요인으로 남게 된다는 전제에서다.

조기 등판 압박 받는

안 원장의 강점은 깨끗한 이미지와 참신성, 기성정치와 전혀 다른 신진 세력이란 점에 있다. 이런 신선도에 따라 안 원장은 등장하자마자 지지율이 솟구쳤다.

하지만 안보 정국 하의 상황은 180도 다르다. 참신한 이미지가 계속 효력을 발휘할 거라고 보기엔 어렵다.

김문수
북한의 격변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이라면 국민 대다수도 그의 입장과 견해를 물을 수밖에 없다. 북한 문제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어떤 복안으로 북한 문제에 접근할 것인지,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는 어떤 식으로 유지하면서 북한 문제를 대할 건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할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안위에 직결된 문제이기에 안 원장도 침묵으로 일관할 수는 없다. 이쪽이던 저쪽이던 분명한 색깔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북한 문제에 정치적 해법을 제시한다는 것은 곧 정치의 시작을 의미한다. 본인 구상과 달리 조기에 정치권에 등장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박 위원장과 정치적 지지층 면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안 원장으로서는 당연히 여당과는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인의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대선을 겨냥한다면 이런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따라서 안 원장은 진보 진영과 유사한 방향에 설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박 위원장보다는 훨씬 '왼쪽'에 가까운 해법을 제시할 것으로 점쳐진다. 진보 진영의 기본적 입장인 남북화해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 등을 해법으로 내놓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두관
안 원장의 딜레마가 여기서 시작될 수 있다. 그렇다고 박 위원장과 같은 방향의 답을 내놓거나 애매한 줄타기를 시도한다면 좌우 양쪽으로부터 배척 받을 수 있다. 정말 대권에 꿈이 있다면 좋던 싫던 박 위원장과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상황 변화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외줄타기'를 시작해야 하는 입장에 설 가능성이 크다.

나머지 후보들은…

노무현재단이사장이나 전 한나라당 대표, 전 민주당 대표와 경기지사, 경남지사 등 이른바 '잠룡'들은 이번 북한 사태가 크게 나쁘지 않다.

대부분 지지율이 한자리 수 대로 의미 없는 수준에 지나지 않기에 이들에게도 구도 자체가 요동쳐야 거기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전 대표와 경기지사는 일단 한나라당의 1위 후보인 박 위원장이 여성이란 점을 부각해 안보 정국에는 군을 경험한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는 논리를 펼 가능성이 높다.

문 이사장이나 손 전 대표, 경남지사의 경우 일단 남북 대화를 앞세운 평화체제 필요성을 강조하며 여권 주자들을 싸잡아 비판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안 원장과 범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이 벌어지게 되면 위기 상황에서는 정치나 행정 경험이 많은 경륜가가 나서야 한다는 논리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파고 들 수도 있다. 지금은 안 원장에게 지지율 면에서는 크게 뒤지는 이들이지만 북한 문제 같은 민감한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며 '초보 정치인'의 불안정성을 부각하면 상대적으로 '해 볼만 하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이야기는 모두 북한의 격변 가능성을 전제로 한 내년 정치 기상도일뿐이다. 북한이 김정은 체제로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면 안보 이슈가 사라지면서 다시 김정일 체제와 같은 수준으로 정치 상황이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가 계속 흔들리거나 소요사태 등이 발생하게 되면 안보 이슈가 모든 문제를 빨아들이는 블랙 홀이 된다.

결국 중도층이 흔들리는 북한을 보면서 '튼튼한 안보체제 확립'과 '대화를 통한 평화모드 주력'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여부가 차기 정권의 향배를 결정지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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