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만으로 사람을 어느 정도나 파악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대략적인 이미지 정도일 것이다. 심지어 첫인상으로 판단한 이미지는 알고 보면 그 사람의 실제 모습과 정반대이기 일쑤다. 다른 좋은 방법은 없을까. 있다.

사람의 성격, 취향 그리고 감추고 싶은 은밀한 신체적 비밀까지 모두 가늠할 수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다름 아닌 손가락을 보면 된다.

최근 손가락 길이로 개인의 특징을 파악한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약지에 비해 검지의 길이가 같거나 더 긴 여자 아이들은 언어에 뛰어난 경향을 보이고, 검지보다 약지가 긴 남성은 운동 경기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사회적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연구가 우리의 귀를 쫑긋 세운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손가락 길이와 관련된 연구의 역사는 약 100년이나 된다. 처음에는 그저 남성과 여성의 오른손 검지와 약지 길이 비율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는 수준이었지만 차츰 그보다 미세한 차이들이 속속 확인됐다. 또한 그런 차이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해답들도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손가락 길이와 개인의 특징을 연관시킨 연구는 심리학을 비롯해 생물학, 발생학, 해부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행됐다. 물론 이를 주도하는 것은 심리학의 몫이었다. 그 이유는 개인의 사고와 행동 성향이 예나 지금이나 심리학의 주된 관심사라는 점과 유관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몇 달 사이 이례적으로 국내 남성 과학, 신문방송학 분야에서 세간의 관심을 끌 만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남성은 약지, 여성은 검지

손가락 길이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영국 센트럴랭커셔대학의 심리학자 존 매닝 박사는 지난 30년간 줄곧 약지와 검지에 방대한 양의 성(性) 정보가 들어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는 비단 그의 연구 성과만은 아니다. 예부터 손가락 길이 연구의 대다수는 태아기에 노출된 성호르몬과의 연관성 속에서 해석돼 왔다.

요약하자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남자아이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 검지보다 약지가 길어진다. 또 여자 아이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 검지와 약지의 길이가 같아지거나 약지보다 검지가 더 길어진다. 실제로도 대다수의 남성은 검지보다 약지가, 여성은 약지보다 검지가 길다.

사실상 손가락 길이 비율이 태아기에 노출된 성호르몬의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은 학계에서 이미 통설화된 내용이다. 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들도 계속해서 쌓여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의 마틴 콘 박사가 손가락 길이 비율이 사람과 유사한 쥐의 배아를 이용해 이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쥐 배아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용체의 신호를 차단하자 여성처럼 약지보다 검지가 긴 쥐가 태어났고, 에스트로겐 수용체를 차단하면 남성처럼 쥐의 손가락도 약지가 더 길어졌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약지가 더 긴 여성이나 검지가 더 긴 남성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어떻게 된 걸까. 약지가 긴 여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남성호르몬에 많이 노출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로 인해 남성적 성향이 두르러질 가능성이 크다. 약지가 긴 여성일수록 옷 구매에 관심이 적으며 편안하고 활동적 의상을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와 반대로 검지가 긴 남성일수록 외모 치장에 많은 정성을 쏟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과학적으로 믿을 만한 분석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성호르몬의 영향, 즉 손가락의 길이만으로 개인의 특징을 파악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말이다. 놀랍게도 다수 전문가들은 상당한 신뢰를 표명하고 있다.

작년 11월 ‘손가락 비율과 스타 숭배’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세종대 신문방송학과 허행량 교수는 “이와 관련한 여러 연구를 접한 후 최근 실제 사례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본 결과, 그 정확성을 여실히 실감했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아울러 “지난 학기 통계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손가락 길이를 독립변수로 놓고 여러 종속변수를 찾도록 지시했는데, 이후 나온 결과의 정확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손가락 길이로 개인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호르몬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지만, 성호르몬이 개인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손가락 길이 비: 성인 음경 길이의 예측 인자’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가천의대 길병원 비뇨기과 김태범 교수도 “개인의 특징이 결정되는 데는 성별, 직업, 환경 등 여러 요인이 복잡 미묘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손가락 길이 비율은 단지 그 특징을 가늠할 수 있는 여려 중요한 지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손가락이 말해주는 변강쇠의 비밀

김 교수의 연구에서 알 수 있듯 성호르몬의 작용을 논함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은 바로 생식계다. 김 교수는 손가락 길이 비율과 성인 남성의 음경 길이가 상당한 상관관계를 지닌다고 밝혔다. 손가락은 은밀한 신체적 비밀까지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남성호르몬의 총칭인 안드로겐(androgen)과 안드로겐 수용체(androgen receptor)는 태아기 남성의 외부 생식기 형성, 그리고 사춘기 2차 성징으로 남성의 음경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여기에 주목했다. 음경의 길이 차이가 남성호르몬의 차이에서 기인하므로 손가락 길이비율로 음경의 길이를 짐작할 수 있다는 가정을 세운 것.

그는 비뇨기과적 문제로 수술을 받은 20세 이상 성인 남성 144명을 대상으로 손가락 길이와 음경 길이를 비교 측정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오른손 검지와 약지 길이 차이가 클수록, 다시 말해 검지보다 약지가 더 길수록 음경의 길이도 긴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의 키, 몸무게, 체질량 지수(BMI), 손가락 길이, 손가락 길이 비율 등 여러 변수들 가운데 음경 길이와 상관관계가 높은 인자를 찾는 쪽으로 연구를 진행했어요. 결과적으로 음경의 평상시 길이(flaccid length)는 키, 음경을 잡아당긴 상태의 신전시 길이(stretched length)는 손가락 길이 비율과 상관관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나아가 김 교수는 통계분석프로그램을 활용해 손가락 길이 비율과 신전시 음경 길이 사이의 관련성을 식으로 도출하기도 했다. 손가락 길이 비율을 X, 음경 길이를 Y로 했을 때 ‘Y=(-9.201×X)+20.577’이다.

건장한 성인 남성 변강쇠 씨의 검지가 8㎝, 약지가 9㎝라고 가정해 보자. 이때 그의 손가락 길이 비율 X는 약 0.89다. 이를 식에 대입하면 신전시 음경 길이 Y는 약 12.40㎝라는 계산이 나온다. 반면 약지의 길이는 9㎝로 동일하지만 검지가 8.8㎝로 변강쇠 씨보다 긴 허약한 씨는 X가 약 0.97이기 때문에 Y는 11.63㎝가 된다. 손가락 길이 비율 X가 작을수록 음경의 길이는 길다.

“음경의 길이 자체가 이미 개인 간의 편차를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는 ‘변수’예요. 따라서 이 결론의 정확도를 퍼센트로 계량화할 수는 없어요. 중요한 것은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특징을 살펴봤더니 손가락 길이 비율이 낮을수록 음경의 길이는 긴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죠. 국적, 인종 등에 따라 위의 식에서 세부 값이 다르게 적용될 수는 있지만, 두 변수간의 일반적 경향성은 비슷하게 나타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편 김 교수는 이번 연구를 수행하기에 앞서 2009년 세계 최초로 손가락 길이 비율이 전립선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그 결과를 영국비뇨기과학회지(BJU Int)에 발표했다. 이는 유방암에 여성호르몬이 관여하듯 전립선암에 남성호르몬이 관여한다는 기존 학설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비뇨기과학자 중 손가락 길이 관련 연구를 수행한 것은 김 교수가 세계 최초다.

당시 그는 손가락 길이 비율이 낮은 남성일수록 전립선암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40세 이상으로 전립선특이항원(PSA) 수치가 40ng/㎖ 이하인 남성 366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손가락 길이 비율이 0.95 이하인 남성이 그렇지 않은 남성에 비해 PSA 수치가 1.7배 가량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 전립선암 환자 수도 3.2배나 더 많았다.

성향·행동까지 꿰뚫어

손가락은 우리의 신체적 비밀만 폭로(?)하는 존재가 아니다. 숨기고 싶은 심리적 성향도 여지없이 드러낸다. 앞서 언급한 허 교수의 ‘손가락 비율과 스타 숭배’ 관련 연구가 그 실례다.

중학생 106명을 대상으로 스타를 숭배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스타 태도 지수(Celebrity Attitude Scale, CAS)와 손가락 길이 비율을 측정한 이 연구에서 허 교수는 손가락 길이 비율과 스타 숭배 성향이 여학생들에게 특히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검지가 상대적으로 길어서 손가락 길이 비율이 높을수록 CAS도 높았다.

허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사춘기 여학생들이 연예인 등 스타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이번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계수가 도출되면서 세간의 시각이 틀리지 않다는 게 증명됐다”고 말했다.

덧붙여 허 교수는 ‘손가락 비율과 폭력적 오락물에 대한 선호도’도 연구했는데 영화, 드라마, 게임, 스포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조사에서 남녀 공히 검지보다 약지가 긴 사람이 폭력적 오락물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지가 긴 사람은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아 폭력성이 강해진다는 기존 연구와도 일치하는 결과다.

“손가락 길이를 통해 개인의 사회적 성향을 해석한다는 것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을 이해하는 데 적지않은 도움이 될 겁니다.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말이죠.”

이밖에도 다양한 연구에 의해 외모, 성격, 행동, 건강, 직업, 학습능력, 운동능력, 연봉, 성적 취향 등 인간의 다양한 특징이 손가락 길이와 관련이 있다는 흥미로운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손가락 길이로 인간의 특징을 어디까지 예측할 수 있을까. 허 교수의 설명은 이랬다.

“사람의 특징을 파악하려면 선천적, 후천적 요인을 고루 따져봐야겠지만 선천적인 것 가운데 손가락이 매우 중요한 요소예요. 예측의 정확성이 높죠. 여기에 얼굴 넓이, 미간, 목소리 등 성호르몬의 영향이 비교적 크다고 알려진 다른 요소들을 함께 파악한다면 훨씬 정밀한 예측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손가락보다 더 쉽고 정확한 개인의 특징 분별법이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는 손가락처럼 결코 숨길 수 없는 외적 요인에 의해 내 모든 것을 속속들이 들켜버릴 수도 있다. 조금은 오싹한 일임에 틀림없다.

허 교수는 “그런 날이 정말 올지는 모르겠다”며 “그렇다고 해도 오늘날 학계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를 좋은 방향으로 활용한다면 충분히 긍정적 작용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 역시 “현재 학계는 손가락과 같은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특징과 질병의 발생 및 치료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 중에 있다”고 전했다.

이제 중요한 미팅에서 상대방의 오른손 손가락을 유심히 살펴보자. 내숭과 가식 속에 감춰진 그 사람의 진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박소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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