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술경영' 무엇이 문제인가

"정주영 '주'자 길게쓰세요" 현대가 '왕자의 난'도 훈수
삼성 '역술 면접관' 기폭제

경영 갈림길서 불안감 해소… 심리적 요인 크게 작용

'위대한…' 마이클 레이너 "이제 예측자체를 포기해야"
수평적 리더십만이 살길

미국 기업의 미래 예측은 정보 나누는 인적 교류

최고 경영자는 늘 불안하다.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는 빨라졌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은 커져만 간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고 경영자는 끊임없이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불안하면 할수록 미래에 대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한국 대기업 경영에 영향을 끼쳐온 역술에 대해 살펴본다. 뿌리가 깊은 기업일수록 역술과의 인연도 깊다. 그러나 끝이 나쁜 경우가 많다. 역술 경영이 미신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역술에 의지할 정도로 상황이 나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포춘코리아 1월호는 재계 쌍두마차인 삼성과 현대도 역술과 인연이 깊다고 소개했다.

삼성그룹 고(故) 이병철 회장은 신입 사원을 뽑을 때 역술인을 면접에 동석시켰다. 역술인 용회수씨는 이병철 회장에게 삼성그룹 계열사 본사가 자리잡은 건물터를 선정할 때 조언했다고 회상했다. 철학과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이 회장은 역학과 풍수지리에도 해박했다.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삼성그룹과 역학의 인연은 끊어졌다. 이 회장의 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역학에 관심이 없는 걸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이 역술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이병철 회장과 역술에 얽힌 일화는 재계 전반에 역술이 퍼지는 계기가 됐다. 한 역술인은 "한때는 꽤 많은 회사의 신입사원 면접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곤 했었다"면서 "저는 답변보다 답변할 때 드러나는 관상이나 사주를 봤다"고 말했다. 이병철 회장이 신입사원 면접에서 관상을 살폈다는 소문이 퍼지자 다른 기업에서도 삼성처럼 역술을 통해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풍수지리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단이 있는 기흥은 이름 그대로 도자기가 흥한다는 의미다. 반도체는 세라믹인 만큼 기흥과 인연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병철 회장은 기흥과 수원 일대를 중요시했다. 이 회장은 에버랜드 자리를 정하고 건물 위치를 정할 때 지관과 함께 상의했다.

현대그룹에는 2003년 3월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경영권을 놓고 왕자의 난을 벌일 때 역술이 등장했다.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은 전자와 건설 부문을 정몽헌 회장에게 맡기고, 자동차 부문과 중공업 부문은 각각 정몽구 회장과 정몽준 의원에게 물려줬다. 왕자의 난은 금융 부문에서 벌어졌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을 고려산업개발로 전보 조치하자 정몽헌 회장이 인사를 되돌리면서 형인 정몽구 회장을 해임했다.

포춘코리아는 수세에 몰린 정몽구 회장이 역술인을 찾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에 역술에 의지하는 일이 많지 않았다. 역술인은 정몽구 회장 측근에게 "7월까지만 버티면 길이 보일 겁니다"라고 말했다. 승승장구했던 아버지는 역술인과 거리가 멀었지만 수세에 몰린 맏아들은 역술인의 말이라도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풍수지리는 재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역술. 건설사가 아파트 단지를 정하거나 사옥을 짓기 전에 풍수지리를 활용한다. 건설사 관계자는 "풍수지리에 따라 위치를 선정하면 실제로 에너지 효율이 높고 쾌적한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이런 까닭에 도시 계획에도 풍수지리가 이용된다.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영화관(CGV) 터를 잡을 때 풍수지리를 활용했다. 재계에는 CJ그룹이 극장터를 잡을 때 기문둔갑 전문가에게 의뢰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기문둔갑이란 땅의 지세를 살펴서 전략적으로 가장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기술.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 보자면 도심 안에서 가장 재물의 기운이 높은 건물을 찾아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CJ그룹이 돈과 사람이 모이는 곳에 극장 자리를 잡아놓은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역술인은 "분명한 건 지금도 적잖이 역술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하는 집안치고 부적 하나쯤 없는 집이 없다. 중견 기업들은 물론이고 이름난 대기업들일수록 더 은밀해지고 있다. 재벌가를 상대하는 역술인은 일반 고객은 상대 안 하는 게 관례다"고 귀띔했다.

기업 임직원의 사주를 뽑아서 재운을 분석하면 경영 성과를 전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역학자인 노해정 휴먼멘토링 대표는 서강대 경영대학원에서 주가지수와 사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노해정 대표는 "역술 경영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 대표는 포춘코리아와 인터뷰에서 "기업 오너들은 특히 임원 사주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면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임원의 재운이 어떤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가지수 역시 시장에 참여한 투자자의 재운에 따라 변화한다고 본다.

"코스피 지수와 재운의 변화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걸 활용하면 올해 전망은 좋지 않은 편이다. 재운이 사그라지는 형세로 육십갑자를 따져봐도 큰일이 많이 일어날 해다."

한 금융 관계자는 많은 경영인이 역술인을 찾는다면서 판단을 바라는 것보다 판단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노해정 대표도 "저를 찾아오는 기업인도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 오는 경우가 많다"면서 "오랜 검토 끝에 결정을 내려놓고 자신의 결정이 음양오행의 이치와도 일치하는지 확인하려고 오는 거다"고 말했다. 역술 경영이 전략적인 차원보다 심리적인 차원에서 작용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SK그룹 최태원 회장처럼 선친이 일군 그룹을 외국계 헤지펀드에 통째로 빼앗길 위기에 처하면 역술 경영은 단순한 확인 차원을 넘어설 수 있다. 불안감 해소 차원을 넘어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금융과 부동산은 제조업과 달리 장기 예측이 어렵다. 기대 심리에 따라 등락이 심하기 때문이다.

포춘코리아와 인터뷰한 한 자산운용사 전직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역술 투자가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다. 여의도에도 역술원이 있다. 다만 드러내놓고 고객들을 상대하지는 않을 뿐이다. 역술이 관여하게 되는 순간은 매수 타이밍과 매도 타이밍을 결정할 때다. 펀드 매니저들의 전문성도 이때 드러나기 때문에 역술 투자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타이밍을 정할 때 자신감을 얻는 방책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한국밸류투자 이채원 부사장처럼 장기 가치 투자를 신봉하는 펀드 매니저는 역술을 경계한다. 이 부사장은 "주식과 관련된 점을 전문적으로 치는 역술원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제 주변에서 그곳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저처럼 가치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에겐 사실 시장 예측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많은 경영인은 미래를 예측하기에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끊임없이 선택하고 집중해야만 한다. 대기업처럼 전략기획실을 만들어 시장을 예측하기 어려울 경우 언론이 생산하는 기사와 경제연구소 전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사와 전망대로 미래가 다가오진 않는 경우가 많다.

국민대 유지수 기업경영학과 교수는 포춘코리아와 인터뷰에서 "한국의 경영인들은 항상 정보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언제나 판단의 근거는 모자란 상황이다. 역술경영은 그럴 때 등장한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자꾸만 커지고 있다는 얘기와도 통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에 불확실성이 크다는 말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역술 경영을 탓할 수만도 없는 셈이다.

마이클 레이너는 자신이 쓴 책 '위대한 전략의 함정'을 통해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오히려 예측 자체를 포기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해도 돌발 변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확실성과 매일 싸우는 경영인에게 역술 경영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술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기름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처럼 비참한 결과를 맞을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회사 경영인은 "항상 망하는 경우는 최고경영자가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100% 확신할 때 일어납니다. 확신을 갖고 베팅을 크게 할 때 무너진다"고 말했다. 역술 경영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지나치면 끝이 나빴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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